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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Nov 04. 2022

영화 <에에올>, '지금 이 순간' 에 대하여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양자경 주연의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봤다. 번역하면 '모든 것, 어디에서나, 동시에' 가 되려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나서 느낀 것과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 수많은 우주의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현재의 삶일지라도, 오히려 그것을 깨닫고 나서 허무함에 빠지는 대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 

어떤 우주에서도 우리는 만나고야 말았겠지만 지금의 이 모습과 이 관계로 인연 맺어짐에 감사하기. 그러니까 조금 덜 심각하게 살 것을, 그리고 조금 더 다정해지기로 다짐해본다. 나에게도 주변에게도 세상에도. 우리 모두 작은 먼지 같은 존재니까. 



    신해철이 생전에 했다는 강연 내용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불쑥불쑥 그게 생각난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태어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다했기 때문에 나머지 보너스 게임 동안 신께서는 여러분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십니다. 행복하세요.“ 

어릴 땐 마음대로 던져진 것 같은 삶이 못마땅했고 왜 태어나서 이런 고생을 하지, 하고 자주 생각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미처 누그러지지 않은 삐딱한 태도가 남아있다. 신해철의 저 문장은 여태껏 만난, 나의 오래된 의문에 대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답이다. 그 강연 링크는 여기에 



    우주 속 미물에 불과하더라도,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시작되었음에도 주어진 일상을 잘 살아내려 애쓴다. 매일 일하고 산책하고 요가하면서.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는 건 늘 대단한 진리나 인생의 성취가 아니라 작고 사소한 기쁨에 있었다는 걸 돌아본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기대치 않고 주어진 좋은 날씨와 맛있는 음식, 심지어 지겹도록 반복되는 매일의 책무들까지도. 삶을 지탱하는 동력은 실은 이런 것. 내일이면 추워진다고 해서 올가을을 돌아보니 정신없이 바빴다. 언제나처럼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가 그 안에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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