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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Nov 16. 2022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를 드디어 읽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ㅡ 검정치마, Antifreeze



<그리스인 조르바>를 드디어 읽었다. 책의 클라이맥스이자, 황홀감, 자유감, 해방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장면 - 조르바와 화자가 춤을 출 때 내 머릿속에선 검정치마의 노래, Antifreeze 가 재생되었다. 춤이라곤 모르는 책의 화자에게 현재의 즐거움보다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 고집부리는 내 모습이 비쳤다. 좋아하는 음악이 나와 신이 나는데도 어떻게 리듬을 타며 몸을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재미 없는 사람이 나다. 흥이 나도 춤 출줄 모르는데, 나는 몰락하며 춤을 출 수 있나 ㅡ 팔다리를 영 어색하게 흔들어보는 그 순간조차 머리가 돌아가고 가슴이 꽉 막혀 있는걸. 


"명상을 굳이 왜 해? 사는 게 그냥 명상이지, 동적 명상." 이라고 했던 어떤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순간순간 깨어있기 위해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한다지만, 정작 내가 동경하는 건 힘든 아사나 수련이나 좌선 명상을 하지 않아도 깨어있는 의식으로 ‘바로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다. 타고 났거나 삶의 다양한 경험으로 그런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 조르바처럼. 살아오면서 이따금 만난 몇 명의 조르바들을 떠올렸다. 


문득 재작년, 거의 십 년 만에 얼굴을 보는 친구를 개찰구 앞에서 기다렸던 일이 생각난다. 어색하면 어떡하지,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지, 머리로 온갖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타난 친구가 내게 보내준 건 진한 포옹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녀도 조르바를 닮았다. 작년 말 한참을 우울해 친구들 앞에서 눈물까지 쏟으며 2022년에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한 해가 두 달 남짓 남은 지금 - 그렇게 살았나 돌아보게 된다. 가슴으로 삶을 사랑했는가, 머리로 재고 따지고 살지 않았나. 


<그리스인 조르바> 는 대학생일 때 한 기업의 부장님이 소개해주셨다. 그녀가 대학생일 때 이 책을 만났고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시기였는데) 그리스로 곧장 배낭여행을 떠났으며 평생의 닉네임도 이 책에서 얻었다고 했다.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나의 20대. 책에는 통 관심이 없어 선물 받고도 이 책을 읽지 않았었는데. 만약 읽었더라면 흔들흔들 불안했던 나의 20대가 조금은 달랐을까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흔들렸겠지만 춤을 추듯 흔들렸을까, 하고.


*여성관에 있어서는 시대보정을 하며 읽는데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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