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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Dec 28. 2022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멋진 일일까

올리브 키터리지에 대한 엇갈린 감상평






작년부터 친구의 초대로 2년째 책 모임에 함께 하고 있다. 멤버는 나와 친구, 그리고 50대인 K와 C까지 총 4명이다. K와 C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된 건 꽤 최근의 일이다. 두 사람은 나이에 얽매이는 걸 정말 싫어하고, 우리는 마치 미국인처럼 호칭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물론 K와 C가 먼저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쿨하고 멋진 모임 덕분에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고전 문학, 두꺼운 과학 책과 교양서를 한 달에 한 권씩 읽을 수 있었다. 때로는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때로는 서로 다른 관점과 감상을 주고받는다. 자갈자갈 북스터디에 다녀오면 신체의 나이라는 건 숫자에 불과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 2022년의 마지막 책인 <올리브 키터리지> 에 대한 감상평은 정확하게 나이대로 선호가 갈렸다. 우리 30대에겐 참 불편한 책이었다. 대놓고 우울한 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잔잔한 희망도 유머도 있었지만,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반면 K와 C는 깊이 공감하며 정말 좋았다고 했다.


드라마 시리즈도 있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은퇴한 교사 올리브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올리브를 포함해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모두 각자의 힘든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노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의 문제, 가족의 죽음, 가족 간의 갈등 등 누구에게나 올 법한,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의 고통이다.


돌아보면 나의 20대는 인생이란 것이 생각했던 것보단 그저 그렇다는 걸 강제로 깨닫는 시간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법적 성인이 되었는데도 내 앞엔 끝없이 많은 책무와 과제가 있다는 걸 마주해야 했고, 그게 참 고통스러웠다. 애써 그 사실을 받아들인 지금의 내게 <올리브 키터리지>는 “50대도, 60대도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단다” 하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끝없이 반복되는 인생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K는 그 속에서도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희망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C는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와 꼭 같아서 깊이 공감한 모습이었다. 나보다 20년을 더 산 두 사람이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인 것 같았다.


삶이 고통의 연속이며 그것에 무뎌지는 과정일지라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는 걸 <올리브 키터리지> 를 나누며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리 고민해도 지금은 다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야만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을 거란 걸 한번 더 느낀 시간이었다. 새로운 한 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과도 맞물렸던 것 같다. 40대, 50대의 나에겐 어떻게 새로이 읽힐지 궁금하다.






출처: Pinterest


책에 ‘여행 바구니’라는 챕터가 있다. 투병 중인 남편과 사는 말린의 이야기다. 가망이 없어 보이는 병세에도 두 사람은 침실에 여행 바구니를 놓고 병이 다 나으면 갈 여행을 단란하게 꿈꾼다. 하지만 결국 말린의 남편은 죽는다. 게다가 말린은 장례식에서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그동안 희망이 되어준 여행 바구니를 버린다.


장례에 참여한 올리브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그런 여행 바구니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것, 신체의 기능들이 서서히 퇴화하는 것, 마음 같지 않은 관계와 사건들은 삶을 살아가며 당연히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고통의 가운데서 우리를 견뎌내고 사랑하게 하는 것은 여행 바구니 같은 것일 테다. 아마도 말린은 삶을 지탱해 줄 다른 여행 바구니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언제고 나를 다시 설레고 희망차게 할 여행 바구니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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