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대학만 가면 돼”라는 말의 오류

서른 살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것

by 혜인



중학교 때 사춘기가 온 후로는 12년의 정규 교육과정이 세상 쓸모없는 비극 같았다. 이상한 두발, 복장 규정, 학생을 마음대로 때리는 선생님의 권위도 싫었다. 무엇보다 답답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탈출은 하루에 영단어를 500개씩 외우도록 시키는 학원을 다니며 집에서 가장 먼 기숙사 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웃기지만 힙합 음악이 유일한 위안이어서, 하자 스쿨에서 하던 힙합 작사 과정을 듣고 싶었지만 상상에 그쳤다. 해외로 배낭여행 갈 날을 그리며, 여행 대신 여행기를 읽었다. 그러다 쉬는 시간에 공부를 안 하고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혼났을 땐 정말 이 삶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이렇게 분노가 많았던 사람 치고, 그 시절 겉으로 보이는 나는 말을 너무 잘 듣는 학생이었다.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선생님들이 폭언을 일삼거나 부당한 단체 기합을 줄 때, 손을 번쩍 들고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하고 외치는 상상을 정말 자주 했던 것 같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 깊이 참아가며 참으로 성실히 도 세상의 기준을 따라갔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어”라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강력한 메시지 덕분이었다. 무려 8-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아주 불안하고 예민해서, 건드리면 터지곤 했다. 그런 나를 위로하는 모든 어른의 말은 “대학만 가면 돼”였다. 내가 진짜 무엇이 되고 싶은 자기 마음을 담아 물어본 어른이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준 사람도 정말 없다. 그저 잘 견디고 대학생이 되면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으니, 조금만 더 참으라는 말 뿐이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모의고사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썼다. 어떤 학교는 인문대, 어떤 학교는 사회과학대, 어떤 학교는 경영대에 지원했다. 수능을 망쳤지만 재수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답답한 시간들에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신문방송학과 새내기가 되었다.


‘대학만 가면 돼’라는 말만 믿고 대학생이 되었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말 잘 듣는 아이로 평생을 보낸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도 고등학생 같았다. 다시 성실히 수업을 녹음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공부를 했다. 진정 배우고 싶은 수업보다는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무난한 개론 과목들만 골라 들었다. 신문방송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는 어중간한 대학생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기억하는 8-90년대의 대학과 2010년의 대학은 많이 달랐다. 더는 대학 간판만으로 번듯한 직업인이 되는 시절이 아니었다. 선배들이 삼성이며, 현대며 이름 난 기업에 취업하니 조바심이 났다. 사실 딱히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걸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라는 것만 하고 살아왔기에 하지 말라는 걸 해야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어렴풋이나마 하고 싶었던 것들, 글을 쓰고 여행을 정처 없이 다니고 하는 것들로는 당장 돈벌이가 안될 것 같았다. 나도 결국 재미없는 대기업 직장인이 되었다.


지금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이름 난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자기 확신이 있는 삶이 더 부럽다.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고 실천하는 것이 행복하며 성취하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만 가면 돼’라는 말 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교육 제도 하에서 같은 말을 듣고도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자신의 길을 간 친구들이 분명 많다. 바뀐 시대와 발맞춰 창업을 하거나, 그간의 공부나 전공과 전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겁쟁이인 나는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담대함도 자기 확신도 없었던 나였기에, ‘대학만 가면 돼’라는 말에만 너무 의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서른 살이 가까워서야 진짜 내 모습을 알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더 이해하고 싶다. 시작이 늦다 보니 힘들고 서툴지만, 즐거운 과정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과 있을 때 즐거운 지를 잘 아는 것이 이상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아에 대한 고민을 10대, 20대 때 조금 열심히 했더라면 끌려가듯 어중간하게 살기보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시도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대학만 가면 돼’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기보단 더 자유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보단 깨달음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내 남은 삶의 날을 기대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