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스마트폰 없는 2시간 30분

스마트폰 없이 20년을 살아놓고, 참 유난이다.

by 혜인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송정역에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 배터리는 1%를 가리키고 있었다. 든든하게 충전해둔 보조배터리를 연결했는데, 이런, 보조배터리가 충전이 되어있지 않았다. 급한 대로 대합실의 USB 충전 포트를 이용했지만 기차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택도 없었다. 회사 노트북을 코레일 와이파이에 연결해보았는데 최근 강화된 사내 보안으로 개방형 와이파이에서는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인터넷과 단절된 2시간 30분이 시작되었다.


방법이 없어 뒷자리에 앉으신, 인상 좋은 아주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전화기를 빌렸다. 팬데믹 시국에 조심스러웠고,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남편에게 상황을 말한 뒤, 도착 예정 시간을 알리고 픽업 요청을 했다. 오전 7시 기차를 타느라 피곤했기에, 잠이나 자볼까 했는데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켜지지 않는 스마트폰을 너무 만지고 싶었다.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어쩌지, 불안해졌다. 좌석 앞에 꽂혀있는 코레일 매거진을 한참 정독했다. 코레일 매거진은 얇은 두께에 비해 글이 많았고, 시간을 들여 읽으니 내용도 알찼다. 유익했던 것과는 별개로 활자를 읽으니 잠이 왔고, 잘 잤다.


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한 시간이 더 남았다. 휴대폰의 와이파이를 빌려 쓰는 스마트워치도 아날로그시계나 다름 없어졌다. 그래도 시계 페이스를 바꿔가며 오분 십 분을 보냈다. 그리곤 정말 할 게 없어서 창 밖을 봤다. 자동차와는 다른 KTX의 속도,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풍경과는 또 다른 철로에서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철로 옆은 대부분 논밭이나 과수원이었다. 이름 모를 나무에서 핀 하얀 꽃들이 참 많았다. 반대편 철로에서 다른 기차가 지나가면 왠지 무서웠다. 있는 그대로 별생각 없이 풍경을 감상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름의 명상이 아니었나 싶다. 서울로 올라올수록 창밖 풍경은 재미가 없어져 열차 중앙, 상단에 매달린 TV를 유심히 보았다. 예전엔 같은 내용이 반복되었던 것 같은데 참 알차게도 여러 프로그램이 계속 바뀌어가며 송출되고 있었다.


두 시간 반이 지나고 행신역에 도착했다. 남편과의 약속은 “ 7시, 행신역에서 봐”라는 90년대의 삐삐 전보 같았는데, 우리는 그 시절 사람들처럼 엇갈림 없이 잘 만났다. 차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켰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별다른 메시지도, 부재중 전화도 없었다. 생각보다 별 일 아니군. 스마트폰 없이 20년을 잘 살아놓고 참 유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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