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로움과 쓸모를 발견해준 단 한 사람, 영화 '스틸 라이프'
삶을 살다 보면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디 기댈 곳도 없고, 몸도 마음도 다 지쳐서 다 때려치우고 그냥 펑펑 울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리는 그런 때가 있다. 예전에는 이렇게 힘들 때면 약해지지 않으려고 이 꽉 물고 혼자서 끙끙 앓아누운 적도 있다. 지금과는 달리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었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속내를 잘 털어놓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그 당시에 나 스스로가 혼자 앉아서 울어버리거나, 혹시 날 한심하게 보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으리 생각한다. 그렇게 외로움과 우울함 속을 한참 헤매고 있던 그 타이밍에 딱 스틸 라이프의 포스터를 보았다.
혹시, 나처럼 기댈 곳 없어 슬펐거나, 내가 죽으면 누가 슬퍼할까? 내가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 이였다고 말해줄까? 등 이런 생각 한 번이라도 해 봤던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꼭 보길 바란다.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스포 울렁증이 있으신 분들은 먼저 보신 후 다시 읽으시길.
먼저 스틸 라이프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 차 공무원인 존 메이의 주 업무는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고, 지인들을 찾아 초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잊힌 의뢰인의 유품을 단서 삼아 아무도 듣지 못할 추도문을 작성하는 일도 한다. 존 메이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며 혼자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의뢰인이 나타나게 된다. 그 의뢰인은 바로 존 메이의 아파트 바로 맞은편에서 살던 ‘빌리 스토크’인데, 그가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다. 같은 날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존은 자신의 마지막 의뢰인인 ‘빌리 스토크’를 위해,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벗어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의 삶을 뒤쫓으며 빌리의 지인들을 하나 둘 만나게 된다.
'장례식은 산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게 낫죠.
그렇다면, 장례식도 슬픔도 없을 테니까요.'
존 메이의 상사는 존이 계속해서 일을 끝내길 바라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존은 빌리의 일을 끝까지 제대로 해내고 싶었기에 상사의 말을 크게 귀 담아 듣지 않았다. 빌리의 지인들은 생전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였던 사람이었던 빌리의 죽음에 아무런 관심도 감흥도 없어했지만 존 메이는 끝까지 빌리의 과거를 추적했고, 그의 발자취를 끝까지 따라가 보았다. 생전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고 자신과 상관없던 알코올 중독자로 홀로 생을 마감했던 빌이었지만 빌리 스토크의 죽음 이후 존 메이는 빌리를 가장 잘 알고 그를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되어주는 과정을 통해서 단조롭던 존의 일상에도 잔잔한 변화가 시작되는 내용이다.
영화는 존 메이의 마지막 업무를 통해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이 기억하는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현재 사는 삶에 대해, 그리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영화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예의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겨질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끔 한다.
단조롭고 잔잔한 일상 속 묵직한 감동의 여운
영화의 제목인 still life는 서양화 중 하나의 분야로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이 없는 물건인 화초나 과일, 책 또는 악기 등을 그린 정물화를 말한다. 영화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정물화'처럼 순간의 삶이 멈춰져 있다. 하지만 존 메이를 통해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남겨진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계속 기억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찮게 느끼는 고인들의 이야기를 존 메이는 그 삶을 다시 삶 속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
존 메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도 먼저 떠난 이를 기억하는 남겨진 사람들 덕분에 어쩌면 삶은 죽은 이유에서부터 다시 계속해서 존재하고 기억되어 오르는 것이 아닐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주는 영향력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잊혀지는 게 두려운가요? 제가 기억해줄게요.
'잊혀지는 게 두려운가요? 제가 기억해줄게요.'라는 영화 포스터에 글을 읽었는데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포스터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아마 '나를 제발 놔두세요.'가 아니라 '저 좀 위로해주세요', '저 좀 한 번 안아주세요.'와 같이 따뜻하게 감싸주는 말이 필요했던 거였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친한 지인에게 '힘들다고 너무 슬퍼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말하면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러자 혼자 얼마나 힘들었니 그동안 하면서 나를 꼭 안아주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신기하게 '힘'이 생겼다.
존 메이가 고인들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혼자서 견뎌야 하는 몫이라며 나를 압박해 왔지만 내가 알게 모르게 내 옆엔 언제나 누군가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다. 내가 영화를 통해서 또 친구를 통해 생겼던 '힘'을 혼자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사람이고 싶다. 글이 좋은 점은 꼭 얼굴을 보지 않아도 고민 고민해서 한 글자씩 진심으로 적어갔다는 느껴지게 할 수 있다는 것 같다. 무엇인가를 굳이 하지 않아도 곁에 앉아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죠? 오늘은 제가 안아줄게요.
따뜻함이 전해지는 선물 같은 글이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