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로 사라진 진실들
불은 소리 없이 시작됐다.
처음엔, 기름이 타는 냄새 같았다.
순두부찌개집 특유의 고소한 냄새에 섞여,
누구도 위험이라 인식하지 못할 만큼.
하지만 그다음 순간,
불길은 숨 쉴 틈도 주지 않았다.
목조 천장을 타고 번진 불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집 안을 한 번에 집어삼켰다.
여기저기, 창문이 터지는 소리,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들이 도망칠 시간도 없이
그곳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존재하지만 지도에도 남지 않는 집.
이름 없는 곳.
기록되지 않은 공간.
그곳은 그렇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재로 변했다.
마치
진실을 모두 태워 버리기라도 하듯.
그날 밤이 있기 이틀 전,
늦은 시간임에도 진서는 문헌의 집을 찾는다.
연락을 받은 견호도 잠시 뒤 뒤따라 들어온다.
침실에 있던 문헌은 그들의 방문에 서재로 내려간다.
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문헌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서재 소파에 앉은 문헌은 그들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길래 이 밤중에 다 찾아왔어? 위스키라도 한잔들 할 텐가?"
“아. 형님, 형님. 위스키 마실 때가 아닙니다."
세 사람 중 가장 어린 진서는,
급하면 문헌을 ‘형님’이라 부른다.
문헌과 견호는 그런 그의 성급함에 익숙하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놓인 위스키를 마신다.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치는 진서는 마치 보물지도를 꺼내듯, 살짝 흥분해 보인다.
지도를 본 견호는, “이건… 대양민국 수도 지도 아닌가.”라고 말한다.
“맞습니다.”
“그럼 이 표시는 뭐지?”
군인답게, 견호는 지도의 종류와 표시된 지점을 단번에 짚어낸다.
“바로 여기입니다.”
진서는 대답 대신,
대단한 것을 발견이라도 한 사람처럼
흥분을 숨기지 못해,
마치 '유레카' 라도 외칠 기세처럼 보인다.
문헌과 견호는 그를 재촉하지 않는다.
진서는 늘 이랬고,
그의 흥분이 가라앉은 뒤에는
늘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 놓기 때문이다.
“이곳에… 그들이 있습니다.”
문헌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그들?”
얼마 전, 그들을 찾기 위해 보낸 사람들에게서,
‘사라졌다’라는 보고만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셋은 다시 그들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제가 표시해 둔 바로 이곳에 그들이 있습니다."
문헌과 견호의 시선이 다시 진서에게로 향한다.
“제가 어느 날, 인터넷 망을 보다가요…”
진서는 인터넷과 방송, 미디어에 누구보다 능한 사람이다.
도훈의 선거 당시, 온갖 SNS와 여론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인터넷 ‘망’ 자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점은 다소 의외였지만,
아마도 인터넷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곳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길래 그런가 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일 것이다.
“유일하게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들고 온 노트북을 서재의 TV에 연결한다.
화면에는 수도 전역을 뒤덮은 인터넷 신호망이
거미줄처럼 펼쳐진 지도가 나타난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부 연결돼 있습니다.”
그가 빨간 레이저 포인터로 한 지점을 가리킨다.
“그런데, 딱 한 곳, 이곳만 신호가 없습니다. 바로 여기죠.”
그는 지점을 확대한다.
“처음엔 일시적인 장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범위가 너무 좁았어요.
그래서 위치 추적을 해봤는데, 주소가 안 잡히더라고요."
진서는 잠시 말을 멈춘 후, 낮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인공위성으로도 좌표가 확인되지 않아요."
인공위성 좌표추적은 견호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그는 진서에게 이미 모든 승인을 허락한 상태였다.
"그런데… 없습니다. 없어요."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점점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참을성이 다한 견호가, "무엇이 없단 말인가?"라고 묻는다.
“그래서 지도 하나만 들고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묻는 말에 대답대신
엉뚱한 말을 하는 그에게 견호는, “그래서?”라고 묻는다.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뭐 하는 집이길래? 안에는 들어가 봤나?”
“아니요. 혹시 몰라서요.”
“대신, 집 앞이 보이는 벽에 소형 CCTV를 설치해 두고 왔었죠.
도대체 이 인터넷도 없고, 주소도 없는 이 집은 무엇이며, 누가 있는지 궁금해서요."
그는 영상 파일을 재생한다.
화면 속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난다.
“저 사람… 서 대장의 큰아들, 한주 아닌가. 얼마 전 귀국했다는 얘길 들었지.”
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진서의 질문에 두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내 문헌이 무릎을 탁 치며,
“비밀 은신처군. 지도에도 없고, 좌표도 나오지 않고, 인터넷조차 닿지 않는 곳.
존재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 다만, 누군가만 알고 있는.”
진서의 얼굴이 환해진다. “네, 형님. 바로 그겁니다. 사라진 그들이 저곳에 있어요.”
견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런데 어떻게 귀국했을까요? 지금 공항은 제가 일 등급 비상으로 묶어놔서
입출국이 쉽지 않을 텐데 말이죠."
문헌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출국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사람이 있지.”
잠시 후, 진서의 얼굴에 깨달음이 스치며,
“아… 그럼 순방 일정 때.”
그는 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왜…”
문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의감이 먼저 앞서는 게, 내 아들의 장점이자 약점이지.”
견호가 낮게 묻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문헌은 잠시 생각한 뒤, 아주 담담하게 말한다.
“흔적도 없이 태워 버려야지. 증거든 증인이든."
그날 밤,
그들은 그곳을 불태워 버리기로 결정한다.
흔적은 사라졌고,
진실은 침묵 속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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