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

유난히 긴 어둠

by Hye Jang


도훈과의 일주일 유럽 신혼여행세서 돌아온날,

서린은 문헌의 집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끊임없는 사람들의 방문으로 분주하고 활기차 졌고,

문헌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여전히 집 같은 따뜻한 온기는 어디에도 없다.


어린 시절 지내던 궁을 떠올려 본다.

그 또한 넓고 늘 사람들로 붐볐지만,
할아버지와 부모님, 오빠와 함께 지내던 공간만큼은 늘 따스했다.

하지만 이곳은—
어느 한 곳도 편히 앉아 숨을 쉴 수가 없을 만큼 답답하다.


두 동으로 나뉜 문헌의 저택에서, 도훈과 서린은 같은 공간에 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결혼 이후, 둘 사이는 더 냉랭해졌다.

그들은 공식 석상에 함께 얼굴을 비추는 것 외에는

집에서는 함께 식사하는 일도, 서로의 방을 방문하는 일도,

심지어 집 어디에서도 마주치지 않는다.


서린은 어린 시절 잠시 따스했던 도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지금은 어디에도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도훈은 그의 방에서 물구 나무 서기를 한다.

한없이 작고 여리던 서린에게 가르쳐 줬었다.

도훈에게 그녀는 그의 야먕을 이루어줄 한 부분이면서도,

족쇄처럼 느껴진다.


며칠 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도훈은 젊고 패기로운 정치인,

다정하고 상냥한 남편,

살가운 아들의 이미지로,

"국민 남편"

"국민 아들"

"젊은 리더"

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으며,

후보자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중이다.


그의 옆에선 서린은, ‘다 가진 여자’라는 미소를 지으며,

문헌과 도훈이 만든 구조를 완벽하게 맞추어 주고 있다.


카메라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서린은 도망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지만,

그때마다
꿈속에서 반복되는 악몽이 떠오른다.

피가 고인 바닥,
그 피 위에 둥둥 떠 있는 가족들의 모습.


그녀는 떠날 수 없다.
여기 남아 저들의 억울함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오늘 일정 힘들지 않았어?”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도훈은 다정한 남편처럼 다가와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도훈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널리 들리도록 웃으며 말한다.

“여러분, 오늘 일정은 여기까지 하죠. 저희가 아직 신혼이지 않습니까.”


도훈의 너스레에 사람들은 웃으며 자리를 떠난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도훈은 곧바로 서린에게서 손을 뗀다.


그때 윤지가 홀에 들어오고, 도훈의 얼굴엔 미소가 번지며, 둘은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홀을 나간다.


마치 윤지가 아내이고, 서린이 선거 캠프 직원인 것처럼 보인다.


신혼여행 이후 처음 마주한 박윤지.

그녀는 이미 문헌, 견호, 진서의 신임을 받고 있었고, 선거 마케팅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선거의 모든 그림이 윤지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서린은 방으로 돌아와도, 그 싸늘한 공기가 따라오는 것을 느낀다.


다음날,

근위대 복귀식이 열렸다.


군 총사령관이 된 견호의 지휘 아래, 부대 장군들이 도열했고,

그 사이를 길영과 한결이 예전 황실의 근위대 예복을 입고 걸어 들어온다.


한결을 보자 서린은 숨을 멈춘다.
—왜 그가 여기 있는지.
왜 이 위험 속으로 들어오는 건지. 묻고 싶다.


문헌은 길영에게 근위대 복귀를 제안했다.
“황녀가 돌아왔으니, 근위대가 예전처럼 황실을 지키는 게 어떻습니까?"


길영은 오랫동안 원하던 자리였기에 수락했고, 한결이 근위대 총책임을 맡게 되었다.


한결은 원하지 않았다.
서린 곁에 있고 싶은 마음과,

이미 결혼한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마음이 뒤섞여 괴로웠다.

그리고 다시 파병을 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길영의 간곡한 부탁—

그리고 서린과 도훈의 결혼 뒤에 숨겨진 계획들.

그 일을 알고 나니, 한결은 그녀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이 그를 이 자리에 세웠다.


앞줄에 서 있는 서린을 보며, 한결은 마음속으로 말한다.

“내가 말했잖아. 너 있는 곳으로 간다고.”


복귀식 후 열린 파티에서, 서린과 한결은 자연스럽게 다시 마주한다.

이제는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관계—
황실 근위대 책임자와 황녀.


“왜 이런 결정을 했어?” 서린이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잇는다.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야. 내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넘겨.”


한결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스케일이 좀 작죠. 폭탄도 터지고, 지하 벙커도 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웃음이 나와? 그곳도 위험하고… 이곳은 더 위험해.”


한결은 그녀를 바라보며, “그래서요?”


“… 뭐가?”


“그래서 제가 있는 겁니다. 위험하니까. 누군가가 그 위험 속에 있으니까. 그 사람을 지키려고…

제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서린의 마음을 흔든다.


멀리서 길영이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다.

문헌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문헌에게 길영은 눈엣가시였다.
황실을 향한 변치 않는 충성, 문헌에게 굽히지 않는 태도.

그는 황제와 함께 길영도 몰아내려 했지만, 명분이 없었다.

오히려 길영은 대중들 사이에서 "국민 충절남"이라는 타이틀로 충절의 아이콘이 되었다.


문헌, 진서, 견호는

선거가 끝나고, 도훈이 대통형이 되는 날 서린을 제거할 것이고,
그 죄를 오롯이 길영에게 뒤집어씌울 계획으로 길영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들이 평생 지켜온 충절이, 오히려 덫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파티 끝 무렵, 도훈은 서린과 한결을 바라본다.

그때 옥상에서 보았던 그 장면처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한결이 모든 계획을 흔들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변수라는 것을.

그래서 오히려 가까이 두고 볼 생각으로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화려한 파티도, 취재 열기도 끝나고,
도훈은 일이 있다며 윤지와 가고

서린은 한결의 호위를 받아 집으로 향한다.


차 안에 있으니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한 느낌마저 든다.


“근위대 총책임자분께서 운전까지 할 위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서린이 고요함을 깨고 말한다.


“맞습니다.”


“그런데요?”


“잠시 쉬셨으면 해서요. 이 차 안이 지금 당신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 이니까요.”


그래도 서린은 말을 아낀다.

이곳에서 늘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차량 전체 검사했고, 도청도 추적도 안 됩니다. 제가 권한을 올려서
당신 보안을 최상위로 재설정했어요. 이 차는 나 외에는 아무도 운전하지 못합니다."


그 말에 서린은 피식 웃으며, "무슨 이유로 보안을 최상위로 올렸어?"


"음... 그거야.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나는 이 나라의 근위대 팀장이니까."


"치. 그새 허세도 늘었네."


백밀러로 보이는 서린의 표정이 오늘 하루 중 가장 편안해 보인다.


벙커 안에서도 둘은, 이런 사소한 말들과 농담으로 서로를 버텨냈었다.


잠시 후, 창밖을 보던 서린은,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서린은 혼잣말처럼,

“위치 추적도 안 된고, 도청도 안되면, 그럼… 이 차로 어디든 가줄 수 있어?”

라고 말해 본다.



창밖으로 스치는 어둠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둘이서

어디라도 갈 수 있다면..

그 순간, 잠들어 있던 감정의 잔해들이 다시 깨어난다.


하지만 현실은 더 냉혹해지고,

서린을 겨냥한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진다.


도훈의 침묵은 잔인해져 가고,

윤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숨기고 있으며
한결은 그녀를 막아낼 수 있을까?


다음 회에 그 숨겨둔 진실들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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