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피해 머문 자리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며,
도훈의 선거 캠프 역시 막바지 일정으로 분주하다.
몰락한 황가와 수장제를 거쳐,
마침내 국민의 손으로 선출되는 초대 대통령 선거에
사람들은 들떠 있다.
선거 국면 속에서 황제의 시대는 박진서가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몰락’이 아닌
‘역사의 가치와 유산’으로 재구성되고,
그 중심에는 서린이,
도훈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로 나아가는 인물로 포장되어,
사람들은 그들 에게 열광 중이다.
매일 이어지는 일정 끝,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온 둘,
서린은 잠시 도훈을 불러 세운다.
도훈은 2층으로 올라가려다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본다.
“잠깐 이야기 좀 해.”
“피곤한데. 내일 하면 안 돼?”
서린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도훈은 짧게 한숨을 쉬며,
“뭔데 그래. 여기서 잠깐 해.”
그의 눈짓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운다.
“선거가 얼마 안 남았어.”
서린은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박윤지 씨랑은… 조금 조심해야 하지 않아?”
서린은 알고 있었다.
그가 방으로 올라가도, 오늘 밤 집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걸.
도훈은 잠시 말없이 서 있다,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진짜 부인이라도 된 것 같은 거야? 아니면, 정말 대통령 부부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말은..."
서린이 말을 잇기도 전에, 도훈은,
“윤지가 원래 먼저였어. 너보다, 먼저. 그리고 선거에 문제 되는 일은 없어."
서린의 눈빛이 흔들린다.
도훈은 그녀를 지나 현관 쪽으로 걸어가다, 다시 다가와 낮게 속삭인다.
“조심은 나 말고, 네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서린이 돌아보자, 현관문 밖에 한결이 서 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도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난 상관없어. 그러니 너도 그냥 하던 대로 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역할만 잘하면 되니까.”
그는 서린을 가볍게 포옹하는 척하며, 주변에 들리도록 웃는다.
“먼저 자요.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보고를 받았네.”
도훈이 떠난 뒤, 서린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는다.
그가 어디까지 알고 말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날 밤, 서린은 잠들지 못했다.
어떤 이유로도 한결을 이 일에 더 깊이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며칠 뒤,
몇 개의 일정이 취소되, 서린은 캠프를 먼저 나선다.
차 창 밖으로 보이는 노을이 내려앉은 거리가 아름다워 보인다.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음악이 흐른다.
도훈의 말 이후,
서린은 한결과의 만남과 대화를 조심했었다.
한결은 그 이유를 물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역시 그녀가 곤란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차 안에서 조차도 말을 조심 했던 서린은,
“벙커에서 했던 말 기억나?” 라며 한결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응? 어떤 말?”
“나가면 뭐 먹자고 했던 거.”
“.. 기억나. 난 닭볶음탕, 넌 순두부찌개.”
“맞아. 사실 그때 너무 매워서 못 먹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더라고.”
한결은 차의 방향을 돌려,
강변을 벗어나 낮은 건물들이 이어진 골목으로 들어선다.
“여기가 어디야?”
“배고프지 않아?”
한결은 먼저 내려 그녀의 차 문을 열어주며 말한다.
“여긴 안전해.”
동네는 반대편 높다란 건물들이 가득하고,
어디를 가도 서린을 알아보는 세상과는 단절된 듯한,
낮은 건물들 속에 , cctv도 없어 보인다.
"아버지가 알려주신 곳이야."
"응?"
"너도 알지, 우리 집이 대대로 황실을 지켜온.. 근위대였던 거."
"응. 그래서 너도 여기 있는 거잖아. 위험한 대도."
한결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몇 걸음 걷더니,
어느 집 마당 안으로 들어간다.
서린이 낯선 집의 마당을 둘러보자, 한결은,
"우리 아버지도, 여기 오셔서 순두부찌개를 드셨었대.
황가와 근위대장만 아는 비밀 식당이라던데."
서린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렴풋이 할아버지랑 왔었던 곳 같기도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집주인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와서는,
인사를 하고는 방으로 안내한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식탁 위에 순두부찌개가 올려져 있고,
갓 내온 듯 김이 모락모락 난다.
서린은 그제야 기억이 떠오른다.
할아버지와 단 둘이 앉아 있었던 방.
깔끔하고 정겨운 방이었었다.
방 안에서 가득 나던 매콤한 순두부찌개의 냄새도 기억나는 듯하다.
"먹어봐. 이제는 먹을 수 있겠지?"
한결의 말에 서린은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다.
맵지만, 따뜻하고, 맛있다.
할아버지가 왜 이곳까지 오셔서 먹었는지, 알 것 같다.
서린의 눈에 가족들의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이 핑 돈다.
한결은 서린의 마음과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알기 때문에,
"그 정도로 맵진 않은데.” 라며 농담을 건넨다.
"여기로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서린의 말에 한결의 마음도 뭉클해진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종종,
하루의 일정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시의 외곽으로 나가,
밤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기도 하고,
이동 중 잠시 차를 세워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곳을 찾아,
그곳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거나
말없이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더 애틋하게 만들고 있었다.
도훈과 윤지의 만남도 점점 대범해지고,
서린을 향한 윤지의 시선은 더 이상 숨기지 않는 냉소를 담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 올 수록
문헌과 진서, 견호의 계획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진실 속에 가려진 엇갈린 사랑과, 모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날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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