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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Aug 17. 2021

나를 또렷이 알아가는 여정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상의 행복을 누리기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면서 '나라는 사람은 출근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간의 분위기에 지배받는 성향이라 일할 수 있는 공간인 일터에서 일해야만 하루 시간표에 따라 차례대로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택이 잦지 않은 업무라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올해까지 재택을 한 날은 손에 꼽을 정을 정도였다. 그나마 7월의 경우 회사 내 업무교육이수로 재택근무를 했고,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일주일에 2번씩 재택을 하는 날이 있었다.  출근과 동시에 이이를 직장 어린이집에 배웅하고 바로 사무실에 헐래 벌떡 뛰어오면 업무가 시작된다.


숨 가쁜 숨소리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려면 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몸을 조금 움직여줘야 한다. 숨소리가 차분해지면서 오전 업무를 좀 할까 싶으면, 금세 두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다. 점심시간은 워킹맘 엄마에겐 최고의 사치 시간이다. 멍 때리는 시간을 갖거나 못 봤던 책을 잠시라도 읽어보거나, 일기장에 뭐라도 끄적이거나.. 혹은 매주 가는 필라테스 센터에 들러 점심을 간단히 요기하고 나면 금방 점심시간이 끝난다. 오후 업무 시간은  오전 업무시간보다 양적으로 많으므로 오전 시간은 고속도로의 초입에서 서서히 운전했다면, 오후 시간은 고속도로에서 조금씩 속도를 내며 주행해야 한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적게 들리는 만큼 목표의 고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업무에 열중하다 보면 금세 퇴근 시간과 하원 시간이 가까워진다. 가장 두려운 시간! 육아시간보다 업무시간이 몸과 마음이 더 자유롭다. 내 의지로 해야 할 일을 끝내는 업무시간과 달리, 육아는 도통 내 몸이 움직이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다. 이미 누구의 손에 내 머리카락과 발목, 팔목은 잡혀있거나 대롱대롱 내 등에 매달려 안아달라고 업어달라고 조르는.. 내 몸은 내가 아니다. 청각에도 이상증세가 느껴질 만큼 몇 분 단위로 울거나 나를 부르거나 웃거나.. 조용한 침묵의 시간은 없다.


오늘 드디어 '침묵의 시간'을 선사받았다. 이틀간의 주말과 대체공휴일이 지나고 새 하루가 시작된 오늘, 다른 날보다 분주한 아침시간을 가졌다. 새벽 6시경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아이의 아침과 짐을 챙겼다. 아이와 남편이 부산 시가에서 일주일간 휴가를 보낼 예정이기에 차에서라도 간단히 식사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고구마를 어제 미리 삶아놓았다.  그가 좋아하는 사과를 도시락통에 넣어두었다. 어제 잠자리에서 아이가 자는 내내 내 머리카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잠을 푹 자지 못했다. 그럼에도 선잠에 깨어나서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나를 깨웠다.


그 덕에 나의 오늘 아침상도 풍성해졌다. 복숭아와 고구마, 플레인 요구르트와 그래놀라. 심적으로 나 자신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오늘이었다. 이달 모닝 리추얼인 '세바시 리추얼'(#워킹 패런츠 리추얼)도 잘 끝내고, 아침 매거 거진을 만드는 윤진 편집장님과의 '다섯 줄 일기 x 아침식사' 리추얼도 무사히 마친 아침시간이었다. 리추얼이 끝내고, 매번 평일 아침 8시에 해야 하는 회사 업무도  끝내고 여유롭게 출근길에 올랐다. 출퇴근과 동시에 등 하원을 하지 않는 날이라니.. 이 호사를 며칠 누려볼 예정이다.


지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영화관에 들러 요즘 흥행하는 영화 한 편을 봐라고 하거나 여유롭게 혼밥을 즐기며 저녁을 사 먹으라는 등 여러 방법을 추천받았다. 그 와중에 퇴근 후에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늘 가던 서점 앞에 정차했다. 서점은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언제든 습관처럼 가는 곳이니  평소에 하지 못한 것을 해보자고 핸들을 돌렸다. 오랜 시간 동안 머물고 싶었던 아우어 베어커리에서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비커밍우먼의 워크지를 작성해보기로 했다.


'나의 장점을 써보라'는 질문에 답을 못했다. 온통 나의 단점만 생각이 나서.. 그나마 회사 업무와 연관되는 모니터링, 공유하기, 스크랩 등 이 세 가지가 내가 잘하는 점이라고 적었다. 우습게도. 매일 하는 업무의 기본이 내가 잘하는 것이라니. 이렇게도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이라니.


뭔가  세련되게 잘하는 점을 적고 싶었는데, 어찌 보면 업무의 기본적인 지침일 수도 있으니  점이 내게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대한 질문에 '타인의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 사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끄적였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화가 적은 사람'... 그러한 사람을 만나  적이 있긴 했다.  또래 친구 중에. 그것도 대학교 1학년  함께 학보사에서 몸담았던  친구.  친구를 보고 놀라웠다. 알고 보니 가정환경이 그녀의 성향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됐다.

 

오늘 아침에도 봤던 세바시의 영상(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보면서 어릴 적에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사람의 인생을 지배할  있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엄마의 불쾌한 감정이 아이에게 전가되면 아이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감정이 아이에게 인식되어 '나는 나쁜 아이'라고 생각할  있다고. 얼마나 무서운 오해의 방식일까. 부모가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아이에게 분출한 것인데.  또한 너무 피곤한 날에는 아이의 응석에 지쳐 마음과 다른 말을  때가 있다.



 


돌아봐 생각해보니 "피곤해, 힘들어, 기다려" 등 이 세 가지 단어를 나도 모르게 일상에서 자주 썼던 말이었다. 이 영상과 함께 "당신은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에 대해 알고 있나요? "라는 질문이 내 마음속 안을 건드렸다. 나의 무지한 소통방식으로 아이가 상처 받은 적은 얼마나 많았을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우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속삭인다. 정말 나와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나도 모르게 내 부정적인 감정이 분출한 것일 텐데..


귀가하여 목욕을 한 후 동료에게 선물 받은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여보았다. 몇 달만인지... 몇 주전 큰 마음을 먹고 구입한 루이스 폴센의 조명을 대체할 버섯돌이 조명(세타고, Setago JH27/ 하이 메아욘  디자인)을 집 안에 모셨다. 두 달이 걸려 유럽에서 집으로 배송된 루이스 폴센의 조명은 당일 유리 갓이 산산조각 나서 다시 쓰지 못했다.


기념사진도 못 찍은 채 버려야 할 정도로 눈물을 머금었는데, 다행히 유리 갓만 따로 구입이 가능하다고 해서 추후 배송을 기다려볼 예정이다. 아이의 움직임으로 인헤 부서져버린 조명을 보고 되려 홀가분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갖고 싶었던 물품이 내 것이 아님을 느끼는 순간, 아이가 다치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아이와 함께 주거할 땐 가능한 디자인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보다 내구성이 튼실한 가성비가 좋은 물품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찰나, 내 마음을 달래준 대체할 조명이 때마침 오늘 집으로 배송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향이 짙어 사놓고 못썼던 인센스 스틱, 마르코 폴로의 마리아쥬 홍차까지.. 오늘 밤 홀로인 날을 즐기며 나 자신에게 사치스러운 시간을 부렸다. 너무 행복한 이 밤을 잊고 싶지 않다. 행복의 기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오늘 배운다. 나라는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이 채워져야만 평점심을 되찾고, 타인에 대한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도.  


오늘 나의 혼자만의 시간에 큰 역할을 해준 버섯돌이 조명


나를 위한 아침상과 음식일기, 확실히 주말에 아침상과 다른 느낌
퇴근 후 아직 해지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무얼해야할지..
퇴군 후, 혼자만의 사치 첫번째 시간
혼자만의 제대로 사치 두번째 시간, 잠들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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