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서 영감얻기3
"필사 노트에 책의 문구를 옮겨 적는데 계속 잘못썼다. 내가 옳다고, 혹은 내 마음에 부르는 소리대로 옮겨 적어 실수를 했나 보다. 필사 노트에 잘못 써진 문구들을 화이트 펜으로 지울 수 있다만.. 그대로 두고 밑줄 치기를 했다. 그리고 다시 적었다. 그나마 자판으로 치면 오타가 덜난다. 그 차이가 뭘까.
확실히 손으로 글 쓰는 것이 내 머리와 심장이 맞닿아있는 것일까. 손으로 몸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나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겠다는 태도일 테니. 도구 없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요가처럼, 요가를 할 때마다 더 어려운 건 어느 도구가 아닌 내 마음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잘하고 싶은데도 따르지 못하는 내 몸을 보며.. 한없이 좌절하고, 실망하고.. 그 과정을 거쳐 올바른 자세를 할 수 있을 때 성취감이 생기고. 어느 선까지 옳은 자세로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그 기준을 만들기보단 내가 올바르게 하고 있다고 믿으면 그 기준에 부합한 것일까.
커피 맛도 그러하다. 전문가가 맛있는 맛이라고 해도, 내가 먹기에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맛있는 커피가 아니다. 내 뇌리에 오래 남는 커피맛이 아닌 것을 그냥 스쳐가는.. 수없이 마셔본 커피맛 중 하나가 될 뿐. 부속적인. 같은 경험을 하는 것도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기억으로 다가온다.
오늘 읽은 책 2권의 메시지도 같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잣대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걸. 그저 내 마음의 소리에 맞추어 가면 될 것을. 누가 옳은 삶, 혹은 성공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걸.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에 어느 누가 기준을 정해서 평가할 수 있지만 그 평가를 굳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다는 것을. 내가 행복하고 만족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자신을 격려하는 시간을 늘려가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2021년 2월 11일 @raison_sone 일기 발췌>
소리에 취약한 편이다. 오감 중에서 가장 예민한 곳일 수도 있는데.. 시끄러운 음악을 못 듣는다. 청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피로함을 느끼기에. 그래서인지 이어폰을 꽂으며 음악을 듣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오디오를 켜고 노래를 들을 때도 중간 볼륨을 해놓고.. 잔잔히 귀에 맴도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선호하는 음악들은 중얼중얼 나지막이 얘기하는 프렌치팝, 보사노바 혹은 높낮이가 크지않은 클래식을 선호한다. (드뷔시, 마스네의 명상,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의 연주곡을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 한낮에 집안을 청소할 때 전축에 이 곡을 틀어놓던 엄마의 모습이 매칭 되면서)
어찌 보면 이 곡을 알게 되고, 이 곡을 즐겨 듣던 그때부터 나는 나를 잘 알게 된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한 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오늘 밑미의 1주년 맞아 열린 리추얼 전야제 프로그램 의 강연자들(김호 대표님, 최인아 대표님)의 메시지도 한결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