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네 Aug 26. 2021

커피는 쓰지 않습니다

익숙함에서 영감얻기2


"지난해 연말부터 #출근전읽기쓰기  리추얼을 할 때 모닝커피를 마셨다. 작년에는 드립백으로 커피에 입문을 했었고, 올해 첫날부터 핸드드립 장비가 생겨서 매일 내려마시기 시작했다. 애초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고 티를 더 즐겨마신 내가.. 매일 커피를 내려마시다니. 지인들이 새로운 나의 습관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사실 커피맛에 반했다기보단 커피를 내리면서 원두의 향과 물을 따르는 소리가 오감을 자극해서 커피를 내려마시게 된..

그러다가 3월... 이달 들어 모닝리추얼 시간에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다. 일종의 휴지기를 주고 싶었다. 더 오래 커피를 마시려면, 잠시 쉬어가는 타임도 필요하니깐... 최근에 동양가배관에서 받은 새로운 원두 맛이 너무나 궁금해서 회사에 드립 장비들을 챙겨 왔다. 동료들과 나눠 마시면 더 맛이 날꺼같아서... 이틀에 걸쳐 마셔봤는데.. 역시나 핸드밀로 간 맛과 전동밀로 갈아도.. 딱! 그 맛.

시중에 판매하는 핸드드립보다 더 고소하고 입에 착 맞는.. 신선한 원두의 향기를 느끼며, 다들 감탄하며 점심 후 커피를 즐기는 동료들을 보니 흐뭇해졌다.. 무엿보다 산미 없는 맛을 선호하는 내게 수묵화 원두가 가장 잘 맞았다. 다른 날에 다른 원두도 탐험하러 가야지... ☕️"
<2021년 3월 13일 @raison_sone 일기 발췌>


 아오리 사과,

 직접 내린 동양가배관의 원두.. 커피 한 잔. 


오늘의 아침이었다. 빈 속에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잠에 덜 깬 몸과 뇌를 깨우게 하는 의식적인 방법이다. 일종의 '리추얼'과 같은. 머릿속에 생각하기 전에 몸으로 반응하는 행동이 아니라, 먼저 뇌에게 명령을 한다.


'오늘 아침은 일어나서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실 거야.'


다른 날보다 단출한 밥상이었으나 매우 만족스러운 아침상이었다. 백신 1차 예방주사​ 를 맞은 후, 기력이 없었던 며칠을 보내며 빈 속을 달래줄 든든한 아침상을 먹어야 했기에 좋아하는 과일 계절과 음료를 메뉴로 정해다 보니 밥상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사과와 커피.. 어색한 조합일 수 있지만, 눈이 즐겁고 코와 귀를  자극하는 시간이었다.


최근에 구입한 마음에 드는 식기를 꺼내 좋아하는 연둣빛 색상의 아오리 사과를 담고, 엄마에게 물려받으며 커피 내릴 때 즐겨 쓰는 덴비 찻잔을 꺼내놓고... 원두를 갈으며 원두향을 맡다 보면, 커피포트에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린다.


'딸깍'


9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완성되면, 커피포트에서 핸드드립 주전자로 물을 따른다. 오늘은 마음과 달리 손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주전자에 손을 데었다. 반사 반응으로 주전자를 놓치고 바닥에 뜨거운 물이 흥건해졌다. 무릎에 물이 튀겼으나 얼음팩으로 빠르게 응급처치를 하고, 커피를 만드는 시간에 집중한다.


이제 아침상을 즐기는 시간이다. 차려놓은 메뉴는 많지 않아도 기분은 마냥 좋다. 출근 전에 잠시나마 내 기분을 달래줄 수 있는 시간을 1시간 이상 갖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하루. 일찍 일어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하루에 30분 혹은 1시간이라도 가져보려는 태도가 중요한 것. 그게 리추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오늘 원두는 평소 즐겨먹었던 남미산(브라질,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이 아닌 인도산이다. 동양가배관에서 만든 세 가지 원두, 텃밭(인도네시아, 인도), 단청(에티오피아), 수묵화(브라질, 과테말라, 인도) 중 텃밭을 골랐다. 산미가 덜한 고소한 맛이 배어 나오는 수묵화가 내 입에 잘 맞고 좋아하기에 이미 원두가 바닥이 났다. 아침에는 더욱이 내 속을 달래주려면 좋아하는 원두의 맛을 골라야 한다.

 

다행히 달달한 아오리 사과향과 맛이 내 입안을 가득 메워서 그런지.. 시도하지 않았던 텃밭의 맛이 고소하고 진하게 느껴졌다. 신맛이 덜했던.. '커피는 쓰다'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아침 리추얼을 통해 홀로 터득한 핸드드립 기술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내 일상에 커피를 즐기는 습관을 가져다주었다. 만족스러운 아침상이 되었던 이유도 나를 위해 만든 커피 한 잔이었기 때문에... 내가 따른 커피맛은 내 시간을 투여하여 만든 맛이었기에 달고 값졌다.



+ 올해 초 커피에 대한 글을 여러 번 썼다. 원래 커피를 즐겨마시지 않았던 사람이 핸드 드립을 알게 되고 홀로 배우며 터득한 과정을 담은 글들이다. 아침 리추얼의 과정에서 만난 결과물...


#다섯줄문장아침식사 리추얼을 하며 아침매거진의 요가편을 훑어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이 적혀있던.. 마침 그의 책이 있어 책장에서 꺼내봤다
세바시 리추얼도 덧.  8.26 오늘 아침리추얼 흔적.






매거진의 이전글 국밥이 그토록 그리웠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