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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Aug 30. 2021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게 힘든 하루

물건에도 제 자리가 있다

오늘도 쉴 새 없이 집안의 짐을 버렸다. 휴가를 받아 며칠째 쉬고 있는 반려자는 오전 오후 내내 열심히 집안의 짐을 덜어냈다. 등원과 출근 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익숙한 번호가 휴대폰에 떴다.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은 그가 다급히 반창고가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반창고 어디 있어? 짐을 정리하다가 손을 베여서"


분명 연고와 반창고는 주방 옆 나무 서랍장에 넣어두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며 그는 투덜거렸다. 정리하지 못한 채 서랍장에 온갖 연고와 약들이 섞여있어 못 찾았을지도 모른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혼자서 점심을 못 챙겨 먹고 집 정리를 계속하고 있을까 봐서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나와 차 시동을 걸었다. 그의 부탁대로 쓰레기봉투를 여러 개 구입하고, 폐기물 스티커도 1만 원 치 샀다. 약국에 들러 여러 크기의 반창고 세트도 챙겼다.


집에 들어서니 그가 보이지 않는다. 무심결 내 시선이 꽂힌 곳은 오늘 아침에 그가 열심히 청소를 하기로 했던 구역, 발코니 벽과 옷방의 창문틀이었다. 미안하게도 그의 상태는 뒷전이기 했다. 그 구역들 사이에 폈던 검은 꽃들이 보이지 않았다. 2년 전 처음 입주한 새집다워졌다. 청소 후 한숨 돌리고 쉬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고생했다며 반창고를 건넨 후 그를 재촉하며 점심을 먹자고 보챘다. 어제에 이어 오늘 점심도 중국집으로 향했다. 땀방울이 얼굴 곳곳에 송알송알 맺힐 정도로 점심 먹는데 에너지를 열중한 후 그가 젓가락을 탁 식탁에 놓더니 툭 내뱉는다.


"내일도 더 버려야 할 거 같아."


그의 말에 동의하며 나 또한 퇴근 후에도 다시 한번 집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확실히 물건을 사는 것보다 물건을 버리는   어렵다정말 원하는 물건이 필요한가에 대해 이리저리 따져 물건을 사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최근에 충동구매로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어찌보면 소비라는 것은 내가 필요한 것을 따져보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무너질 때 생기는 빈틈일지도 모른다. 좋지 못한 빈틈, 이와 반면 물건을 정리하고 배열하는 것은 내가 이성적일 때 가능하다. 마음에 혹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내 현재와 미래에 과연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인지 인지하고 여러 논거로 자신을 설득해봐야한다. 


물건의 쓰임을 따져보기 전에, 나의 경우 물건을 곧잘 잘 잃어버리는 편이다. 이동할 때도 양 손가득 물건을 쥐고 있는 편인데, 아이가 생기는 아이의 외출 짐과 내 핸드백까지 모두 챙기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나 휴대폰은 두개, 즐겨쓰는 지출카드도 두 개이다. 어떻게든 물건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점은 두 가지였다. 가장 잘 잊어버리는 자동차 키는 무조건 딸랑이가 붙어있는 키어링을 구매하고(그래야 어느 가방에 있든 구분이 된다), 신용카드는 사용한 후 바로 휴대폰 뒤에 부착한다. 가끔 카드를 상점 카드기기에 넣어두고 가져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혹은 주머니에 넣어두고 찾기 바쁜 적도 있었다.


이에 따라 분실된 물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눈에 보이지 않은 물건은 반드시 사용하기 전 공간에 늘 배치하고 있어야 한다!! 없어지면 순간 긴장이 풀려 매사 일에 더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찾고 싶은 물건을 못 찾을 때가 가장 애타는 시간이기에. 사람의 관계도 그럴까. 늘 그 순간에 있을 거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 매우 슬플지도 모르겠다. 나와의 간격이 이까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이 세상의 부재한 상태가 된다면.. 혹은 나와의 거리가 멀어져서 서로에게 의미 없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면...


마침 오늘 틈내어 읽었던 책 <쓰기의 말들> 에서는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을 건넨다.

세계는 복수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있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상대방의 '말귀'를 알아듣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남도 알겠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고 착각이다. 전 국민이 독자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배경 지식을 넣으면 더 많은 독자를 아우를 수 있다. 내가 학인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이거다. "나만 아는 업계 용어 쓰지 말자." 언론계에 통용되는 원칙도 있다.
'독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쓰기의 말들> 177페이지 중, 저자 은유, 유유출판사 


이처럼 우리가 하는 말 또한 서로가 맥락을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마치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라고 생각했다. 나만 아는 장소, 나만 아는 구역.. 그곳에 내가 찾는 물건이 고스란히 있으면 좋지만, 잘못된 망상으로 인해 자기 자리를 이탈한 물건을 다시 찾기란 어렵다. 그 물건을 같이 찾고 싶어 하는 사람 또한. 서로의 메시지를 읽고 어디에 물건이 있는지.. 공통된 규칙이 있어야 한다. 물건이 너무나 많아지면, 그 규칙의 장소를 지키기 어려운 것  같다.


'비워야 보이는' 이치처럼 비워고 채워가는 게 아니라, 비움의 미학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도 사람이 쓰지 않으면 검은 꽃의 곰팡이와 먼지가 쌓여가니.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쓸고 닦지 않은 관계는 켠켠이 먼지가 쌓여 서로를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가 멀어질지도.


출근 후 점심시간에 잠시 집에 들렀는데 새집인 줄 알 정도로 깨끗해진 발코니 벽과 창틀!
오늘 아침도 부지런히 <다섯줄문장아침식사> 리추얼을 했다.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내 기분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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