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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Feb 14. 2020

라떼는 말이야~미국 한번 가려면 비자를 대사관 가서..

날카로운 첫 외국의 기억

2004년 8월, 처음으로 나는 외국에 갔다. 


바로 미국! 아메리카!!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처음으로 인천공항에 국제선을 타러 간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비행기 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가야 한다고?"


"아니 공항이 왜 이렇게 커? 이 끝도 없이 펼쳐진 휘황찬란한 면세점 스트리트는 뭐야?"


지금이야 이때에 비해 비교적 여러 나라의 공항을 방문해보았고, 인천공항이 전 세계 공항 순위에서 매년 Top 3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땐 전 세계 공항이 다 이렇게 대단한 줄 알았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찾은 수첩에 붙여진 비행기표, 수하물표>


첫 해외여행으로는 진입장벽이 높았던 미국으로의 출국 준비는 험난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참석하는 자매결연 대학교 방문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음에도 관광 비자 B1이나 B2를 받기 위해서는 가기 몇 달 전부터 많은 서류가 필요했다.


미성년자인 내가, 미국에 가서 돈을 벌 생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능력을 잠시 빌려야 했지만 아버지가 평범한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서류는 간단(?)했다.


아버지의 주기적인 수입을 증명하기 위한 영문 재직증명서, 사원증 사본, 소득금액 증명원, 납세사실증명원 등 그리고 당신의 자녀가 미국에서 체류할 동안 쓸 돈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일정 금액의 은행 잔고증명서가 필요했다.


여행사에서는 부모님의 여권이나 미국 방문 여부, 나의 과거 해외 방문 여부 등을 종합하여 5년 복수 비자가 나올 수도, 90일의 단수 비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사관에 가서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내 여권에는 미국에 딱 한번 출입 가능한 USA VISA가 생겼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 입국하자마자 재사용할 수 없도록 볼펜으로 줄이 그어졌다.


<딱 한번 사용되기위해 발급받기까지 험난했던 미국 비자>


이 모든 과정이 꽤나 선택받은 상황(평범한 부모님, 학교 단체 방문, 전문 여행사의 도움) 임에도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같이 가는 친구 중에서는 복수 비자가 나온 친구도, 비자가 거절당해 가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단수 비자를 받았다.


나는 이날 이후, 미국에 방문하는 일을 암묵적으로 피해왔다. 왠지 강대국의 힘에 눌린 약소국의 국민이 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서 여행 갈 곳을 정할 때마다 그쪽은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 다시 방문한 건 강산이 변하고 난 뒤인 2019년이었다. 이것도 자발적 여행이 아닌 출장으로.


2008년 11월에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VWP(Visa Waiver Program)에 가입했고, 2009년 1월 12일부터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포함된 국가 국민들이 미국을 입국할 때 ESTA(Electronic System for Travel Authorization)를 통해 전자승인을 받도록 했다.


해외출장으로 신청한 ESTA는 입력할 것이 많았지만 순식간에 승인이 났고, 나는 2년 동안은 사전 신청 없이 미국에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었다.


<2년 복수 비자인 ESTA>


요즘 일본 정도야 당장 내일모레 출발 비행기표 살 정도로 무비자가 당연시되었지만 일본도 사실  없이 방문 가능한지 1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한국인들에게는 미국처럼 비자 발급이 힘들진 않았다. 여권 사본과 신청서만 대사관에 제출하면 불법 체류 기록이 없는 이상 인터뷰나 재산 판단 없이 무료로 하루 만에 비자를 발급해주었다.


<일본 비자, 2005년 발급은 해놓고 사정상 방문하진 못했다>


2006년 3월 1일부터 90일 이내의 체재를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무비자로 입국 가능하지만 아직도 일본은 중국인에게는 꽤나 엄격한 조건으로 사전 비자 발급을 요구한다. 각종 서류나 재산 증명서가 필요한 것을 보면 예전의 미국 비자 수준이다. 러나 단체관광비자는 비교적 발급 난이도가 낮아 당신이 일본에서 중국인들의 단체 패키지여행을 많이 목격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 이전에는 여권을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절차를 거쳐야 했던 우리나라가 이제 무비자 혹은 도착비자로 방문 가능한 국가 수를 기준으로 한 여권 파워 순위에서 일본, 싱가포르에 이어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위상이 상승했다.


처음 미국 여행을 갔을 때 마지막 날 가이드님이 Scott McKenzie의 San Francisco를 틀어주며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 여행이라고,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건 방랑이라고. 이 좋은 세상에 태어났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조금은 자유로워진 지금 미국에 대한 미운 감정도 약간은 넣어두고 여권의 사증 란이 모자랄 때까지, 나는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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