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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Feb 20. 2020

고수를 왜 못먹어?

베트남에서 만난 태국 바질

베트남 여행 3일 차, 분짜와 함께 나온 풀들을 먹으면서 (분짜는 면이랑 채소, 고기를 한입에 우걱우걱 먹어야 맛있다) 친구에게 말했다.


어? 나 이제 고수 먹을 수 있어. 야! 나 다 컸다


<베트남식 부침개인 반쎄오와 소스에 찍어먹는 쌀국수,분짜>


나는 고수를 혐오하지는 않지만 즐기며 맛있게 먹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적당한 향 채소는 로컬 음식의 향취를 올려주지만 너무 과도하게 넣은 고수와 어우러진 음식을 한입 먹는 순간에는 아, 또 고수 빼 달라고 말 안 했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세수하다가 먹은 비누 맛 같기도 하고, 설거지를 덜 한 그릇에 음식을 먹는 거 같기도 하고. 처음에 멋모르고 고수에 절여진 음식을 몇 번 먹다 보니 등 쪼 자우텀(베트남어로 고수 빼주세요)을 외우면서 다녔다. 음식 위에 살짝 뿌려진 고수는 겉어내면 된다지만, 국물 있는 음식 등에 잔뜩 고수가 섞이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고수 빼주세요 라는 말을 못해 먹게 된 고수죽>


그랬던 내가 동남아 여행을 여기저기 하다 보니 이번 여행에서 겨우 3일 만에 고수에 적응했나 보다! 하고 기뻐했다. 사실 그 나라의 음식은 그들만이 알고 있는 궁합이 있을 것이고 같이 곁들여 먹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매번 뭐 빼 달라하고 특별 주문하는 내가 조금은 유난스러워 보일까 걱정했다.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나의 희망 가득한 얼굴을 무참히 무너뜨렸다.


야 그거 고수 아니야. 태국 바질이래.



아니 왜 베트남 쌀국수에 태국 바질을 넣고 그래? 우리가 보기에 다 똑같은 채소 같아도 베트남 사람들이 먹는 요리에 곁들여 먹는 향 채소는 고수뿐만이 아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고수는 그 향이 강렬하지만 사실 그래도 착한 녀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수는 식중독균인 살모넬라균을 사멸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더운 동남아 지역의 음식에 고수가 유독 많이 들어가는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고수를 접해본 게 언제였더라. 2000년대 초반, 베트남 쌀국수집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던 시기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월남전을 지나면서 보트 피플(월남 패전 시 바다로 탈출한 베트남 난민)에 의해 유럽, 미국, 호주 등에 쌀국수가 전파되었고 98년 우리나라에는 미국 프랜차이즈 회사가 첫 포문을 열었다. 그 후 2000년 초반 이후 여러 브랜드가 가맹점을 내기 시작해 지금은 쌀국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베트남 요리를 파는 대중적인 음식점이 늘어났다.


하지만 고수를 잘 먹는다고 어른도 아니고, 못 먹는다고 초딩 입맛도 아니다. 친구가 고수 못 먹는다고 놀릴필요 없다. 당신이 만약 고수를 먹다가 비누향이나 세제 향, 화장품 향이 난다고 생각하면 당신의 후각수용체 OR6A2가 변이 되어 그런 냄새를 감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총인구의 4~15%가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오이향이 싱그럽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데 오이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것도 역시 쓴맛에 관여하는 TAS2R3 유전자 때문이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주문했을 때 피클을 싫어하는 내가 피클 빼고 시킨 햄버거를 "날 위해 이렇게 주문해준 거냐"며 오이 혐오자 친구가 홀랑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음식에 대한 취향은 경험이나 선호도만 고려해서는 전부 설명을 못 할 수 있으며 유전자와도 관계가 있다. 우리는 맛과 향을 감지하는 유전자를 조금씩 다르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식의 맛과 향을 다르게 느끼고, 결국 취향도 달라지게 된다.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던 게살 버미셀리, 고수는 살짝 걷어냈다>


하지만 미국의 유전자 분석 기업 연구 결과에서는 고수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 중 10% 미만만 유전적 변이가 있는 것이며 환경, 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또한 OR6A2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중 10%는 고수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고수를 싫어하더라도 자꾸 접하면 뇌가 냄새를 인식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방식이 수정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 베트남을 떠나며 먹은 마지막 아침식사에서 반미(구운 고기나 햄, 어묵 등을 넣고 매운 소스나 야채를 곁들여 먹는 베트남식 바게트로 동서양이 조합된 듯한 맛을 자랑한다.)를 주문할 때 친구는 제대로 된 베트남 음식을 먹어보겠다며 고수를 빼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본토 음식 정복에 조금은 성공했다.


그 후 2년, 다시 베트남에 갔을 때 나는 또 고수를 빼 달라고 주문하는 것을 잊었지만 스프링롤 안에 숨겨져 있는 고수를 먹으면서 괴로워하지 않았다. 내가 저 유전자를 소유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예전보다 좀 더 고수와 친해진 건 맞는 것 같다.

<베이비쉘크랩과 고수가 함께 어우러진 스프링롤>


아, 그런데 또 이거 태국 바질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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