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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May 29. 2021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좋아하네.

왜 말을 못 하니?


말을 많이 해서 힘든 것보다 말을 못 하는 게 더 힘든 나는 본투비 투머치 토커다. 하지만 내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말이 두 가지 있다. 고마워와 미안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끊임없이 누군가와 소통하고 엮이며 살아간다. 혼자일 때와 다르게 인간관계를 맺으면 감정을 주고받게 된다. 하지만 서로 표현을 하지 않고 짐작하거나 넘기는 것이 반복된다면 그들의 관계는 언젠가는 끝도 없는 구덩이로 빠질 수도 있다.


잘 맞는 사람과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편적인 정보로 상대방의 마음을 추측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불가능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궁예가 관심법을 쓸 수 있다고 헛소리를 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초능력이 없으며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표현을 해야 한다.




고맙다는 말은 상대가 중심이고,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중심이다. 고맙다는 말은 상대의 행동의 결과로 내가 느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미안하다는 말은 나의 행동의 결과로 상대가 느끼는 마음에 대한 염려를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낯 간지럽고, 나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서 잘 꺼내지 못 한다. 핑계지만 익숙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고맙다는 말 대신 땡큐, 고맙, ㄳ, 미안하다는 말 대신 미안, 쏴리, 먄 등의 변칙어를 만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표현을 잘 안 하는 것은 한국인의 특성이기도 하다. 일본인에게 혼네와 다테마에처럼 속마음과 겉마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면 한국인에게는 눈치라는 단어가 있다.


눈치 nunchi는 영어 위키피디아에도 등재되어 있다. '타인의 기분을 읽어주고 들어주는 미묘한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설명을 보면 한국인들의 높은 사회적 민감성에서 비롯되는 능력이며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남들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 허새로미'


우리 나라는 눈치가 없으면 비사회적인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모든 상황에서 저런 '미묘한 기술'을 구사하는 것도 썩 피곤한 일이다. 말하지 않은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상대방의 배려에 고마워할 줄 알면 그 행동에는 값진 의미가 부여되고 그의 베푼 마음은 더 빛이 날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은 '이 사람은 나의 배려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있구나' 하며 또 다른 배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나의 잘못에 미안해할 줄 알면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더라도 내 잘못을 되짚어 볼 수 있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상대방은 '이 사람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실수한 것이구나',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거나 우리의 관계를 망치는 것보다 자신을 낮추어 사과하는 것이 더 중요하구나'라고 여길 수 있다.


고마워할 일이 있었으면 고마워하고, 미안해할 일이 있었으면 미안해하자.


(참고자료)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 허새로미




월요일, 글밥 작가님은 '올림'과 '드림'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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