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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브래드슈 Jun 01. 2021

아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애엄마의 늪


"응애~"


새벽 3시. 아기의 울음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분유 먹일 시간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잽싸게 물을 끓이고 분유를 탄다. 아기는 눈도 안 뜬 채 입술만 바삐 움직이며 많던 분유를 순식간에 비운다. 트림을 시키는 것은 남편의 몫이다. 아기를 넘기고 다시 4시간의 쪽잠에 빠져든다.


결혼해서도 나의 늦잠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주말에 늦잠 자는 것은 나의 행복이었고 덕분에 우리 부부의 주말은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시작되었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로 내가 30년 넘게 지켜온 나의 정체성이 바뀌었다. 아내가 돼서도 사수할 수 있었던 나의 늦잠 취향은 애엄마가 된 후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아기는 엄마의 늦잠을 배려해주지 않았고 아기의 배꼽시계는 24시간 일정 간격을 지키며 정확히 울렸다. 다행히 3시간에서 4시간으로 간격을 넓혀가며 통잠이라는 미션에 달성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아내로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새벽 기상을 애엄마로서는 너무도 가뿐하게 해내었다.


아내로서 남편에 대해 크게 바꾸려 하지 않고 둘의 다름을 인정하며 조화롭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애엄마로서의 나는 남편을 내가 원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우리가 되고 싶은 좋은 부모의 모습에 대해 얘기하며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또한 한 번에 바꾸기 쉽지 않은데, 안되면 될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 중이다.  


아내가 오롯이 나를 중심에 두고 남편에 대해 생각한다면, 애엄마는 나를 내려놓고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남편이 사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사고 싶은 것과 비교하며 나도 못 사니 당신도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아이에게 좋아 보이는 것에는 깊은 고민 없이 지갑이 참 쉽게도 열린다.  


아내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이 남편 탓이고, 애엄마는 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내 탓이 아니어도 내 탓으로 생각하며 속상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아내도 애엄마도 모두 나인데,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나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인생의 시기에 따라 아내와 애엄마의 비중이 계속 변해가는 것 같다. 지금은 애엄마의 비중이 너무나 높아져 있어 다시 아내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내와 애엄마가 닮은 점이 있다면 내 옷 사러 갔다가 남편 옷이나 아이 옷만 사 오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내일, 음감 작가님은 '무엇을 할 것인가' 과 '무엇이 될 것인가'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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