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머문다는 건 쓱 보고 스쳐 지나가는 여행과는 다르다. 현지인과 이방인 경계 어딘가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여행자보다는 현지인들과 더 깊숙하게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삶으로 스며드는 기회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현지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독특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오묘한 위치에 계속 있다 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이 조금 더 말랑말랑 해지는 것을 자연스레 느낀다. 한국에 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맞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더 이상 맞지 않는 순간을 맞이할 때면 멘붕과 당황스러움에 압도되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머무는 국가가 많아질수록 그 당황스러움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곳에서는 어떤 것들로 놀랄까?라는 기대감으로 다름을 이해할 준비를 한다.
대만은 내가 처음 머물렀던 곳이자 아시아 문화권이라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이틀 만에 접게 했던 곳이다.
"103년 10월 29일"
대만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달력이나 공식문서, 영수증 여기저기에서 종종 봤었던 연도표기다. 대만 탄생일이라고 볼 수 있는 신해혁명을 기점으로대만식 연도를 표기한다. 처음에는 연도를 의미하는 줄도 몰랐다. 분명 2014년도인데 103년이라니.. 대만 친구한테 이상하다면서 왜 이렇게 표기하냐고 폭풍 질문을 했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인 2014년을 두고 103년이라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갔지만 점점 그 숫자에 익숙해져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수증(왼쪽) 여권신청서 샘플(오른쪽)
세계 여러 곳에 머물며 알게 된 각 나라별 날짜 표기법
대만처럼 독특한 방식은 아니지만 순서가 미묘하게 다르다.
한국은 2022.10.29
미국은 Oct.29.2022
르완다는 29.Oct.2022
대만은 111.10. 29.
정확히 2년 후,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아직 서툰 영어였기에날짜를한국에서 쓰는 방식 그대로 적었었다. 그것을 본 미국인 친구가 이상하다며 왜 연도를 앞에 적느냐고 물어봤다. 바로 내가 대만 친구에게 했던 질문이 아닌가!
단순히 날짜를 표시하는 것도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각 지역, 국가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고방식에서 생활양식까지 다른 부분이 정말 많을 것이다. 이런 다름을 마주할 때마다 고정된 생각의 틀에 껴 넣으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우리의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해주고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삶이 지루하다고 느낀다면 한 달만이라도 낯선 곳 어딘가에 머물러보길 추천한다. 슈팅스타를 먹었을 때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새로운 느낌을 인생에서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