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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와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올린 게 벌써 한 달 전이다. 주 5일 회사에 출근해 내내 전화통화를 하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인터뷰를 하고 녹취를 풀고 원고를 썼다. 계속 말을 부렸지만 내 몸은 묵언수행을 억지로 강요받은 사람의 것처럼 변해갔다. 뭔가가 안에서 부글대는데 그것의 정체를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일단 모른 체 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벌컥 쏟아지고, 세상만사가 귀찮고, 궁금한 것도 없고, 당장 다음 책 출간이 코앞인데 쓰고 싶은 글도 없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 부글대는 것이 어느 정도 끓어오르면 일기를 쓰거나 블로그에 아무 말 대잔치라도 해야 하는데, 그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하기 싫었다.
조금씩 반항하던 몸이 전면적인 파업을 선언한 건 엊그제 일이다. 누군가 위장을 꽉 움켜쥐고 비틀어 돌리기를 시전하는 것처럼 배가 아팠다. 새벽에 잠에서 깨 두 시간 정도 끙끙거렸다. 찜질기를 배 위에 올리고 선잠에 들었다 깨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회사로 갔다. 속이 뭉치니 자꾸 허리가 굽었지만 그 와중에 마감은 또 해야겠어서.
"선배, 아침부터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에요."
늘 해맑게 눈치 보지 않고 본인이 보고 느낀 바를 잘 표현하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옆자리 후배가 내 골몰이 어떤지 가감 없이 일러주었다. 걱정이 되니 일찍 퇴근하고 쉬라는 후배의 말에 "어, 그럴게. 이것만 해놓고 들어가려고."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 정신 혼미해지는 결정의 시간을 보낸 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돌아와서 필자가 보내온 외고를 수정하고, 디자이너가 작업 중인 대지들을 살피고, 사진 셀렉을 하고, "어, 이것만 해놓고 들어갈게."라고 다시 한번 답하고, 다음에 있을 중차대한 촬영을 위한 사전 준비를 하고, 교열자 선생님 작업 현황을 들여다보고, 마감 일정표를 다시 업데이트시키고, "어, 이것만.", 매우 중요한 작업을 맡겨둔 일러스트레이터 친구의 작업 진도를 체크하고 나니 오후 6시 10분 전.
결국 퇴근 시간까지 할 일을 다 해놓고 굽은 허리로 어기적어기적 집에 돌아왔다. 이놈의 책임감, 정말 징그럽기도 하지. 일생 그랬다. 내가 해놓아야 하는 일이 있으면 상황이 어떻든 내 컨디션이 어떻든 임무 완수를 위해 움직였다. 월간지 에디터로 일했던 10년 동안 120권의 잡지를 만들며 단 한 번도 마감에 늦은 적이 없어서 선배들에게 독한 년이란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을 정도다. 나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적' 세계가 아니라 꼭 해내야 하는 '필수적'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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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니 낮에 없던 열감이 느껴졌다. 병원에서 타 온 약 덕분에 복통은 사라졌지만 눈두덩이 근처가 절절 끓어서 눈을 감고 잠드는 게 힘들었다. 소파에 모로 누워 까무룩 선잠에 들었다 깼다 들었다 깼다 하면서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돌아오니 돌연 '아프니까 잘해줘라' 모드가 됐다. 몽롱한 상태로 중얼중얼. 이마를 좀 짚어봐라, 등을 좀 쓸어봐라, 시원한 귤을 까서 입에 좀 넣어줘라, 지난번 일은 미안했다, 내가 좀 나빴던 것 같다... 열이 한참 오르니 몸도 말도 두둥실 떠올라 흐느적댔다. 말이 통제를 벗어나 비적비적 새어 나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발설되지 못했던 묵은 말이 열기구처럼 마음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다 출구를 찾아냈다. 오랫동안 안에서 부글대던 그것이 끓어 넘쳐 말을 밀어 올렸다. 가만히 들어주는 남편 품에서 어릴 때 내가 좋아했던 엄마 살 냄새가 났다.
내가 땀을 흘리면서 낮잠을 자고 있으면 엄마는 입으로 호호 바람을 불어 이마의 땀을 말려주었다. 불안과 걱정 많았던 허약체질 유년기 시절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기억이다. 엄마가 입바람을 불어줄 때면 언제나 나는 완전히 잠이 든 것도 아니고 완전히 깬 것도 아닌 일종의 환각 상태로 이마께를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을 느꼈다. 그 바람 사이로는 언제나 엄마 살 냄새가 섞여 왔다. 맡으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넉넉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오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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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을 내리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지난 한 달 동안 내내 뒷목 언저리께에 걸치고 있다 결국 복통과 열로 표출해버린 갑갑증을 가볍게 넘겨선 안될 것 같았다. 번뜩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미리보기로 조금 훑어본 적이 있던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이었다.
"쉬면 나아질까, 기대하며 기다렸으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집안일, 운동, 외출, 책 읽기.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 슬럼프와는 증세 자체가 달랐다. 암반에 갇힌 불길이 아니라 불씨까지 타버린 잿더미였다. 욕망이라는 엔진이 꺼져버린 것이다."
미리보기로 읽었던 프롤로그의 문장들이 기억 저편에서 기막힌 타이밍으로 떠올랐고, 작가가 묘사한 무기력증이 꼭 지금의 내 상태 같아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어제 새벽과 오늘 아침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으며 알 수 없는 치유를 경험했다. '나는 나를 연료로 태워 움직이는 인간이었다'는 문장에 엄청난 감정이입이 되었다. 작가가 질주하듯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회고하는 구절에선 눈물이 줄줄줄 흘렀다. 그녀처럼 이른 나이에 온 가족을 책임지고 뛰는 가장이 되는 경험을 해보진 않았지만, '극단적인 두 성질의 충돌을 끊임없이' 겪는 내면이 어떤 상태를 뜻하는지, '달리지 않으면 고꾸라진다는 두려움'이 어떤 뜻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허겁지겁 다음 문장, 다음 문장, 다음 문장을 눈으로 좇으며 책 속 여정을 따라갔다.
17일간의 히말라야 환상 종주 일정이 끝나고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와 작가의 말을 읽을 때 즈음, 뭔가가 쓰고 싶었다.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일단 쓴다는 행위를 하고 싶었다. 노트북을 열고 새 문서 창을 열었다. 첫 문장을 쓰는 순간, 거칠게 쉭쉭 소리를 내며 뜨거운 수증기를 내뱉는 압력솥이라도 된 것처럼 양쪽 귀에서 뜨거운 것이 빠져나갔다. 한 달 동안의 침묵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