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러 가 극장에서 이렇게 울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울었다. 반 고흐는 언제나 감정의 뇌관을 건드려 통제 불가한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벌써 17년째다.
2000년 여름, 도서관에서 별생각 없이 꺼내 본 어린이 책 '태양을 훔친 화가'가 시작이었다. 만만하게 펼쳤다가 눈물 훔치며 덮었다. 2005년, 첫 유럽 여행 목적지는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였다. 라부 여인숙, 시청, 가셰 박사의 집 등을 둘러보고 반 고흐의 무덤에 갔는데 난데없이 오열이 터졌다. 그 뒤로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화가의 흔적을 찾아 유럽으로 떠났다. 파리, 암스테르담, 앤트워프, 아를….
사람들은 반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른 사실은 알지만, 그가 독학으로 경지에 이르렀다는 건 잘 모른다. 가슴팍에 권총을 쏜 건 기억하지만, 그림 그린 기간이 고작 10년 남짓이며 이 기간에 유화 860여 점, 습작 1100여 점을 남겼다는 건 잘 알지 못한다.
이 놀라운 창작력의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단 한 사람의 이해, 공감과 만난다. 동생 테오다. 빈센트의 재능을 온전히 신뢰하며 생활비와 물감비를 보내주었던 유일한 사람. 테오는 빈센트가 생전에 쓴 편지 600여 통의 수신인이기도 하다. 성취부터 치부까지 드러내고 나누었다. 지독하게 불안정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 빈센트가 자기 예술 세계를 이룰 수 있었던 건 테오라는 버팀목 덕분이었다.
반 고흐 형제가 나란히 누운 무덤에 가서야 나를 흔들었던 끌림의 진짜 이유가 테오였단 걸 깨달았다. '러빙 빈센트'의 대사처럼 "삶은 강한 사람도 무너뜨리곤 하지"만, 계속 살아낼 힘을 내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론 길에서 스치는 버스 기사님, 식당 이모님, 행인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한 사람일 거야' 생각하며 그의 가족이나 저녁상 같은 걸 상상하게 된다. 단절된 섬 같던 세상이 연결된 관계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1인분의 사랑'이 해낸 일이다.
* 12월 한 달간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글을 연재합니다. 첫 편은 제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화가에게 헌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