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카페 등에서 셀피 촬영에 몰두하는 이들과 대면할 때가 있다. 야단스러운 포즈와 연출된 표정을 본의 아니게 목격할 때 민망함을 느끼는 건 저쪽이 아니고 오히려 이쪽일 때가 많았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곡된 자기 이미지를 키우는 일에 왜 저리 열심이지 싶었다. 셀피로 SNS를 채우는 사람과 거리를 두었고, 미술관에서 셀카봉을 꺼내는 사람을 보면 혀를 찼다.
반면 자화상에는 쉽게 매료됐다. 렘브란트, 반 고흐, 수잔 발라동 등 생애 전반에 걸쳐 자기 자신을 작품 주제로 삼은 화가를 존경했다. 뭉크도 그중 하나였다. 흔히 뭉크 하면 <절규> 한 작품만 떠올리지만, 그는 유화 70여 점, 판화 20여 점, 수채화와 드로잉 100여 점에 이르는 자화상을 남겼다. 두상, 흉상, 전신상, 정면, 측면, 앉은 모습, 누운 모습, 입은 모습, 벗은 모습...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자화상을 통해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자신 안에 공존하는 강함과 약함을 낱낱이 기록했다.
오슬로 뭉크 박물관을 찾았을 때, 나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자화상과 함께 전시된 그의 셀피 때문이었다. 화가로서 자의식을 폭발적으로 표출한 1903년 작 <지옥에서의 자화상>은 이듬해 나체로 찍은 셀피와 유사했고, 쇠약해진 얼굴을 기록한 1909년 작 <코펜하겐에서의 자화상>은 그 무렵 병원에서 촬영한 셀피와 다를 바 없었다. 알고 보니 뭉크는 ‘셀피 광’이었다. 침대, 욕조, 해변, 작업실 어디서든 셀피를 찍었다. 예술가다운 선언이 느껴지는 사진도 있었지만, 자아도취에 빠진 나른한 사진도 많았다.
질문이 솟았다. 셀피와 자화상 모두 자기 얼굴을 통해 무형의 가치나 감정을 전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관찰의 대상과 주체가 동일인이고, ‘내 안에 너무도 많은 나’ 중에 어떤 얼굴을 전시할지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데 왜 현대인의 셀피는 나르시시스트 놀이로 평가절하하고, 화가의 자화상은 예술로 대접하는가. 물감 짜고 붓질하는 노동이 결여되었기 때문인가, 의도한 순간만 편집해 보이기 때문인가, 발표하는 공간이 가상 현실이기 때문인가.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결국 “너는 무엇이 예술을 예술로 정의한다고 믿고 있느냐?”라는 질문 앞으로 나를 끌고 갔다. 의심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미술의 힘이다.
* 2017년 12월 11일자 조선일보 '일사일언' 초고입니다. 최종 게재된 편집본과는 조금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