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책 출간 소식을 전합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저자 기증본을 받아본 건 수요일이었는데, 며칠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바쁘기도 했지만 그보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오래전 막연하게 그려본 생각이 이렇게 물성을 지닌 책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가히 미친 스케줄이었다고 해도 좋을 2018년에 기어코 시간의 공백을 만들어내어서 책을 마무리했다는 사실이 저조차 믿기 힘들었어요.
2019년은 아마 다른 해가 될 것 같아요. 곧 퇴사를 앞두고 있거든요. 읽고 쓰고 생각하는 데에 만족스러울만큼 시간을 쓰고 싶어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전업작가라 부를 수도, 백수라 부를 수도, 프리랜스 콘텐츠 디렉터라 부를 수도 있는 삶을 앞두고 있어요. 동시에 이사 준비도 하고 있어서 일상을 지탱하는 근간이 전부 다 새롭게 바뀌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신분의 변화, 사는 장소의 변화, 먹고 사는 방식의 변화를 앞두고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새 책까지 품에 안고 보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는 것인가'하는 청소년기스러운 질문이 떠나질 않네요. 마흔이 코앞인데 아직도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웃기기도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이번 책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은 2015년 어느 날에 시작되었습니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그림을 처음 본 날에 단어 하나가 제 마음 속에 심어졌어요.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떠났던 2015년 10월에는 이런 포스팅을 올리기도 했죠.
벌써 3년도 더 지난 글이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행복해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문장을 썼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어쩌면 여행의 첫 발을 떼던 그 순간부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을 써내려가고 있었나봐요.
같은 해인 2015년에는 "20대 때 고흐를 사랑했듯 30대 때는 뭉크를 살펴라. 그러면 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라는 강력한 계시를 좇아서 암스테르담으로 뭉크x고흐 전을 보려 가기도 했고요.
첫 코펜하겐 여행에서 저를 완전히 매료시킨 화가들을 더 깊이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모두가 스칸디 스타일을 외치고 아무 곳에나 '북유럽풍'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정작 그 미감의 뿌리에 대해서는 왜 궁금해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을 품고 2주 간의 미술관 여행을 떠났고요.
한국에 돌아와 다시 바쁘게 살다가 내면이 탈탈 털린 어느 시점에 다시 도망치듯 북유럽 미술관으로 향하기도 했어요. 포스팅에 "여행을 마친 지금은 답할 수 있다. 왜 문학이나 음악이 아니고 하필 그림인지, 왜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이 아니고 북유럽인지. 몇 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겨우 그렇게 됐다. 앞으로 천천히 써내려 갈 이야기"라고 적은 것을 보니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원고의 방향성을 이 시점에 어느 정도 잡았던 것 같아요.
"북유럽의 도시들을 걷는 동안 나는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하필 북유럽인지, 그곳의 화가들이 다른 나라 화가들과 어떻게 다른지, 무엇 때문에 이런 걸음을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했다. 그저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손짓하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이 어떤 신호라고 느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세계 속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영역 안으로 발을 들였다. 새하얀 냉기와 타들어가는 어둠을 통과해 매일 조금씩 어디론가 움직였다. 좌표도, 신호등도, 등대도 없었다.
북유럽 미술관에서 낯선 그림을 사전 정보 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그림 속 타인의 얼굴, 미지의 대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내 기억의 우물 어딘가에서 감정의 조약돌을 주워다 내 발 앞에 놓았다. 그저 색감이 예뻐서, 재치 있어서, 아름다워서 별 뜻 없이 발 길이 머문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도, 어느새 내 발 앞에는 작은 돌멩이가 놓여 있었다. 어딘지 익숙하지만 확실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감정 뭉치. 눈에 띌 때마다 주워 모았다. 그러다 글로 옮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중
언제나 그랬듯 앞으로도 끌림과 직관의 신호에 따라 글을 쓸 텐데, 어렴풋 예감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다른 글쓰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 말이죠. 제 인생의 어느 한 시기의 문을 닫고 새로운 문을 열 때가 되었다고 느껴요. 지금까지처럼 책과 브런치를 통해 그 과정을 지켜봐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상세 정보 보기
* 교보문고 : https://bit.ly/2FmiBDJ
* 알라딘 : https://bit.ly/2H8FwUK
* 예스24 : https://bit.ly/2D63LPi
* 인터파크 : https://bit.ly/2AGkkz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