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자립심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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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Flightaware.com에 접속했다. 실시간으로 항공기 경로를 추적해주는 사이트. 남편이 탄 비행편명을 적어넣었다. 지난밤 잠들기 직전 확인했을 때 4만 피트 상공을 날던 비행기는 하강 중이었다. 착륙까지 10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인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지금쯤 기내에선 이런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겠지.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 넣고 영혼 없는 얼굴로 침묵하던 사람들도 부스스 깨어나 생기를 되찾겠지. 땅을 밟는 순간 느껴지는 안도감을 기다리며 떨려하겠지. 마음속에선 나도 그 무리의 일원이었다.
실시간으로 항공기의 경로를 보여주는 사이트의 그래픽은 단순하고 조악했다. 무엇보다 지도 색깔이 몹시 촌스러운 파랑이었다. 세계지도를 한 뼘 크기로 줄여놓았으니 비행기의 이동이 시각적으로 느껴질리도 만무했다. 거의 제자리에 있거나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 따분한 궤적을 지난밤에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염원의 멘트를 동원해 축복했다. 부디,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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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산 지 2년 반이 되었다. 결혼식을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한 뒤, 유럽으로 와서 함께 살기 시작한 게 2013년 1월부터다. 10년 넘게 모진 서울 생활을 견디며 '혼자의 삶'을 꾸렸던 독립인으로서의 자립심은 응석 부릴 수 있는 존재 앞에서 허망할 정도로 쉽게 사라지고 말았다.
결혼 전엔 가방을 들어주려 하는 남자들 앞에서 질색했다. "내 짐인데 왜 네가 들어?" 반문했다. 남편에게는 늘 가장 무거운 가방을 맡긴다.
결혼 전엔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는 '잦은 연락'을 싫어했다. 하루에 한 번 문자 하는 여자친구였다. 남편은 시시콜콜한 일상과 감정을 모두 내게 털어놓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혼 전엔 혼자 하는 여행이 좋았다. 항공편, 교통, 숙소를 스스로 알아보고 예약하는 걸 당연히 여겼다. 남편과 함께 살면서 여행 준비는 늘 그의 몫이었다.
결혼 전엔 공과금을 따박따박 잘 챙겨 냈다. 남편과 살고 나면서부터 전기, 수도, 인터넷 요금 청구서를 내 이름으로 받지 않는다.
집에 벌레가 나타나면 쏜살같이 잡아주기를, 비행기, 버스, 기차를 타면 당연히 창가 자리는 나에게 양보해주기를, 내가 산책하고 싶을 때는 늘 같이 나가 주기를, 기분이 안 좋으면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고 투정을 받아주기를 바라며 살았다.
'예전에는 혼자서 어떻게 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면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하다.
오랫동안 일궜던 자립의 감촉을 어느새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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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남편과 떨어져 혼자 사는 생활이 시작된다. 타이밍의 기묘한 장난으로 남편은 한국에 먼저 들어가고 난 겨울까지 유럽에 남게 되었다. 유부녀의 한시적인 독신생활인 셈이다. 2년 반 동안 쥐도 새도 모르게 흩어져버린 내 안의 독립심과 자립심, 실종된 야성을 박박 끌어모으고 있다. 다시, 스타트라인에 선 기분으로. 응석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