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장의 무슬림 마마

그 곳에선 모두가 가족인데

by 에디터C 최혜진

오늘도 벨기에 언론은 '파리행 고속열차 테러 시도' 소식을 톱뉴스로 다룬다. 가슴을 쓸어내린 사건이긴 했다. 테러범을 진압한 미국 군인이 그때 친구들과 함께 휴가 중이 아니었다면, 목적지가 파리가 아니었다면, 다른 시간대 열차를 탔더라면, 승객 554명을 태우고 시속 300km로 달리던 고속열차 탈리스에선 최악의 총격 테러가 벌어졌을 테니까. 테러범 가방 안에선 자동소총 1정, 자동권총 1정, 탄창 9통이 나왔다. 200명을 살상할 수 있는 양이었다.

아유브 엘 카자니, 26세, 모로코 출신. 금요일 밤, 테러범 진압 소식을 속보로 전할 때부터 이슬람 극단주의자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IS에 가담하려고 시리아에 갔다가 유럽으로 돌아온지 석 달이 된 인물, 지난 1월에 벨기에에서 테러를 모의하다 사살당한 두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연락을 주고받던 인물...


지난주 내내 북한과 남한 사이의 극한 대치 상황을 보도하면서 당장이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유럽 외신들은 이런 테러 관련 뉴스를 참 차분하게도 전한다. 매달 탈리스를 타고 파리로 출장 가는 나는 뒷골이 뻐근할 정도로 심란한데.

근 60년간 "확 다 엎어버리고 전쟁 일으킨다"고 협박을 주고받지만 대국민 묻지 마 살상은 벌어지지 않는 나라에 사는 것이 더 불안한 것인지 아니면 박물관이나 시속 300km의 기차 같은 공공장소에서 무차별 총질이 벌어질 수 있는 나라에 사는 것이 더 불안한 것인지 모르겠다.


브뤼셀 집 근처에 EU 본부가 있어 그리로 통하는 동네 어귀마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있다. 이번 일로 그 수는 더 늘 것이다.



벨기에는 유럽에서 인구 대비 IS 조직원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 이 작은 나라(인구수 약 1,100만 명, 영토는 경상도 크기)에서 잊을만하면 테러 관련 뉴스가 터진다. 벨기에에 살기 시작한 2014년 2월 이후 벌어진, 내가 기억하는 사건만도 몇 가지나 된다. 브뤼셀 유대인 박물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4명이 사망한 일도 있었고, 경찰이 테러 모의 현장을 덮쳐 테러범 2명을 현장에서 사살한 일도 있었다.


벨기에는 가난한 이민자 가정 출신의 아이가 백인 주류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나라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 말이 된 한국 상황이 희망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브뤼셀에 살며 피부로 느꼈다. 백인 동네, 이민자 동네가 정확하게 나뉘어 있고 그들은 절대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 길 하나를 두고 동네 풍경, 건물 외관, 사람들 옷차림, 간판에 적힌 언어가 확확 바뀐다.

빈부격차의 병폐가 가장 심각하게 곪은 분야는 교육이다. 초등학교부터 '뺑뺑이 배정'이 아니라 '자율 선택'으로 학교를 고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백인 중산층 아이들 다니는 학교, 이민자 아이들 다니는 학교가 분리되어 있다. 백인 동네엔 당연히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포진된다. 사회가 포기한 이민자 동네에 임용되기를 바라는 선생님은 없으니까.

대표적인 이민자 동네인 몰렌벡 지역의 경우 20대 청년실업은 약 50%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 상당수가 무슬림 청년이다.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구조 안에서 쌓아왔던 좌절감과 분노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먹잇감이 된다.


브뤼셀로 이사 오기 전부터 이 곳의 이민자 문제를 대충 알고 있던 남편은 치안을 걱정하며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동네에 방을 얻었다. 동네 분위기는 화사하지만 집 근처 까르푸 마켓 식료품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장을 한 번 볼 때마다 직불 카드 계좌 잔고가 훅훅 줄어들어 마음이 철렁한다. 생활비 푸념을 들은 스페인 친구 파니가 오늘 안더레흐 일요시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클레멍소(Clemenceau) 지하철 역을 나오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차도르와 히잡의 물결. 고동색, 까만색 옷감으로 전신을 휘감은 채 바퀴 달린 시장 바구니를 끌고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무슬림 인파는 뒤에서 보면 근면성실하게 매번 집을 이고 기어가는 소라게 떼 같기도 했다. 그 사이에 눈이 시릴 정도로 높은 채도의 색깔에 커다란 야자수나 야생화가 과감하게 패턴으로 들어간 가운식 원피스를 걸친 후덕한 아프리칸 여성들이 드문 드문 섞여 있었다.


안더레흐 일요시장은 구원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평소 까르푸에서 1통에 1유로50성팀 하던 가지는 일요시장에선 3통에 50성팀에 팔고 있었다. 보통 400g에 6-7유로는 줘야 하는 체리는 1kg 훨씬 넘게 골라 담고 4유로를 냈다. 토마토 1kg이 1유로, 실한 사과와 자두를 1kg 골라 담으면 1유로 60성팀... 흥분감에 발그레해진 볼로 과일을 마구 담는 나를 단정한 콧수염의 상인 아저씨가 이렇게 불렀다.


"헤이, 시스터."

자두 1 상자 통째로 가져가면 3유로에 주겠다는 제안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한 상자는 너무 많아요."라고 답하자 눈웃음을 찡긋 보이며 "그치? 많긴 해." 하며 웃는다.


큰 전통시장에는 국적을 불문한 고유의 활기와 생의 아우성이 있다. 안더레흐 일요시장 상인들은 남대문 시장 상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골라. 골라."를 외치며, 자신 앞에 선 중년 여성을 모두 이런 말들로 부른다. 어이, 마마, 마마. 거기, 엄마. 막 들어온 옥수수 보고 가요.


마담, 무슈라는 호칭만 듣고 살다가 정신없이 언니, 이모, 엄마를 찾아대는 시장 상인들의 탁 트인 목청을 들으니 라자냐에 크림 소스를 찍어 먹다가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들이킨 듯 마음이 개운했다.



Anderlecht abattoirs.jpg 브뤼셀 안더레흐 일요시장의 옛 모습. 원래 도축장으로 쓰던 철제 건물을 시장으로 바꿔 사용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