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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Aug 24. 2015

[그림책 처방] 뭘 해도 미운 사람

최향랑 <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 

'질척하고 고통스러운 미움'의 감정이 저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두어번 쯤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자잘한 토라짐이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억울함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은 더 있지만, 정말 뼈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큰 미움은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생겨나는 것 같아요. 


첫째, 그 사람이 나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둘째, 그와 내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보기 싫다고 단박에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셋째,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에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재구성하고 검토하면서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넷째, 그 어떤 노력에도 도대체 파악이 안된다. 


제게 그런 미움을 갖게 했던 첫번째 인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별명은 '미친 개'였습니다.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매 타작을 하는 게 즐거워서 선생님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질을 심하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매서운 훈육을 하는 선생님이었다면 저희에게 '질척하고 고통스러운 미움'까지는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 문제는 체벌의 기준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을 종잡을 수 없었죠. 어떤 날은 괜찮았던 일이 다른 날엔 맞아야 할 이유가 되었으니까요. 맞으면서도 자신이 숙제를 안 해왔기 때문에 맞는 것인지, 문제를 틀려서 맞는 것인지, 짝꿍과 속닥거려서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체벌을 견뎌야 했습니다. '부당하다'는 불쾌한 기분을 풀 곳이 없는 여고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미친 개라고 부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두번째 인물은 회사 상사였습니다. 부하 직원의 노력을 자기 공인 것처럼 둔갑시키고, 정작 실력이나 일에 대한 철학은 전혀 없으면서 직함으로 권위만 내세우는 유형의 상사였습니다. 특히 괴로웠던 것은 역시나 그가 가진 '기준', 추구하는 '방향성'이 뭔지 당최 파악이 안되었다는 거였어요. 어느 날은 옆 팀 누군가에게 한마디를 듣고 해왔던 프로젝트를 홀랑 뒤집어 전면수정하라고 지시하고, 또 다음 날 다른 팀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었다며 재수정하라는 식으로 일 지시를 했어요. 업무 강도가 높아서 괴로운 건 그래도 견딜 수 있는데, 진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 건 그 작업이 무슨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지 알지 못한 채 팔랑귀 상사가 시키니까 해야하는 상황들이었죠. 힘 없는 부하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욕과 뒷담화 뿐이었습니다. 그 시기 팀원들이 쏟아내는 부정적인 말들의 홍수 사이에서 전 결국 상사가 아닌 우리 자신의 영혼이 피폐해지고 타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사이코패스가 울던 날 


당시 다른 팀으로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저는 어떻게든 상사를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도대체 왜 저럴까' '왜 저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걸까' 물음표를 1년 정도 끈질기게 붙잡고 상사를 관찰하다보니 '직함으로 권위를 내세우는 행동'은 '직함이 없으면 무시당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이고, '부하 직원의 공을 가로채는 것'은 '어떻게든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로 보이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전사 회식으로 대부분 직원들이 만취한 새벽에 어느 골목길에서 그 상사가 혀 꼬인 상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왜 사랑받아야 하는지 설명하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완전히 지쳐버린 어린 아이가 꺼이꺼이 울고 있는 것 같았죠. 그때 보였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밤에 저는 그가 열등감으로 점철된 유년기를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뼈가 녹아내릴 것 같았던 미움이 연민으로 바뀌어서, 정말 딱하다는 마음이 들었죠. 우는 상사의 등을 쓰다듬고 토닥이면서 '알고보면 이해 못 할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어렴풋 갖게 되었어요. 그 뒤로 전 그 분과 함께 일하는 것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림책 처방

냄새나는 털 뭉치 괴물의 내면엔  


못되고 뾰족하고 경직된 사람을 만났을 때, '저 사람 안에 얼마나 여리고 상처 많은 아이가 숨어 있길래 저런 식으로 방어막을 만들어냈을까' 생각하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일부러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려고 노력했어요. 분노와 열받음이 제 내면을 갉아먹는 '독한 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데는 그 방법이 꽤 잘 통하더군요. 그래서 최향랑 작가가 쓰고 그린 《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반가웠죠. 



이야기는 숲 속 동물들에게 옷 만들어주기를 좋아하는 한 재봉사 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동물들 사이에 좋은 입소문이 펴져 즐겁게 옷 만들기를 하던 어느 날, '쿵쿵쿵' 하는 굉음과 함께 시커먼 괴물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내게도 옷을 만들어다오!" 


고약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 괴물을 본 재봉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휴, 냄새야.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옷이 아니라 목욕인 것 같구나." 숲 속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서 냇가에 괴물을 끌고가 목욕을 시켜줍니다. 회색 털뭉치가 점점 깨끗해져서 하얀색 거대한 털뭉치가 되었죠. 그때 털뭉치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해요. "살려주세요. 저는 털 뭉치 안에 갇혔어요" 다시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털뭉치를 깎아내는 재봉사. 그 안엔...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주 작은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쿵쿵이는 한때 사랑받던 귀여운 강아지였습니다. 하지만 늙고 병들어 주인에게 버림을 받았고, 여기저기 떠도는 동안 털이 점점 자라 온 몸을 뒤덮게 된 것이었죠.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괴물이다!"라고 손가락질 했던 것입니다. 


전 이 장면에서 정말 전율을 느꼈습니다. 뾰족하고 날카롭고 공격적인 사람의 내면 안에도 저렇게 떨고 있는 여린 자아가 있을 수 있다, 공격성과 착취적인 행동은 숨어있는 여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비뚤어진 보호막일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에요. 또 그런 메시지를 이렇게 시각화할 수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책의 후반부는 재봉사와 쿵쿵이는 깎아낸 털뭉치를 실타래로 만들어서 예쁘게 물들여 털실을 만들고 숲 속 친구들을 위해 뜨개질을 하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마지막 장에서 쿵쿵이는 다시 마음 기댈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흥분감에 잠도 잊은 채 뜨개질에 몰입합니다. 활짝 미소 지으면서요.  




책장을 덮고 '미친 개'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그에게도 이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20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잊혀지지 않습니다. 공격성 안에 숨어 있던 여린 자아를 읽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도 그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방학, 우리반 학생들 모두 '드디어 해방되었다'라고 좋아하던 무렵의 어느 날,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뾰족한 말과 착취하는 행동, 공격성이라는 악취를 풍기는 내 주변의 사이코패스도, 

결국 외롭고 사랑받고 싶은 한 사람입니다. 

그를 너무 많이 미워하진 마세요.  



이 글에서 소개한 그림책은? 

최향랑 <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http://goo.gl/z3hH54


글을 쓴 최혜진

10년간 피처에디터로 일하며 크고 작은 인터뷰로 각기 다른 결을 지닌 1천여 명의 사람을 만나 수만 개의 질문을 던졌다. 10년 차가 되던 해에 유럽으로 날아가 3년 동안 살며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명화가 내게 묻다><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썼고, 현재는 <볼드저널>의 콘텐츠디렉터로 일한다. 그림책이라는 놀라운 예술 장르에 매료된 자발적 마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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