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초의 '사다드림'
얼마 전,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사다드림'이라는 걸 했다. 친한 후배 하나가 쭈뼛대며 보내온 카톡 때문이었다.
선배. 저 매체를 옮기게 됐어요...
음...지금까지 고생한 저에게 샤넬백 하나 선물하고 싶은데...
후배는 말줄임표를 평소보다 많이 썼고, 그건 그녀가 굉장한 용기를 내서 내게 부탁을 한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안다. 10년의 잡지 에디터 생활 대부분을 패션지에서 일했으면서도 명품과 담을 쌓고 패션계의 요란한 서커스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내 취향에 대해, 후배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브뤼셀에 있는 샤넬 부티크에 입장해 까만 제복을 입은 점원들에게 둘러쌓여 쇼핑하는 일을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일로 여기지 않을 거란 걸 그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게 부탁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그만큼 갖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는 의미였다. 좋아하는 후배의 그 마음을 내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샤넬백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그 아이의 취향과 욕망을 함부로 재단해서도 안 될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다드림을 했다.
전문 업체에 맡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구매대행은 부탁받은 사람보다 부탁한 사람 쪽에서 더 바쁘고 할 일이 많았다. 관세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얼마의 관세가 붙을 것인지, 면세 혜택을 받을 방법은 없는지, 이런 식의 해외 구매가 국내 구매에 비해 얼마나 저렴한지 찾아보고 계산하느라 후배는 인터넷 세상을 헤매고 다녔다.
한국 시간으로 늦은 밤 시간에 "선배, 이러이러한 방법을 쓰면 관세가 좀 저렴하대요." 같은 카톡이 날아올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월급보다 비싼 샤넬백을 이왕 사기로 했으면 시원하게 한국 매장에 가서 점원들의 온갖 추켜세움과 서비스를 즐겨가며 살 것이지,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며 컴퓨터 앞에서 눈이 빠지게 검색하고 계산하며 푸석해져가는 그 아이의 내적 분열이 안쓰러웠다.
명품에서 위안을 기대하면서도 그걸 갖기 위해 자신을 혹사시키는 월급쟁이들의 분열은 본인이 노동자임을 잊고 자본가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브뤼셀 워털루가(Boulevard de Waterloo)에 있는 샤넬 매장 풍경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건조한 표정으로 유리문을 열어주는 일만 하루종일 반복하는, 근사한 수트를 입었느나 일종의 경비 아저씨인 남자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똑같은 옷에 똑같은 힙색을 찬 판매원 몇몇이 다가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동양인 판매원 하나만 내 앞에 남았다. 명품 매장 어디에나 있는 중국인 판매원이다.
필요한 모델명을 말해주고 그녀가 재고를 확인하러 사라진 사이 매장을 둘러봤다. 머리도 감지 않고 슬리퍼를 신고 온 중국인 커플 앞에 색깔만 다른 여러 개의 핸드백이 펼쳐져 있었다. 구매대행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부티크 쪽에서 입장을 저지하고도 남을 차림이었지만,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국인 구매대행업자를 내칠 명품 매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 사이, 러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마담 하나가 향수 냄새를 풍기며 부티크에 입장했다. 부티크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진열된 지갑, 핸드백을 눈으로 훑었다. 1분도 되지 않아 "이것, 이것 하겠어요."라고 판매원에게 지시했다. 마트 쇼핑 카트에 식료품을 채우는 속도로 수백만 원짜리 물건을 담은 박스가 그녀 곁에 쌓여갔다.
나를 응대하던 판매원이 창고에서 돌아왔고 후배가 원했던 모델 가격이 그 사이 500유로나 올라 있다는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처음 예상했던 가격이 아니었기에 난 후배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 "그래도 사겠냐?"고 물어야만 했고, 후배는 다시 비교하고 계산하고 결정을 내리느라 쫓기듯 클릭, 클릭, 클릭, 광활한 하이퍼 링크의 세계를 헤매고 다녀야만 했다.
그녀의 결정을 기다리느라 샤넬 부티크 안에서 멀뚱하게 서 있는 동안, 힙색을 한 판매원들이 몇 분에 한 번씩 다가와 "더 보고 싶은 모델은 없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이제는 중국인 구매대행업자와 러시아 마담 가운데서 한국에서 국제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내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서글펐다. 후배도 나도.
후배는 결국 그 가방을 사기로 결심했다. 판매원은 커다란 박스와 쇼핑백에 샤넬의 상징인 하얀 까멜리아를 붙여 포장을 마쳤다. 난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이 골칫덩이를 한국으로 보내버리리라 결심했고, 바로 실행했다. 소포 무게를 줄이기 위해 쇼핑백도 버리고 박스도 버렸다. 가방의 무게는 고작 600그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