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카카오톡

그 호기심이 어디 갈까

by 에디터C 최혜진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한석규)이 아버지(신구)에게 비디오 플레이어 작동법을 알려주는 장면. 리모컨을 손에 쥐고 “전원을 켜고 이 버튼을 누르시면 돼요”라고 거듭 알려주지만 늙은 아버지는 이 '문명의 이기'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어 실수를 거듭한다. 처음에는 조근조근 설명하던 아들은 버럭 화를 낸다. 수업은 어색하게 끝난다.


늦은 밤, 아들은 책상 앞에 앉아 비디오 플레이어 작동법, 사진관 현상기 작동법을 글로 적기 시작한다. 자신은 1초 만에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더없이 쉬운 행위를 구구절절 문장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흐느껴 운다. 이까짓 비디오 하나에 쩔쩔 매는 아버지를 혼자 두고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원망, 무력감, 서러움이 터져 나온다.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두고 먼저 떠나야 하는 불치병 환자였다.



"혜진아, 길자가 오늘 아침에 카톡으로 이런 시구절을 보냈는데, 이거 아빠한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엄마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나를 다급하게 부를 때마다 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 숨을 후우 내쉬고 다짐한다. 절대 화내지 말자. 천천히 조근조근 끝까지 친절하게 가르쳐드리자.


우리의 수업은 대개 이런 멘트로 마무리된다.


"어후, 엄마 ㅠㅠ 그런 것까지 몰라도 된단 말야..."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신구 아저씨는 한석규에게 '반문'이나 '재질문'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질문 머신이다. 내가 '길자 아줌마와 나눈 대화창에 있던 시구절을 복사해서 아빠에게 보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사이, 엄마는 이미 후속 질문들을 한 다스쯤 준비해둔다.


"이런 좋은 글만 모아놓은 데가 따로 있냐?"

나는 구글 스토어로 들어가 '좋은글모음' 앱을 깔아드릴 수밖에 없다.


"아줌마들이 명절 때 이런 걸 보내던데 (특수 문자로 절 하는 사람을 그린 이모티콘을 보여주심) 이런 건 어떻게 하는 거야?"

다시 구글 스토어로.

어머니는 '이모티콘 라이브러리' 앱을 획득하셨다.



탈출구 없는 던전 같은 엄마 호기심의 종착점은 늘 청결 유지다. 방바닥에 머리카락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는 평소 취향 그대로 카톡에서 눈에 거슬리는 대화창(게임 추천 메시지랄지, 엄마와 친하지 않은 사람의 형식적인 메시지 같은 것)을 지워버리고 싶다고 요청하신다.

사실 엄마가 가장 먼저 배운 카톡의 기능은 '지우는 법'이었다. 새로운 기능에 대한 끝없는 질문으로 나를 지치게 해놓고 이미 수십 번 알려드린 지우는 기능을 또 알려달라고 할 때, 엄마의 청결 강박에 질려서 난 참았던 그 말을 내뱉고 만다.


"어후, 엄마!! 그만 좀 해."





지난주에 엄마가 휴대폰 번호를 바꾸면서 카톡 앱을 다시 깔고 친구를 새로 등록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내 쪽에서 엄마의 새 번호를 등록하고 카톡 친구 맺기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가 찾아지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반대로 엄마가 내 벨기에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입력하고 카톡 친구 연동을 시켜서 나를 찾아내는 일을 해야만 한국와 유럽 사이, 엄마와 나 사이 직통선이 뚫리는 상황이었다.


"엄마가 알아서 해볼게."


난 이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으응, 주말에 형부 만나서 해달라고 해. 알았지?" 주말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은 수요일 밤, 엄마는 나를 찾아내 보이스톡을 걸어 왔다.


"우와. 엄마. 어떻게 했어?"

"이게 니 벨기에 번호라면서. 집 앞에 있는 올레 대리점 가서 번호 보여주면서 알려달라고 했지."


엄마의 의기양양한 목소리에서 뿌듯함이 넘실넘실 댔다. 외국 휴대전화 번호를 가진 딸을 카톡에서 찾아내는 방법이 궁금해서 주말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엄마는 결국 호기심을 그렇게 발산시키셨다. 대리점 직원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로 친구 등록 방법을 배우고 있을 엄마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터졌다. 시트콤 한 장면 같아서.


우리 엄마는 나 없어도 카톡 따위에 쩔쩔 매지 않겠구나 싶었다.

대견해서 웃다가, 엄마와 나 사이, 비행기로 13시간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그 거리감이 체감되어 갑자기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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