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표, 전단지, 영수증과 이별하기
2007년 가을, 후배 한 명과 함께 휴가를 겨우 쥐어짜 유럽 플랑드르 미술관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국립박물관(Rijks Museum),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브뤼셀 왕립 미술관,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과 벨기에 지방 도시 몇 곳을 도는 9일 간의 휴가였다. 아마 셋째 날 즈음이었던가. 작은 갤러리가 모여있는 골목에서 한 집 건너 한 집에 들러 전시 브로셔를 끝없이 모으고 있는 내게 후배가 말했다.
선배는 왜 종이만 보면 지나치질 못해.
네덜란드어도 모르면서 그건 왜 다 가져가요. 무겁기만 할텐데.
며칠동안 내 행태를 지켜본 후배가 걱정이 되어 한 말이었다. 그녀의 걱정은 일리가 있었다. 갤러리부터 바, 레스토랑에 들를 때마다 전단지와 무가지, 팜플렛이 있으면 빠짐없이 집어 들었는데 그 부피와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언제 다시 와보겠냐'며 미술관에서 사재낀 도록 무게까지 더해지니 기차역 계단을 만날 때마다 입에서 끙 소리가 났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었다. 차마 버려지지 않았다. 영수증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다 추억인데 어떻게 버려' 곤란한 표정으로 슈퍼마켓에서 사 먹은 물과 샌드위치의 영수증까지 모았다. 버스표 지하철표 같은 것은 두 말할 것 없고.
모든 게 다 소중했다. 고흐 미술관에 가기 위해 탔던 트램 티켓, 브뤼셀에서 처음 사 먹은 홍합, 난생 처음 혼숙의 세계를 알게 해준 유스호스텔에서 정성껏 준비한 근교 여행 상품 브로셔, 낯선 타이포그래피와 색감으로 새로운 미감에 대한 눈을 뜨게 한 갤러리의 전시 홍보물, 안에 담긴 내용물이 오이 절임인지 살구 잼인지 섬유유연제인지 치약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마냥 근사하게 느껴지던 슈퍼마켓의 포장 용지들...
낯선 이국의 '인쇄물'은 하나같이 매혹적이었다. 다 쓴 지하철 티켓과 슈퍼마켓 영수증을 바닥에 펼쳐놓고서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한 앤디 워홀의 작품- 캠벨 수프나 브릴로 세제-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한참동안 바라보는 게 좋았다.
한국에 돌아오면 그 종이 쪼가리들을 커다란 서류 봉투에 정리했다. 정리라기 보다는 '처넣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겠지만. 어쨌든 봉투에 <2007년 암스테르담>이라고 마커펜으로 크게 쓰고 그 안에 넣었다. 다시 꺼내서 볼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냥 보관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봉투는 <2004년 방콕> <2005년 도쿄> <2005년 파리> <2006년 베니스, 피렌체> 등 이미 여러 개였다. 양 볼 가득 도토리를 우겨넣은 다람쥐처럼 여행지에서 만난 모든 순간을 주머니 가득, 가방 가득, 볼이 미어터지게 밀어 넣었다.
그 뒤로 8년, 30대 중반의 여행은 다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며 몸이 피곤해지는 게 싫다. 샌드위치 영수증 따위는 아무 의미없고, 트램표는 쓰고 나면 재깍재깍 잘 버린다. 전단지나 브로셔에서 낯선 미감을 발견하고 흥분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설사 일어난다 해도 그걸 '갖고싶어 안달'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집착을 버리지 못한 품목은 딱 하나 남았다. 미술관표 인쇄물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라 미술관에만 가면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에서 '다 가져가고 싶다'라고 꿈틀대는 내 안의 욕망을 살살 달래어 한 두 개의 브로셔만 챙긴다.
버스표, 전단지, 영수증을 버릴 수 있게 된 30대의 여행은 좀 더 홀가분하다.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감각이 둔해지고 있다는 증거로 느껴져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하기도 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쓰레기통 앞에 서서 호주머니를 비워낼 때마다 아주 작은 풍경 하나, 사소한 순간 하나까지 싱싱한 눈으로 바라보고 기뻐하고 감정이입하고 소유하고 싶어했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실감한다. 그런 것이 나이듦이고, 평생을 '처음 여행하는 사람'처럼 살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변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게 어색할 때도 있다. '40대, 50대, 60대의 나는 여행하면서 무엇을 버리게 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정신이 아득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