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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Oct 09. 2015

[그림책 처방] SNS에서 박탈감 느껴요

줄리 폴리아노 <고래가 보고싶거든>    


to 에디터C


SNS에서 박탈감 느껴요


대학교 3학년입니다. 지금은 휴학 중이에요. 작은 그림책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책과 작가 소개문을 손수 써서 진열해놓으면서 보람도 느끼고 제 취향에도 잘 맞는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라고 생각하지만, 매일 6~7시간씩 서점에서 혼자 보내는 터라 지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합니다.

게다가 제 동기들은 거의 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어서 SNS를 통해 친구들의 생활을 보면 자꾸만 제 현실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SNS에서 보는 친구들의 일상은 설렘이 가득해 보이고 매일이 새롭고 즐거워 보이거든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도 미래의 제 꿈을 위해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이 되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에 나만 자꾸만 뒤쳐지는 것 같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고, 게으른 제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기도 합니다. 졸업 후를 생각하면 막막해요. 휴학 기간 동안 저만의 목표를 다잡고 싶었는데 자꾸 흔들리네요.




카.페.인 우울증


SNS 상에서 우리는 대개 즐겁고 화려합니다. 멋진 휴가지 풍경, 심미안을 자극하는 화려한 음식, 업무나 학업에서 크고 작은 성공 등 일상에서 가장 빛나는 하이라이트만을 찍어서 올리니 당연한 일입니다.


낯선 외국에서 모자란 언어 실력으로 버둥거리며 정착해 본 경험이 있는 저는 교환학생으로 가 있다는 동기들이 SNS에 올리지 않는 구질구질한 현실이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거주증을 받기 위해 이민자&외국인 관리소의 직원들의 온갖 딴지를(때로는 모욕을) 견뎌야 하는 순간이나, 아시아인을 보면 바가지를 어떻게 씌워볼까 머리를 굴리는 상인들, 길을 걷다 보면  "니하오"라고 외쳐대며 음흉한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는 시선 같은 것들요.


'기쁨'과 '좌절' 둘 다 중요한 삶의 속성인데 좌절 부분은 슬그머니 도려내고 화려한 순간만 편집해 SNS에 올려놓으니 당연히 보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집니다. 보지 않고 몰랐다면 느끼지 않았을 부러움, 선망, 질투를 SNS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게 되는 거죠.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타인의 삶을 지켜보며 박탈감과 우울감에 빠지는 현상을 '카.페.인 우울증'이라 부르더군요. 이런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보편적 현상이고, 아래의 단편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닌  듯합니다.


https://youtu.be/QxVZYiJKl1Y 




질투의 속성


굳이 보지 않아도 될 남의 화려한 순간을 우리 눈앞에 들이미는 것 말고 SNS가 질투를 유발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SNS에서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지인, 친구 등 준거집단 속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나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만 질투심을 느낍니다. 준거집단 속 지인들이 SNS에 올리는 화려한 일상은 내가 조금만 손을 더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 있습니다.


패리스 힐튼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하면서 그녀가 하룻밤에 1000만 원짜리 호텔에 머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학교 과동기가 하룻밤에 20만 원짜리 호텔에 머무는 것을 보면 질투심이 생기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독보적으로 화려한 사람에겐 질투심이 생기지 않고, 나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처지 중에 약간 더 나아 보이는 사람에게 질투심이 생긴다는 것.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이렇게 객관적으로 질투심을 바라보면 들끓는 감정에서 빠져나와 약간의 숨 쉴 틈이 생기기도 합니다.



발전한 사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보다 높아진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해 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모습 사이에 늘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중



반응형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SNS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어요. 좋은 반응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올린 사진이나 게시물에 공감, 댓글, 좋아요 수가 적게 달리면 갑자기 불안을 느끼거나 의기소침해진다는 것입니다. 반응을 더 끌어내기 위해 답글을 일일이 달아주거나 답방문을 열심히 하거나 '하트와 공감이 힘이 된다'고 넌지시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심리도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물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문제는 상대방의 반응에서만 의미를 찾는 반응형 인간이 될 위험이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 반응이 신통치 않아도 나에게 의미가 있으면 됐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SNS를 계속 이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반응이 부족하면 불안해지는 반응형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이 SNS 시대에는 그래서  더욱더 자기 내면에 집중하고, 자신이 원래 하려던 일에 몰입하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페이스북을 생각 없이 보다가 기분이 울적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이 그림책  『고래가 보고 싶거든』을 펼칩니다.



줄리 폴리아노가 글을 쓰고, 칼데콧 메달 수상 그림작가인 에린 E. 스테드가 그림을 그린 『고래가 보고 싶거든』은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래를 보고 싶어 하는 한 아이에게 들려주는 조언의 말들이 시처럼 새겨진 책이죠.

아이는 창문 너머 바다를 보며 고래를 꿈꿉니다. 멀리 보이는 고래 모양 섬, 언덕 위에서 바라본 고래 모양 구름을 보면서 ‘혹시 저게 고래일까?’  의아해하다가 이내 향기로운 분홍 장미, 신기하게 생긴 펠리컨, 깃발을 펄럭이는 배, 무시무시한 해적선에 마음을 뺏겨 버려요. 그런 아이에게 책 속 화자는 단호하게 조언합니다.


고래가 보고 싶다면 바다에서 눈을 떼지 말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렴.




책의 모든 그림이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페이지, 그토록 기다리던 고래가 바로 곁에 와있는 장면은 엄청난 감동을 줍니다. 이 마지막 장면 전까지 이곳저곳을 헤매면서 막막해했던 아이의 여정에 감정 이입을 했던 터라 전 이 장면에서 굉장한 전율을 느꼈답니다. 그림책 속 아이는 기다렸던 고래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모른 채 먼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어요.

  

  

이 책을 한번 보고 나면 '원래 내가 집중해야 할 게 무엇이었던가' 찬찬히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들에 시선을 뺏기지 말고, 원래 내가 원했던 것으로 돌아가자. 묵묵히 내 길을 가자. 기다리자. 그러면 언젠가 고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마음을 다잡게 해줍니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경험이라는 걸 알면서도 SNS에서 보이는 친구의 삶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당연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시간 낭비를 하고 있거나 게으른 게 아니라 꿈을 향해 먼 길을 가던 중 잠시 시선을 빼앗긴  것뿐이죠.


그러니 이제 시선을 바다로 돌려 다시 집중하세요. 기다리세요. 고래는 바로 당신 곁에 와있으니까요.

            

고래가 보고 싶거든

작가 줄리 폴리아노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4.02.24



글을 쓴 최혜진

10년간 피처에디터로 일하며 크고 작은 인터뷰로 각기 다른 결을 지닌 1천여 명의 사람을 만나 수만 개의 질문을 던졌다. 10년 차가 되던 해에 유럽으로 날아가 3년 동안 살며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명화가 내게 묻다><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썼고, 현재는 <볼드저널>의 콘텐츠디렉터로 일한다. 그림책이라는 놀라운 예술 장르에 매료된 자발적 마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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