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선 사람

관조 응시 묵상이 피어나는 곳

by 에디터C 최혜진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것만 보면, 카메라 뷰파인더 속으로 빨려들어 찰칵, 셔터를 누르게 된다. 편애를 넘어 애착을 통과해 집착에 이른 것.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을 집착이라고 한다면 나는 창문 혹은 창가에 선 사람에게 집착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창가에 선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어떻게든 사진으로 남겨 그 순간을 박제하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유도 모른채 '혈관 속 피에 그러라고 써있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지의 버스 안에서 별 생각없이 위를 슥 올려다 봤는데, 이름 모를 광장에서 고개를 한바퀴 휘 돌렸는데, 창가에 작게 누군가 매달려 있으면 등줄기가 따끔거릴 정도로 짜릿했다. 평소에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운동신경을 가졌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뇌에서 도파민이라도 분출되는지 잽싸게 카메라를 낚아챌 수 있다.


0.5초도 되지 않을 찰나에 박제한 사진 속 사람들은 턱을 괴고 몽상에 잠겨 있거나, 전화기를 귀에 대고 나른한 표정으로 미소 짓거나, 불온한 눈으로 창밖의 사람들을 살피거나, 일을 잠시 멈추고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거나, 담배 연기를 후욱 뿜어내면서 마음의 매듭을 풀어내고 있다. 때론 내게 시선을 던지고 빙긋 웃어주는 천사들도 있고.


창가에 서서 창밖으로 나른한 시선을 던지는 일은 집요한 목적의식에서 해방된 행위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매순간을 낭비없이 살라며 재촉하는 흐름에서 잠시 빠져나와 그것에게 등을 돌리고 자기 안의 공백으로 걸어들어가는 일. 고요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보는 일. 눈길을 모아서 한 곳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간.















이렇게 창가에 선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 뒤에 존재하는 칠흑 같은 어둠에 대해 생각한다. 그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일상의 배경이 창가 사진에서는 어둠으로 표현된다.

그들이 등을 돌리고 서있는 방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어떤 응접실에서 어떤 장식의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실까. 어떤 걸음걸이와 어떤 속도로 집안을 거닐까. 저 어둠 안을 부드럽게 채우는 음악은 뭘까. 나와 마주하고 선 저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그래서 창문은 나에게 저마다 하나의 이야기다. 상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입구이고 기꺼이 넘나들고픈 문지방이다.


'관조(theoria)'라는 말을 철학적 개념으로 쓰기 좋아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명 창가에 매달려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감각이나 감성을 통해 얻어지는 인식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딘가, 그 은은하게 향기나는 것들을 바라보며 음미하는 시간. 창가에 선 사람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