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삼일 전

그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by 에디터C 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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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금요일 밤 11시 4분


소파에 앉아 인터넷을 보던 파니가 다가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혜진, 네가 지금 브뤼셀에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두 시간 전에 파리 시내에서 연쇄 테러가 났대."


BFM, France Radio 등 24시간 뉴스 채널 사이트에 들어가 속보를 읽었다. 축구 경기장, 레스토랑, 콘서트홀에서 자살 폭탄 테러와 총격이 있었다. 총격 피해를 받은 레스토랑의 깨진 유리창 사진이 최초 보도용 사진으로 퍼지는 중이었다.


충격적이었다. 브뤼셀에서 불과 1시간 20분 떨어진 곳이고 매달 출장으로 오가는 파리였다. 하지만 마감이 당장 코 앞에 닥친 기사에 대한 고민이 머리에 한가득 들어앉았던 차였다. 뉴스를 보고 놀라고 경악했고 '새로고침'을 누르며 속보를 기다리긴 했지만, 당장 닥친 내 마감보다는 덜 화급했고, 우리 가족 일보다는 덜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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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금요일 밤 11시 18분


파리에 사는 지인들, 특히 프랑스 그림책 작가 인터뷰 연재를 함께 작업하고 있는 포토그래퍼 안부가 많이 걱정됐다. 카톡을 보냈다.


'실장님, 테러 뉴스 보고 연락드려요. 지금 댁에 계세요? 괜찮으신 거죠?'


조금 뒤 온 답장.


'저희가 같이 식사했던 레스토랑이에요. 그 표적 중 한 곳.'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난 화요일에 파리에서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인터뷰를 마치고 점심을 함께 먹었던 레스토랑을 말하는 건가 싶어서 재차 물었다.


'엊그제 밥 먹었던 거기요?'

'네..'

'네?'


'프티 캉보주' 주방에서 일을 하던 캄보디아 주방장, 싹싹하게 음식을 챙겨주던 아르바이트생, 계산대에 서 있던 키가 큰 백인 매니저, 그 옆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연신 테이크아웃 주문을 포장하던 키가 작고 마른 캄보디아 아르바이트생 청년 얼굴이 한 명 한 명 떠올랐다. 불과 3일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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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화요일 오후 1시 20분


8개월 동안 속을 끓이던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인터뷰를 마치고 포토그래퍼와 점심 먹을 곳을 고민했다. 인터뷰 촬영을 한 아틀리에는 파리 10구 생 마르탱 운하 근처였다. 세련된 음식점과 숍이 모여 있는 동네. '프티 캉보주'는 두 쪽 벽을 통유리창으로 시원하게 마감해 채광이 좋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 찾았는데도 사람이 빽빽했다. 운 좋게 빈 4인석 자리가 딱 하나 있었다. 우리가 짐을 풀자마자 옆에 혼자 온 마담이 합석을 했다.


통유리창 앞에는 사람들이 참새처럼 나란히 앉아 와글와글 수다를 떨면서 국수를 먹었다. 식당 안에 있는 모두가 활기찼기 때문에, 통유리창 앞에서 까만 재킷을 입고 혼자 앉아 서툰 젓가락질로 국수를 입에 밀어 넣던 직장인 여성 뒷모습이 유독 외롭게 느껴졌다. '아마 사무실이 이 근처인가 보지?' 생각하고 눈을 돌려 주방을 봤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두건을 쓰고 면을 삶던 주방장은 밥솥 뚜껑을 열더니 그 안에 있는 더운 물에 동그란 라이스페이퍼를 푹 담갔다가 휙 건져 익혀냈다. 그리고 속을 넣어 월남쌈을 말기 시작했다. 포장용 음식이 완성되면 홀을 챙기는 캄보디아 청년이 박스에 척척 담아 포장을 했다. 주문 순서대로 계산대 옆 철사에 종이 가방을 매달아 놓으면 금세 주인들이 나타나 가방을 받아갔다.


요즘 가장 뜨는 맛집이라더니 듣던 대로 음식 맛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오는 길, 바깥에서 통유리 쪽을 바라본 풍경이 예뻐서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식사 중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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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금요일 밤 11시 45분


다시 뉴스 사이트에 접속해 조금 전에 흘려보았던 테러 사진을 다시 보았다. 그 장소였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3일 전에 내가 앉아서 밥을 먹었던 바로 그 자리가 보였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일 수 있었다.

나도 그 곳에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저 사람일 수 있었다.


그제야 실감이 집채만한 파도로 밀려왔다.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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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토요일 새벽 2시 24분


"얘, 사람 살고 죽는 거 한 순간이다" 살면서 이런 말은 자주 들었다. 삼풍백화점 사고가 났을 때, 바로 직전 백화점에서 나온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다 오금이 저려 그만둔 적도 있었다. 1초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릴 수 있다는 것, 우리 삶이라는 건 연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쯤은 머리로는 백번 안다. 하지만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는 늘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화학무기로 죽어간 시리아 아이들 시체를 뉴스에서 볼 때, 끔찍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테러리스트 동영상을 뉴스에서 볼 때, 화가 나고 침통했지만, 그보다는 내 일, 내 일과, 내 약속, 내 일상이 늘 더 중요하고 화급했다. 때론 이런 생각도 했다.


'휴, 저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휴, 내가 저기 없어서 다행이야'


TV 뉴스에서 폭탄이 터지고 커다란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나오는 전쟁 영상들을 볼 때, 아유 아유 앓는 소리를 했어도 마음속에서 나는 늘 '구경꾼'이었다.


나도 희생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몸으로 강하게 느끼고 나니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어쨌든 나는 안전해서 다행이야"라고 말해야 할 테지만, 그 말을 하려면 '누군가는 죽었지만 타이밍 덕분에 나는 살았으니 다행이야'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적나라하고 이기적인 말을 짖이겨 머릿속에 밀어넣어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름 끼친다.




덧.

지금은 여기 시간으로 새벽 3시 19분입니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저 개인의 혼란을 달래기 위해 쓴 글입니다. 파리 테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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