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작가인 것처럼

쓰고 싶다는 욕망, 쓰라는 재촉

by 에디터C 최혜진

1

"스페인을 즐기는 게 아니라, 스페인을 앓는구나"


성탄절 휴가를 스페인 그라다나, 친구 파니와 어구스틴 부모님 댁에서 보냈다. 열흘동안 집을 떠나 있었는데 휴가 막바지에 이상한 방식으로 몸이 아팠다. 콧물 기침이 끊이지 않았고 전에 없던 햇빛 알레르기까지 생겨 피부는 불긋불긋, 눈물은 줄줄.


몸이 아플 이유는 딱히 없었다. 맛있는 스페인 가정식이 매끼 식탁에 차려졌고, 어딘가로 이동할 때는 늘 가족의 승용차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며, 어딜 가나 스페인어로 대신 주문을 해주는 친구가 늘 옆을 지켰다.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의 부담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고, 낙오와 방황의 가능성도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낯선 이국에서 혼자서 밥을 먹고 10시간씩 걷는 여행을 할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알 수 없는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어 휴가 막바지엔 몸을 앓았다.


스페인에는 소브레메사(Sobremesa) 문화가 있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온 가족이 한참동안 테이블을 지키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문화. 바캉스 기간은 더 여유롭다. 간식과 타파스를 포함해 하루 5끼를 먹고, 먹고 나면 소브레메사를 하니 결과적으로 하루종일 온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스페인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는 전망 좋은 테라스에 앉아서 안달루시아 지방식을 맛보는 순간에도 내 안에는 이런 생각이 가득했다.


'아, 내 방에 얼른 돌아가서 혼자 고요하게 있고 싶다. 이 경험을 소화시켜서 글로 쓰고 싶다. 뭐든 읽고 생각하고 쓰고 싶다.'



2

브뤼셀 내 방으로 돌아와 혼자 멍하니 이틀을 보냈다. 방안을 채운 공백과 정적이 기특하고 고마워서 자꾸만 만지작거렸다. 의미없는 짓들을 했다. 지나간 편지를 꺼내 읽고, 옛일기장을 뒤적거렸다. 밤에는 창문을 열고 달빛을 쬐면서 라디오헤드의 새 곡 Spectre를 오십 번쯤 들었다.


정신이 피곤을 벗고 다시 싱싱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에선 "어서 책상에 앉아 글을 써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허리가 아파서 새벽 서너시쯤 잠에 깨는 날이면 컴컴한 어둠 속에서 늘 들려왔던 목소리, 이틀쯤 아무 생각 없이 빈둥거리면 슬그머니 자책감과 함께 들려오던 목소리, 잘 쓴 책을 만날 때마다 뼈 아프게 들려오던 목소리였으니까.


무엇을 어떻게 쓰라는 재촉의 목소리인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냥 '뭐든 쓰라'는 부추김, '잘 쓰고 싶다'는 욕망만 있을 뿐이다.


글을 한 줄 쓰지 않는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까스로 만들어내는 몇 마디의 말이 알함브라 궁전보다 볼만하거나 스페인식 타파스보다 맛난 것도 아닌데, 심지어 어떤 글이든 쓸 때마다 '준비가 덜 된 기분, 모자람이 까발려지는 기분'에 시달려서 도망가고 싶으면서 왜 이렇게 뭐든 쓰라는 재촉이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걸까.


쓰고 싶다는 욕망, 쓰라는 재촉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3

글을 쓰기 위해선 '글이 써지는 정신 상태'로 입장해야 한다. 돋보기로 햇빛을 끌어모아 한 곳을 지긋하게 쬐어 연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어두컴컴한 의식 한 귀퉁이를 끈질기게 노려봐야 한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걸어나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심안을 사용하는 그 순간의 몰입감이 좋다. 글을 쓸 수 있도록 정신이 준비된 상태일 때, 심안이 깨어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즉흥적 발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글쓰기의 즐거움이다. 뿌연 연기가 가득찬 생각의 방 안에서 문장을 한 줄 한 줄 겨우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구나' 깨달을 때, 창문이 왈칵 열리며 신선한 공기와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올 때, 그래서 내 생각의 방 구석구석을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나는 행복하다.



4

2014년 2월 첫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을 내고 출판 관계자분들이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송구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이 쩔쩔 맸다. 그 호칭은 내 능력에 비해 너무 거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사를 글로 쓰고, 그 글을 묶어서 책을 내는 삶. 그러니까 작가의 삶을 꿈꾸면서도 '나는 작가입니다'라고 선언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첫 책 출간 후에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그때 내 중심을 잡아준 건 이 글이다.


스스로 자신을 진지하게 작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도 당신을 작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쓴 책이 출판되면 잠시나마 자신감이 오르겠지만 출판이 되었다고 해서 '당신은 작가'라는 인식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회의를 이겨내기 위해 '마치' 자신이 작가인 '것처럼' 나아가야 한다.

글쓰는 시간을 정했다면 그 시간을 온전히 소유하라. 문을 닫고 바깥 세상과 교류를 끊어라. 그래봐야 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도대체 무얼 써야 하나 고민할 뿐이라도 괜찮다.
그게 바로 작가들이 하는 일이다.

- 바바라 애버크롬비


2015년 1월에 이 글을 책상 앞에 붙였다. 잡지사에 보내는 여행 에세이나 인터뷰 원고, 두번째 책 출간을 목표로 쓰는 명화 에세이와 그림책 에세이, 사소하게는 블로그에 안부를 전하는 글까지 모든 글의 첫 문장은 두려움과 떨림이었다. 회의감에 마음이 작아질 때마다 벽에 붙은 이 글을 읽었다. 마치 작가인 것처럼, 마치 작가인 것처럼, 마치 작가인 것처럼. 어쩌면 주문을 외운 건지도 모른다.


그 결과,

총 6708km를 이동해 10명의 유럽 그림책 작가를 만났고, '창작, 창의성'에 대한 원고지 500장 분량의 글을 썼다.

이탈리아 볼로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포르투갈 리스본 포르투, 독일 프랑크푸르트, 덴마크 코펜하겐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에 대해 총 7편의 기사를 써서 다섯 군데 매체에 기고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도서관이야기>에 12편의 글을 썼다.

네이버 <오늘의 책>에 12편의 글을 썼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에 27편의 기사를 썼다.

블로그에 17편의 <명화가 내게 묻다> 에세이를 썼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19편의 <그림책 처방> 에세이를 썼다.

브런치에 28편의 산문을 썼다.


그리고,

올 한 해 14개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았다.



5

스페인에서 보낸 성탄절 휴가 덕분에 내가 본래 어떤 사람인지, 행복을 느끼는 자리가 어디인지 역설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광장보다는 골방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자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느라 끙끙대는 이 짓을 평생 할 것이며, '글이 써지는 정신 상태'에 입장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낄 거라는 확신.


조지 오웰은 "책 한 권을 쓰는 것은 오랫동안 고달픈 병을 한 차례 앓는 것만큼 길고 맥 빠지는 싸움이다. 거부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마귀에게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자발적으로 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 옆에 있는 마귀는 힘이 세다. 그의 옆에서 나는 행복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