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가다

내 친구 파니 이야기

by 에디터C 최혜진

1

1월은 헤어짐의 달이었다. 3년간 이어졌던 유럽살이를 끝냈다. 브뤼셀 집 우편함에 붙어있던 이름표를 떼고, 짐을 처분하고, 야금야금 모아서 산더미를 이룬 각종 자료와 살림을 한국에 가져갈지 버릴지 결정해야만 했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교민이 많이 살지 않고, 배에 짐을 실어 보내는 서비스도 존재하지 않는 벨기에에서 한국으로 짐을 부치기 위해선 손 떨리는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무게가 곧 돈으로 환산되기에 다른 이사 때보다 추억에 야박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절대 버릴 수 없다고 모아놓은 책만 이미 이민 가방 두 개 분량이었다. 더 냉정해져야만 했다.

유럽 생활을 시작했던 프랑스 보르도에서 "하나 둘 셋 un deux trois" 불어 공부를 하며 풀었던 각종 문제집, 노르망디 여행을 갔을 때 에트르타 해변에서 주워온 하트 모양 돌멩이, 벼룩시장에서 사서 인터뷰를 하러 갈 때마다 입었던 황토색 트렌치코트, 볼로냐 아동도서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등 각종 도서전에서 이고 지고 온 브로셔, 지난 2년간 매일 아침 꿀 따러 온 꿀벌처럼 들러 붙어 홀짝였던 에스프레소 머신... 이 모든 것과 헤어졌다.



2

이삿짐을 쌀 때는 한때 정을 주고 사랑했던 대상이 그 빛을 잃고 사그라드는 걸 감내해야 한다. 생활의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빛나던 물건들은 누런 종이 박스 안에 들어가면 예외없이 짐으로 바뀌어 생활의 민낯을 드러낸다. 짐을 빼낸 집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다. 온기가 차츰 빠져나가고 공간에 적막함이 감돌면 '여기가 정말 내가 살았던 그 곳인가' 어리둥절해지고, 아예 텅 비어버린 집을 보노라면 짐을 꾸릴 때부터 조금씩 느끼고 있던 작은 조급함과 불안감, 서글픔의 정체가 돌연 코 앞까지 바짝 다가온 느낌이 든다. 그건 바로 인생의 한 시기가 끝났다는 체감, 그리고 불확실성이 기다리는 다음 시기로 넘어가야 한다는 당면 과제에 대한 부담감이다.


이런 느낌이 최고조에 이르는 건 바로 이사 전날 밤이다. 한때는 내 공간이었으나 이제는 낯설어져버린 빈 집에서 이삿짐들 사이에 몸을 뉘어야 하는 순간. 잠은 쉬이 오지 않고 그 집에서 보낸 시간들, 지난 추억이 하염없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때. 비극적인 사건이라곤 하나도 없는데도 자꾸만 마음이 슬퍼지는 밤.


브뤼셀에서의 마지막 밤에 결국 나는 울고 말았다. 두고 가야 하는 것들 중 가장 크고 소중한 존재, 친구 파니 때문이었다.



3

'어른이 되어 만난 사람과 진정한 친구가 되긴 어렵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때는 인생의 중요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시간과 함께 차츰 무게를 잃고 내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정을 주고 아끼던 관계가 옅어지고 결국 증발해버리는 것이 어릴 때는 슬프고 속상했다. 깜빡 실수로 놓쳐버린 풍선이 둥실 떠올라 저 먼 하늘로 소멸하는 걸 지켜보는 심정으로 관계를 놓쳐버린 나의 무심함을 자책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러려니’ ‘원래 인생이란 게 이런 것이겠거니’ ‘모든 관계를 움켜쥘 순 없으니’ 따위의 말을 되뇌인다.

마음은 훨씬 고요하지만 그런 식으로 모두를 흘려보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친하다는 것,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서른 네 살에 사귄 친구, 스페인 사람 파니와는 십대 여고생들처럼 친구가 되었다. 절친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15년 만이었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둘의 모국어가 아닌 제3의 언어인 불어로 대화를 했고, 서로의 나라에 대해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알 수 없는 인연으로 영혼의 깊은 곳까지 내어보이는 사이가 됐다.

새벽 3시까지 자기검열 없이 서로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아팠던 시절의 상처를 꺼내 보이며 함께 우는, 어른이 되어서는 새로 사귀기 어렵다고 말하는 '약점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성탄절 연휴 때 스페인에 함께 갔을 때는 파니의 부모님과 동생들은 물론 외할머니, 이모, 사촌 동생, 동네 이웃들, 파니 남자친구 아구스틴의 부모님, 누나, 이모, 이모부, 사촌들까지 만났다. 그들은 헤어질 때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언제든 너를 환영하는 스페인 가족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고 꼭 다시 돌아오렴."


지구 정 반대편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과, 그것도 한참 닳고 닳은 어른이 된 후에 이런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으로 떠나는 출국 전날, 이삿짐을 가득 쌓아둔 집에서 파니와 나는 절친을 전학 보내는 여고생들처럼 훌쩍거렸다. 어른스럽게, 그러니까 조금은 쿨하게 "곧 다시 만나자" 말해야 했지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파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따로 눈물을 쏟았다. 내 옆에는 남편이, 파니 옆에는 남자친구 아구스틴이 있어서 우리는 각자의 모국어로 이 이별이 얼마나 속상한지 토로했다. 이삿짐이 놓인 황량한 집안에 한국어와 스페인어가 포개지고 채워졌다. 아마도 같은 이야기였을 두 개의 언어.


다음 날,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앞에서 마지막 포옹을 했다. 눈물이 또 쏟아졌다. 어른이 되어서 비교적 수월했던 헤어짐이 원래를 이렇게 아렸던 것이었다. 두고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을 얻었다. 3년의 유럽 생활이 내게 준 선물은 한 명의 사람이었다.



4

오늘 새벽, 스페인에 있는 파니가 서울에 있는 내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스페인 사람들은 쓰지 않는 낯선 한국 어플을 검색하고 다운로드 받고 서툴게 익혀가면서 나를 찾아냈을 그 아이의 수고가 고마웠다. 친하다는 것,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의미하며, 그 심리적 가까움은 서로를 위해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 아이 덕분에 다시 기억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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