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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May 08. 2016

리어카 할머니의 몸무게

횡단보도 파란불이 깜빡였다. 보행자는 대부분 길을 건너 뿔뿔히 흩어진 뒤였다. 식료품으로 가득찬 무거운 장바구니를 어깨에 들쳐매고 와다다 반대편을 향해 뛰었다. 횡단보도 끝에 도착했을 때 즈음, 거대하게 쌓아올린 폐품 더미가 꿈틀꿈틀 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횡단보도 앞에 정차하고 있던 택시 지붕 위로 빼꼼히 솟아올랐던 그 거대한 쓰레기 산은 신호 대기 중인 자동차들 앞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횡단보도 경계석 앞에서 방향을 틀었다. 비스듬하게 굴곡을 그리며 인도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은 듯 했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자동차들은 거추장스럽다는 듯 폐지 더미를 향해 크락션을 울렸다.


리어카를 운전하는 할머니는 기이할 정도로 몸집이 작았다. 허리를 ㄱ자에 가깝게 굽히고 계셔서 정확한 키를 알기 힘들었지만, 많이 잡아도 145cm였다. 폐품 산의 크기에 비해 할머니 몸집이 말도 안되게 작아서 금방이라도 리어카가 쓰러질 것 같았다. 얼른 리어카 손잡이 한 귀퉁이를 잡았다.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유, 고맙네. 솔찬히 무걸텐디."


할머니는 리어카가 넘어지지 않게 꼭 두 손으로 잡고 있어야 해서 흘깃 곁눈으로 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잠깐 사이에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얼굴에 함박웃음꽃이 폈다가 졌다. 할머니 옆에 붙어서 손잡이 가장자리를 잡고 함께 리어카를 밀었다.


"근데 할머니. 제가 한 손에 이걸 들고 있어가지고 두 손으로 못 잡겠어요."


장바구니는 어깨에 맸지만 한 손에는 시장에서 사온 도시락김 16개들이 봉지를 들고 있던터라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돕는 것도 아니고, 안 돕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 같아서 미안함을 토로했더니 할머니는 화끈하게 말씀하신다.


"짐 샀구마이. 요 앞에 올려부려."

"아! 그러면 되겠네요."


커다란 김 봉지를 리어카 폐품 옆에 올리고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할머니는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손수레를 끌듯 리어카 손잡이를 무릎까지 내려서 운전하셔서 그 높이에 맞추려면 나도 허리를 ㄱ자로 굽혀야 했다.


허리를 완전히 굽히고 SUV 차량 정도 크기와 높이의 폐품 리어카의 무게를 느껴보니 입에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른쪽 왼쪽 @#%$^#$"

"할머니, 조금씩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해야 한다구요?"

"아이, 내가 @#$^$%^ 헌께 @#!@$@%."


리어카를 끄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만 보고 걷는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말은 거의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할머니, 이거 진짜 무겁네요. 이 동네 사시는 거예요?"

"나? 나는 전라도 사람이제."

"전라도 사시는데 여기에서 일을 하세요?"

"이, 여도 살고. 니가 앞을 보랑께. 오른쪽 왼쪽 말을 혀."

"아~~~~, 제가 앞엘 보면서 뭐가 나오면 방향을 말하라구요~ 네, 알겠어요!!"


할머니와 함께 스무 발자국쯤 걸었을 때부터 허리 근육이 성화를 내기 시작했다. 끊어질 것 같다고, 이렇게는 10미터도 못 간다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팔은 떨렸다.  


"할머니, 허리 안 아프세요?"

"허리가 겁나게 아푸제. 긍게 내가 허리를 못 펴."


폐품 산이 너무 높아서 할머니는 아예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앞에 장애물이 없는지 확인하는 건 내 몫이었다.


"할머니, 앞에 사람 와요."

"사람이 오는 건 괜찮어. 지들이 피해가니께. 자동차가 오는 것이 문제지."

"여기 턱이 하나 있어요. 쬐끔만 오른쪽으로 틀어요."

"할머니, 오토바이가 있으니까 여기는 좀 천천히 가요."


조타실 선장이라도 된 것처럼 입으로 나불나불 운전을 해가며 리어카의 무게를 나눠 지고 걷는 그 길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반대편에서 다가와 우리를 스쳐가는 사람들은 왜 저리도 무심한 표정인 건지, 땀은 비오듯 솟고 옆에 계신 할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던 그 무렵,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평소에 걸어다닐 땐 공사장 먼지를 피하느라 종종걸음으로 빨리 스쳐지나가던 곳. 문제는 인도에 깔려있는 커다란 철판이었다. 철판의 두께가 너무 두툼해서 리어카를 아무리 세게 밀어도 타이어가 철판에 걸려 올라가지 않았다.


"아아, 어떻게 해요. 할머니."

"야야, 너는 잠깐 비켜봐라. 내가 뒤로 물러났다가 빨리 밀면 된다."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번씩 이 길을 오가셨을 것이다. 거기에 공사장이 있고, 높은 턱이 있다는 것 쯤은, 할머니가 앞을 보며 운전하지 않아도 인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아서 거대한 폐품 산을 피해간다는 사실 쯤은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할머니 말씀대로 리어카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끊어질 것 같던 허리를 펴는 순간, 옆을 지나가던 젊은 남성이 우리 앞에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주세요."


그 남자는 혼자서 리어카를 밀어서 공사장 턱도 훌쩍 넘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할머니는 리어카에서 손을 뗐지만, 여전히 리어카를 밀고 있는 것처럼 고부라진 허리를 펴지 못하셨다. 두 무릎에 손을 올리고 바들바들 떨면서 한 발씩 천천히 걷다가 당신의 시야에서 리어카가 조금씩 멀어지니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야야, 애기야. 니가 후딱 쫓아가. 저 이는 길도 모르는디."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낯선 남자분과 고부랑 할머니 사이 중간쯤에서 나는 할머니가 가르쳐주는 방향을 전달하는 내비게이터 역할을 해야만 했다.


"저기요! 지금 나오는 골목에서 좌회전 하셔야 한대요오오!!!"


우리를 구원해준 그 멋진 남자분은 리어카를 고물상 안쪽까지 말끔하게 주차해주고 훌쩍 떠나셨다. 고물상 앞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아까부터 나오기 시작한 땀은 그칠 줄 몰라 안경은 자꾸만 미끄러지고, 어깨에 걸쳤던 장바구니도 자꾸만 미끄러지고, 저 멀리서 바들바들 떨며 겨우 걸어오는 할머니를 보면 자꾸만 마음이 허물어져서, 나는 도저히 무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진짜로 고맙구마이. 야야, 니 짐 챙겨라. 고물상이 가져가뿌기 전에. 아까 봉께 좋은 짐 샀드만."


할머니는 아까 리어카 위에 올려놓았던 내 도시락김 봉지 걱정을 하셨다. 할머니가 좋은 김이라고 칭찬해주신 동원김 봉지를 리어카에서 내려서 다시 팔에 끼고,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고물상 앞에 도착한 할머니를 다른 팔로 꼭 안아드렸다.


"할머니이이, 좋은 하루 보내세요오오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할머니 어깨를 감싸안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할머니는 너무 작아서 품 안에 들어오고도 넉넉하게 남았다.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사람.


고물상에서 나와 대로로 나갔다. 머릿속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자동재생됐다. '아까 봉께 좋은 짐 샀드만. 아까 봉께 좋은 짐 샀드만. 아까 봉께 좋은 짐 샀드만.'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아, 헤어질 때 할머니께 김을 선물로 드릴걸. 바보같이 이제야 그 생각을 하다니.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길, 할머니의 굽은 허리 위에 놓여진 삶의 무게를 고작 몇 분 느껴본 내 팔과 다리와 허리가, 저 안쪽부터 작게 흐느꼈다.


image credit : George Clausen, Gleaners Coming Home,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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