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나무><나의 계곡> 작가의 창작노트
우리는 모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을 들으며 자란다. 어린 시절의 습관이 여생에 영향을 미치므로 나쁜 태도와 습관이 배지 않도록 일찌감치 교정을 해줘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망친다)는 이 속담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요즘은 모두가 유년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능, 정서, 인지능력, 사회성 뿐 아니라 자존감까지 어릴 때 세팅을 잘 해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학습지 광고에서부터 TV 육아 예능까지 이런 논리는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젊은 부모들은 무섭다. ‘나조차 서툰 인간인데, 혹여나 내가 부족해 아이를 망치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거다.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잘 빚어놓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에 이런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기저기 육아서에서 배운 지식을 잔뜩 머리에 넣고 어색한 말투로 공감과 훈육의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버럭 다그치고는 야밤에 울면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뇌 발달에 좋다는 교구와 장난감을 검색해 보느라고 정작 아이에게는 “나중에 놀아줄게”라는 말을 반복하는 주객전도의 상황들.
프랑스 아주 작은 시골 서점에 가도 가장 먼저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국민 작가 클로드 퐁티의 유년기는 어둡다. 프랑스 언론에는 잘 밝히지 않는 내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꺼내주었는데, 그게 참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폭력적이고 매사 계산적이었던 아버지와 타인을 지적하는 행위에서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했던 어머니. 부모님이 마음을 헤아려준 적은 없었다. 반대와 오해, 강압으로 자신을 틀에 가두려 한 존재로만 기억되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나왔고, 스물다섯 살 땐 아버지로부터 연을 끊자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의 임종 소식도 멀리서 전해 들었다. 어머니 얼굴도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앞선 논리대로라면 어두운 유년기를 보낸 클로드 퐁티에게는 창의력이나 자존감 같은 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반대다. 나는 클로드 퐁티보다 큰 스케일의 상상력과 섬세한 언어 능력, 굳건한 자존의 심지를 가진 그림책 작가를 알지 못한다. 이 반전의 비밀은 뭘까.
그의 그림책에는 ‘퐁티 스타일’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이야기 구조가 반복해 등장한다. 이야기 초반 꼬마 주인공은 낯선 세계에 도착한다. 나무에서 떨어져 무서운 잎사귀 괴물이 사는 동굴에 빠지거나(『끝없는 나무』), 산책을 나갔다가 괴물에게 잡아 먹혀 괴물 안에 존재하던 환상 세계를 탐험하거나(『Bih-Bih et le Bouffron-Gouffron 비비와 부프롱 구프롱』),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 베개 인형과 함께 돌산으로 추방된다(『심술꾸러기 두두』).
이후 여정은 예측불가능한 장애물로 가득하다. 모든 것이 가능한 상상의 세계다. 거북이가 하늘을 날고, 중력이 사라지며, 사람 귀 모양을 한 새가 살고, 하늘에 씨를 뿌리면 나무가 위에서 아래로 자란다. 주인공은 늘 어딘가에서 굴러떨어지고, 잡아먹히고, 쫓기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모든 과정을 어른의 도움없이 홀로 통과해낸다.
주인공은 결말에서 대부분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데, 착한 일을 하거나 뭔가를 잘 해서 상을 받듯이 해피엔딩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본의 아니게 처해졌던 환경을 잘 통과해내고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다. 어린이 책 결말에 흔히 등장하는 교훈 같은 건 없다.
인터뷰 중 클로드 퐁티가 했던 이 말은 그의 예술적 세계관과 어두웠던 유년기를 끊어낸 그의 비밀을 잘 담고 있다. “시도해보고, 감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배우고, 다시 해보면서 변화하는 게 사람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은 거짓말이에요. 그 말 좀 믿지 마세요.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산다는 건 예측불가능한 난관을 통과하는 과정이고, 우리는 언제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수정하고 진화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성장을 유년기 아이들만의 숙제로 선 긋기를 했던 건 아닌지, 어른이 되면 어제 하던대로 오늘을 살면 된다고 생각해버린 건 아닌지, 질문하고 배우고 진화하길 멈추고 이미 결말에 도착한 사람처럼 굴고 있던 건 아닌지.
클로드 퐁티는
1948년 프랑스 루네빌에서 삼형제의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님과의 불화로 어렵고 슬픈 유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엑상프로방스의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배울 게 없는 대학 수업이 지루해 1년간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1968년 주간신문 l’Express에 취직해 삽화를 그렸다. 37세가 되던 1985년 딸 아델의 탄생을 앞두고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그림책이 우연히 편집자의 눈에 띄어 『L’album d’Adèle 아델의 그림책』으로 출간됐고, 그 뒤로 30년간 만든 80여 권의 그림책은 대부분 절판되지 않고 어린이 독자와 평론가 양쪽 모두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 두꺼운 비평서만 여러 권이 존재할 정도. 프랑스 초등학교 교사들이 교육 자료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작가 중 한 명이며, 어른을 위한 소설과 희곡도 여러 편 작업했다.
Q 어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심지어 1년 동안은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제 학창 시절 중에서 가장 혹독한 1년이었죠. 엄마를 “마담”이라고 깍듯이 불러야했고, 언제나 어머니 명예를 실추하지 않는 모범생이 되라는 훈계를 들었습니다. 전 실독증(글을 읽을 수 있는 지식이 있는데도 입으로 올바르게 글을 읽지 못하는 증상)을 앓고 있었고 왼손잡이라 필기하는 것도 느렸어요. 그래서 늘 혼나고 벌을 받았죠. 어머니에게 보호받는 느낌이 없었어요. 집에서조차 선생님처럼 굴었거든요. 형제들과 집에서 장난을 치면 학교 교장선생님께 일러바쳐 벌을 받게 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몰락한 부르주아 상인 집안 출신 여성입니다. 집안에 돈이 없어 선생님을 하게 된 것인데요. 그 현실을 견디질 못해 매사에 뭐든 평가하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했습니다. 올해 93세로 여전히 살아 계시는데, 5년 전부터는 얼굴을 보러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소포로 보내드리는데 지금까지도 작문 숙제를 채점한 것처럼 ‘이건 잘 했다’ ‘저건 못 했다’ 품평하는 답장을 보내는 분이지요.
Q 작가님 책에는 늘 언어 유희가 등장합니다. 일례로 태어날 때부터 “못 생겼네 Oh, qu’il est laid”라는 소리를 들은 주인공 이름을 문장의 음가대로 적어서 ‘오킬렐레’라고 짓는 식이죠. 사랑한다는 핑계로 폭력을 행사하는 괴물이 나오는 책은 ‘내 사랑’을 뜻하는 ‘Mon Amour’를 살짝 비틀어 『Mô-Namour』라고 지었습니다. 이렇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누구나 쉽게 그 어원을 유추할 수 있는 수많은 어휘를 창조하신 이유가 뭔가요?
딸 아델이 어릴 때 아이가 어떻게 언어를 배워가는지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아이들은 늘 자신이 본 것과 느낀 것을 가장 정확하게 옮길 수 있는 말을 순식간에 지어냅니다. 공동묘지(cimetière)를 눈에 보이는대로 ‘공동묘비(cimepierre, 불어로 pierre는 돌 혹은 묘비석을 의미)’라고 부르는 건 실수가 아닙니다. 발명이죠. 이런 식의 관습을 뛰어넘는 언어 유희는 각국의 신화에서도 무척 자주 발견됩니다. 아이들 안에는 인류의 원형적 특질이 아직 살아있는 거예요.
Q 전 그 섬세한 언어 감각이 어머니의 유산이 아닐까 추측했는데요.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드리죠. 어릴 때 집에 1914년에 발행된 라루스(Larousse) 출판사의 사전이 있었습니다. 빽빽한 흑백 페이지 중간에 식물도감과 명화가 컬러로 인쇄되어 있었어요. 그 그림들이 저에겐 꿈의 나라였습니다. 어느 날엔가 어머니가 최신 사전을 사오셨습니다. 그때가 1950년대였으니, 두 사전 사이 50년의 간격이 있었죠.
두 사전을 비교해보면 정말 흥미진진 했습니다. 어떤 단어는 사라지고 어떤 것은 새로 생겼어요. 예를 들어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라루스 사전에서는 사랑(amour)이라는 단어는 3페이지 분량이고, 원자(atome)은 3줄 뿐입니다. 1950년대 사전은 정반대로 사랑은 3줄, 원자는 3페이지를 할애하죠. 지금 사회가 정해놓은 관습과 규칙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이 일화의 하이라이트는 어머니가 새 사전이 생겼으니 옛날 버전을 쓸모가 없다면서 빈민구제소에 갖다준 겁니다. 제가 좋아하던 책이란 건 전혀 상관없었어요. 어머니는 빈민에게는 ‘가치 없는 것’을 줬습니다. 쓸모있는 것은 절대 주지 않았어요. 너무 어릴 때라 저는 반항할 수 없었지요. 전 지금도 영감이 필요할 때 옛날 사전을 찾아 읽습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거든요.
Q 외롭고 속상할 때 책이 위로가 되어주었나요?
어릴 땐 자신의 느낌과 행동에 어른들의 단어로 이름을 붙이지 못합니다. 늘 책을 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고 책 속 세계에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행위의 의미가 뭔지 몰랐어요. 그게 위로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 조금 성장해서는 독서가 주는 기쁨을 찾아다녔어요. 한번에 파악되고 남는 게 없는 책은 싫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전에는 보지 못한 뭔가를 새로 발견할 수 있는 책을 사랑했지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랑스 16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프랑수아 라블레의 『Gargantua 가르강튀아』 같은 책 말입니다.
Q 둘 다 파격적인 상상 세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작가님 그림책도 마찬가지예요. 현실 세계의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고 상식이 전복되는 상상 세계를 왜 그토록 좋아하시나요?
어릴 때 요약본으로만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완역본으로 제대로 읽은 건 18세 때였습니다. 거울 이면의 다양한 세상에 대한 가능성이 절 매료시켰습니다.
앞서 말했듯 부모님과 갈등이 심했고, 할아버지는 성적으로 타락하기까지 했었죠. 때문에 저에게 현실 세계의 논리와 권위라는 건 전혀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현실 인식이 상상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말로는 민주주의, 저항(레지스탕스)을 외치면서 실제 삶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모순을 보면서 ‘어른들의 저 번지르르한 말이 실은 상상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상상은 허황된 게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다른 버전의 설명입니다.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이 무척 다양할 수 있다는 것, 단 하나의 정답지 따위는 없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상상 세계를 그립니다.
Q 방대한 상상력의 비결을 묻는 질문을 자주 받으시는데 저희에게도 힌트를 주신다면요.
상상을 키워가는 메커니즘은 있습니다. 등교를 하는 한 아이 입장에서 설명을 해보죠. 학교 가는 길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줌마를 발견합니다. 강아지를 보며 ‘이름은 뭘까, 뭘 먹을까, 오줌은 어떤 포즈로 쌀까, 아줌마가 강아지를 좋아할까, 둘은 주택에서 살까 아파트에 살까’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것. 그게 상상입니다. ‘저 강아지 이름은 타도르도도이고, 크로켓 튀긴 걸 좋아하는데 안에 생선살이 들어있으면 편식을 할 거야. 그건 같이 사는 고양이가 좋아하니까. 대신 다른 강아지와 다르게 목욕을 즐기는 녀석이지.’ 이렇게 말이죠. 알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계속 질문하고 대답하고 섞고 조립시키면 상상이 됩니다.
Q 일반적인 서사구조에 익숙한 어른 입장에서는 이유없이 갑자기 배경이 바뀌고,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좌충우돌하는 작가님 책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말이 되는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저는 철저히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들기 때문에 어른 독자는 자주 길을 잃습니다. (웃음) 한번 생후 8개월 된 아이의 시점을 생각해보세요. 자고 일어나 천장을 보고 있는데 커다란 머리가 불쑥 시야를 뚫고 들어와 자신을 안아 올립니다. 세상을 보는 시점이 달라지죠. 어른들이 먹이고 입히느라 아이를 올렸다 내렸다 뒤집었다 엎었다 할 때마다 시점이 계속 달라집니다. 생전 처음 보는 자동차라는 요상한 물건에 실려 놀이방 가는 길에 아이의 눈과 귀로 느낄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세요. 그 시점으로 세상을 봤을 때, 말이 되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수동적으로 상황 안에 놓여지고 통과해내는 거죠.
Q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감탄할 것 투성이인데요.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마음을 유지할 수는 없는 걸까요.
어른들은 이 세상을 이미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믿는대로 세상을 정리정돈해서 보니까요. 어른이 된 이후의 감탄은 결심에서 나옵니다. 나는 이제부터 여기 앉아서 구름을 보겠다. 늘상 보던 구름이지만 저것이 흥미롭게 느껴질 때까지 앉아서 바라보겠다고 결심하면 됩니다.
Q 예전 인터뷰를 찾아보면서 인상 깊었던 게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늘 “어떻게 동심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작가님은 몹시 난감해하시더군요.
전 진심으로 ‘동심(l’âme d’enfant)’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당혹스러워요. 유년기나 성년기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같은 사람 아닌가요? 물론 사회 안에서 동심이라는 단어가 ‘호기심이 많다, 질문을 많이 한다, 순수하다’ 등으로 통한다는 걸 알긴 하지만, 어릴 때 마음 따로 어른이 된 후 마음이 따로인 것처럼 구분짓는 건 좋지 않은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일상생활 속에서 관점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비법이 있다면요.
전 지금도 노는 능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주 잘 놀아요.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이 방과 후에 저희 집 뒤뜰에 있는 그네를 타러 종종 들르는데요. 그 녀석들 그네도 밀어주고 같이 흙장난도 치면서 놉니다. 폐품이나 조개껍질을 모아다 이것저것 만들며 놀기도 하고요. 혼자서 길을 걷다가 독특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나 과하게 꾸민 사람들을 보면 20점 만점에 몇 점을 줄지 채점놀이를 하기도 해요. 혼자만의 놀이죠. (웃음)
Q ‘창의적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무언가를 볼 때마다 ‘저건 어떻게 하는 거지?’ 질문하는 태도. 그 방법을 파악한 뒤에는 ‘더 낫게 하려면 뭘 해야 하지?’라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창의적인 자세라고 봅니다. 질문하고 답하고 질문하고 답하고. 상상의 메커니즘과 같아요.
Q 작가님 책의 주인공들은 늘 어떤 여정 안에 있습니다. 난관을 마주하면서 때로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던집니다. 『끝없는 나무』 주인공 이폴렌은 여정 끝에 괴물을 만나는데요. 괴물이 소리칩니다. “난 네가 전혀 무섭지 않다.” 이폴렌의 대답이 정말 절묘합니다. “나도. 나도 내가 무섭지 않아!” 이 용감한 선언에 괴물은 녹아서 사라집니다.
인생의 난관에 좌절하지 않고 그걸 발판 삼아 성장하려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장애물을 마주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도망가거나 맞서거나 빙 둘러가거나… 해결책이 한가지 모습일 거라고 믿지 마세요.
예전에 부모님과의 불화로 오랫동안 거식증을 앓다가 거의 회복되어 다른 환자를 돕는 젊은 여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그녀에게 거식증은 죽지 않고 버티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거식증은 회복으로 가는 과정이자 해결책이지요. 시간이 지나 더 이상 거식증에 기댈 필요가 없을 때 빠져 나와서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입니다.
좌절이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지 않게 하려면 ‘해결책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 내가 보이는 이 반응들은 당연한 거다, 난 과정 중에 있는 거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Q 모험의 여정에서 주인공 아이는 철저히 혼자입니다. 부모님이나 어른이 도와주는 장면은 절대 등장하지 않지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혼자니까요. 타인의 도움이 의미없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예전에 저에게 손을 내밀었던 타인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다만 자아를 구성해갈 땐 철저히 ‘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나만이 헤쳐갈 수 있는 내 인생’ 등과 같은 자존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부모가 사랑한다는 핑계로, ‘네가 잘 되라고 돕는 거야’라는 말들로 아이의 자존과 자립을 방해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고요.
Q 한국의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가 가급적 장애물과 난관을 만나지 않게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주는 걸 부모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움 속에 있는 아이를 모른 척 하고 내버려 두는 것도 물론 나쁩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게 미리 다 방지해주는 것도 좋지 않은 방식이에요. 아이가 자기 느낌을 가져볼 기회, 진짜 세상을 배울 기회를 뺏는 거거든요. ‘우리 애가 이렇게 컸으면 저렇게 컸으면’ 하는 욕심 때문에 미리 나서서 처리해주는 거라면 더욱 위험하죠. 그렇게 큰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행복한 어른이 되기 힘듭니다. 바람직한 부모-자녀 관계는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같아야 합니다. 지하수로 연결되어 소통은 하지만 서로의 생태계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하죠.
Q 딸 아델의 출생과 함께 주간지 삽화가를 그만두고 그림책 작가로 전향하셨습니다. 이 결단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아델이 세상에 나오기 전엔 삽화가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개인적으로 회화, 조각 작업을 꾸준히 했습니다. 파리에서 전시도 몇 번 했죠. 당시 제 작업은 모두 어둡고 비관적이었어요. 부모님이 제 안에 남긴 어두운 감정과 싸우기 위해 토해내듯 작업을 했습니다. 그 때 누군가 제게 “아이용 책을 그려보지 그래?”라고 말했다면 전 웃었을 겁니다.
아내가 아델을 낳던 날 분만실에서 핏덩이 같은 작은 딸을 양손에 받아들고 결심했습니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순 없다. 썩은 세상에 일조하는 일 말고, 아델이 살아갈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서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아델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 첫 책 『아델의 그림책』으로 출간됐고 전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았다고 확신했습니다. 어린이 그림책 안에는 이 각박하고 잔인한 현대사회 안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 지켜야 할 정신성이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Q 돈이 최고의 잣대가 된 기성 사회에 대한 반성이랄까요. 작은 복수랄까요. 작가님 그림책은 모두 뒷표지의 바코드가 재미있게 숨바꼭질을 하고 있어요. 볼 때마다 깔깔 웃게 되는 유머감각입니다.
책에서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니까요. 출판사에서 서점에 유통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바코드를 꼭 넣어야 한다기에 규격화된 포맷을 전복시키는 아이디어를 낸 겁니다. 전 획일적인 바코드가 정말 싫어요. 지우개나 연필을 사면 붙어있는 바코드는 모든 종류의 아세톤으로 문질러봐도 떼어지지 않아요. 손에 들러붙기도 하고요. 정말 고약한 녀석들이죠. (웃음)
Q 『Catalogue de parents 부모님 카탈로그』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길 나눠보고 싶습니다. 부모님을 바꾸고 싶은 어린이들을 위한 일종의 상품 안내서인데요. 책에는 ‘모험가 부모’ ‘엄마만 다섯’ ‘아빠만 다섯’ ‘외로움쟁이 부모’ ‘고함쟁이 부모’ 등 다양한 성향의 부모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를 사유하게 만드는 이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이제 저와 부모님 사이가 어땠는지 잘 아실테니(웃음)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친구를 만나서 본가에 내려가기 싫다고 푸념을 하다 이런 농담을 하게 됐습니다. “휴, 우리 부모님 어디다 갖다 팔고 싶다. 근데 아마 아무도 안 사가려고 할 걸?” 그런데 친구 녀석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거예요. 그 순간 유년기에 우리 모두 그런 판타지-다른 부모 밑에서 태어나면 어떨까 하는 상상-를 비밀스럽게 품었다는 사실이 기억나더군요. 어린이 독자들의 판타지를 책으로 재미있게 해소시켜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부모-자녀의 관계가 ‘당연한 것’ ‘저절로 되는 것’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답니다. 책 말미에 주문서를 붙여두었는데, 출판사로 엄청난 양의 주문서가 도착했죠. 공통적으로 ‘부모님을 바꿔보고 싶은데 길게는 말고 잠깐 동안만’이란 단서가 붙어있더군요. (웃음)
Q 딸 아델을 양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세웠던 원칙은 무엇이었나요.
1번, 완벽한 부모는 없다. 2번, 아이는 다른 누구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다. 3번, 우선 완벽한 부모는 없다는 걸 받아들인 뒤 그저 어제보다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자. 이 세 가지를 기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와 관련한 고민이 있을 땐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역경을 헤치며 살아간다는 것, 생의 의미를 잘 배울까?” 그게 유일한 기준이었어요. 남들 눈에 내가 어떤 아빠로 보이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Q 아델이 어릴 때 매일 이야기 짓기 놀이를 했다고요.
매일 밤 이야기를 3편씩 지어서 들려줬어요. 한 편은 하룻동안 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이야기였고, 한 편은 아델의 동물 인형들 중 하나를 주인공 삼아 지어내는 이야기, 마지막은 연재형으로 매일 밤 이야기가 이어지는 형식이었죠. 아델을 재우는데 2시간 넘게 걸린 밤도 많답니다. (웃음) 그 놀이에서 출발해 책이 된 작품도 많지요. 아델은 그 때마다 “다른 애들까지 다 읽으라고 아빠랑 논 건 아닌데!” 샘을 내기도 했어요. 제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아델이 없었으면 전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말을 하니 14세 때는 “아빠는 나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이렇게 묻기도 하더군요. (웃음) 맞는 말이에요. 아델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Q 출판사에서 만든 작가 소개 소책자 안에서 ‘내면의 적(l’ennemi intime)이 그린 클로드 퐁티의 초상’이란 글을 발견했습니다. “난 클로드 퐁티가 싫다. 못 생겼고 발냄새도 난다”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그의 상상력이라는 건 짜집기일 뿐이다”는 평가절하와 함께 한 페이지 가득 영향을 준 선배 예술가의 이름을 적어놓은, 작가님 본인이 쓴 글이었습니다. 자신감을 갉아먹는 목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올 땐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난 능력이 모자라. 해내지 못할 거야.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야.’ 등등 유년기의 어두운 상처가 부정적인 목소리를 만들어낼 때가 있습니다. 몇 주 전에 새로운 대응법을 발견했는데 꽤 효능이 좋아요. 그걸 알려드리죠. 내가 자신감을 잃는 상황을 반가워할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세요. (웃음) 어때요. 전투력이 상승하지 않나요?
1 Catalogue de parents 부모님 카탈로그
까다로운 부모, 피곤한 부모, 구두쇠 부모, 귀찮게 구는 부모, 투덜이 부모… 다양한 개성의 부모의 특징을 집요한 디테일로 풀어낸 그림책. 부모님을 바꾸고 싶어하는 아이를 위한 상품 설명서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제일 첫 장에 원래 부모님은 좋은 곳에서 대접받으며 기다리고 계실 거란 안내가 나오며, 마지막 장에는 주문서도 들어있다. 유년기의 비밀스런 판타지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넉넉한 유머가 돋보이는 수작.
2 Adèle et la Pelle 아델과 삽
작가의 초창기 그림책 3권은 딸 아델의 이름을 넣어 만든 헌정 시리즈다. 놀이터에서 모래삽과 양동이를 가지고 장난을 치던 아델이 환상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가 겪는 모험을 그렸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놀라운 상상과 유년기 아이들 특유의 익살과 생기로 풍성하게 가득차 있다.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많아 특히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작품.
3 La Venture d’Isée 이세의 모험
보통 퐁티의 작품에선 주인공이 괴물에게 먹히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본의 아니게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게 되는데, 2012년 발표한 이 책에서 주인공 이세는 “모험을 떠나야겠다”고 부모님께 인사를 정중히 하고 길을 나선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슷하게 여정 가운데 상처받고 회복하며 경험을 쌓고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4 Parci et Parla 파르시와 파르라
불어로 ‘이쪽으로’를 뜻하는 Par ici, ‘저쪽으로’를 뜻하는 Par là를 축약해 이름을 지은 두 주인공. 이쪽 저쪽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날아다니는 버섯과 큐브를 만나고, 책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빨간 망토 소녀’를 만나 그녀는 돕는 유머러스한 모험을 치러낸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이야기를 구성지게 늘어놓는 결말이 참 포근하게 느껴지는 책.
5 L’écoute-aux-portes 에쿠토포르트
주인공 민느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잠자기 전 잠옷으로 갈아입는데 잠옷에 머리를 넣고 쑥 빼는 순간 자기 침실이 아닌 이상한 세상이 펼쳐진다. 나쁜 어른이 될까봐 두려워서 우는 산타 할아버지, 부모님들이 밤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문 뒤에서 엿듣는 신비한 동물 에쿠토포르트와 함께 왁자지껄한 모험을 하게 된다.
6 Bih-Bih et le Bouffron-Gouffron 비비와 부프롱 구프롱
산책을 나갔다가 괴물에게 잡혀 먹힌 비비는 괴물 안 이곳저곳을 탐험한다. 괴물의 뱃속으로 묘사된 장면들은 전부 그리스, 페루, 중국 등 동서양 고대 문명의 주요 유적지 모습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각 문명권의 생활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일상 풍경, 각 문화권의 주요 예술품 등을 빼곡하게 담아낸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지구별의 탄생 설화를 클로디 퐁티 스타일로 창작한 놀랍도록 철학적인 작품.
7 Mille secrets de poussins 병아리의 수많은 비밀
클로드 퐁티 작품에는 작품 어딘가에 꼭 노란 병아리가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빨간 마스크를 쓴 블레즈(Blaise)는 프랑스 아이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슈퍼스타. 늘 장난을 치면서 무엇이든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어린아이 특유의 극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퐁티는 장난을 치지 않는 아이는 세상을 배울 수 없다는 신념으로 아이들의 장난기를 응원하는 병아리를 작품 안에 꼭 그려 넣는다.
8 Ma vallée 나의 계곡
투임스 가족의 일원인 주인공 푸치블루가 자신이 사는 계곡 마을의 일상을 소개하는 책. 무엇보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계곡 풍경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화풀이 극장, 아빠들의 밤, 슬픈 거인 등 이 마을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는 풍습이나 존재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에 흐뭇하게 미소짓게 되는 책. 한국어 버전은 2004년 비룡소에서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