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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Mar 20. 2016

벵자맹 쇼 '결점에서 태어난 창의성'

<왜 숙제를 못했냐면요><알몸으로 학교간날> 작가의 창작노트

아홉 가지를 잘하고도 한 가지를 못하면 그 하나 때문에 자책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약점에 집중하지 말고 강점을 계발하라는 조언은 자주 들어 익숙하지만, 강점을 꼬집어 말할 줄도 몰라 마음만 초조한 사람들. 지독한 완벽주의자의 나라,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프랑스 그림책 작가 벵자맹 쇼의 반전 처방전.



벵자맹 쇼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연재 첫 회 인터뷰이였던 조엘 졸리베의 귀띔 덕분이었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 늘 자료 조사를 많이 하고 눈으로 본 것을 손으로 옮기는데, 참고 자료를 전혀 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신기한 작가도 있더라고요. 벵자맹 쇼는 본 것을 그리지 않고 생각한 것을 그리는 사람이에요.”


집으로 돌아와 그의 대표작이자 뉴욕타임스에서 2013년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한 『곰의 노래』를 찾아 보고 경악했다. 아기 곰을 찾아서 북새통 같은 도시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는 아빠 곰의 여정을 담은 이 작품은 1990년대에 한국 가정집에 한 권씩 있었던 『월리를 찾아라』를 떠올리게 할만큼 엄청난 디테일로 도시의 풍경을 담아낸 책. 그의 다른 대표작인 『왜 숙제를 못했냐면요』 역시 참고 자료 없이 그렸다고 믿기엔 놀랄만큼 다채로운 디테일이 가득했다. 당시 내 머릿속 결론은 하나였다. ‘와, 어떻게 이걸 상상만으로 그려. 완전 천재네. 타고 났어.’

이건 훌륭한 창작물을 내놓는 사람을 볼 때 우리가 흔히 보이는 반응이기도 하다. 창조나 혁신은 하늘이 재능을 점지해준 일부 사람들이 영감에 고취되어 마법처럼 해낸다는 믿음, 평범한 우리는 도달할 수 없다는 선 긋기, 창의성에 대한 낭만적 편견.

파리에서 기차로 5시간 떨어진 알프스 산맥 인근의 작은 도시 디(Die)까지 내려가 만난 ‘천재 작가’ 입에서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는 보잘것 없던 아이” “약점을 감추려고만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완벽한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같은 익숙한 고백을 듣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벵자맹 쇼의 성장기는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곱씹었던 인생의 전반기, 결점을 감추는 게 아니라 결점과 함께 일하고 있는 지금, 인생의 전성기.

‘결점과 함께 일한다(Faire avec les défauts)’는 표현은 벵자맹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그가 가진 받아들임의 자세를 잘 설명한다. 부족함과 흠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완벽함’이 아니라 자신의 본바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온전함’이 창의성의 기본이라는 생각. “대학 때 한 교수님이 해준 말씀이 있습니다. ‘네 작업 중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가라. 그게 너다.’ 자신 안에 숨어있는 내밀한 목소리를 창작의 동력으로 바꾸는 힘, 대치될 수 없는 유일한 개성을 불어넣는 힘은 사실 우리의 결점 안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가 글과 그림을 모두 작업한 책들-『곰의 노래』 『아기 곰의 여행』 『푸푸피두르스 Poupoupidours』 『아듀, 쇼셰트 Adieu Chaussette』 등-을 보니 선명한 공통점이 보였다. 주인공이 원래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다는 이야기 구조. 처음과 끝을 비교해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주인공은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원래 가졌던 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새롭게 깨닫거나, 더 넓은 세상을 발견한다.

나에겐 이것이 ‘없어졌으면 하는 자신의 결점 안에 귀한 것이 숨어있다’는 벵자맹 쇼의 평소 철학을 상징하는 은유로 느껴졌다. 인터뷰 도중 ‘창의력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를 내려달라’는 요청에 그는 프랑스 극연출가 알랭 베아르(Alain Béhar)의 글을 인용해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것을 찾아 헤맨다. 말할 수 없는 것, 내가 잃어버려 그리운 것.”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와 촬영 중 가장 놀랍고 즐거웠던 순간은 벵자맹이 크로키 노트를 펼쳐 보여준 순간이었다. 얇은 샤프심으로 빼곡하게 면을 채운 그 노트를 보는데, 학창시절 모범생 반장 아이의 ‘빽빽이 암기 노트’가 기억 저편에서 소환되었다. 무언가를 외우기 위해 수없이 반복해 적어내려가는 그 수고로움이 그 안에 있었다. 벵자맹은 똑같은 사람 얼굴을 50번 반복해 그려보거나, 한 장면의 구도를 수십가지 버전으로 그려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 하나가 나타나길 기다린다고 했다. 그렇게 찾아낸 하나를 다시 새 종이에 깨끗하게 그려서 책 안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그의 크로키 노트는 ‘마법’의 흔적이 아니라, ‘노동’의 흔적이었다.


창의적인 사람에 대한 낭만적 편견을 걷고 보면 땀냄새와 한숨, 수고가 눈에 들어온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그리 대단치 않은 작은 행위를 끈기있게 반복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케빈 애슈턴이 『창조의 탄생』에서 쓴 이 문장을 믿고 싶어지며, 완벽함이 아닌 온전함으로 뭔가를 시작하고 싶어진다. “훌륭한 글은 잘 편집한 서투른 글이다. 훌륭한 가설은 수많은 실험이 실패한 뒤에 남은 추측이다. 훌륭한 요리는 재료를 선택하고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껍데기를 까고 졸인 결과다.”



벵자맹 쇼는

1975년 프랑스 남부의 알프스 산골 마을 브리앙송에서 삼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시험(le bac) 전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무난한 이과 전공으로 시험을 치렀다. 그러다 불현듯 파리에 있는 응용예술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스트라스부르 장식예술대학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고, 2000년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초창기에는 한국에도 출간된 『요정 꼬끼에트』  『뽀메로』 같은 시리즈의 그림 작가로만 활동하다가 2009년부터 직접 이야기를 짓고 글도 쓰고 있다. 특히 2011년 발표한 『곰의 노래』는 프랑스 문화부가 선정한 ‘처음 만난 책’으로 선정돼 2012년에 태어난 2만8천 명의 아기들에게 선물로 제공되었고, 지금까지 두 권의 후속작을 낼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Q 『곰의 노래』 한국어판 작가 소개를 보면 ‘스키 선수가 되려던 꿈을 접고 미술을 공부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말 스키 선수가 되려고 했나요?

어느 인터뷰에선가 농담처럼 한 말이었는데 정설처럼 되어 버렸네요. (웃음) 제가 태어난 곳이 스키 캠프로 유명한 브리앙송이다보니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수준급의 스키 전문가였어요. 저희 아버지는 겨울에는 스키 캠프 강사로 일했고 나머지 계절에는 양봉과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셨어요. 친고모는 알파인 스키 프랑스 국가대표였고요. 동네 친구들 모두 스키 타는 걸 좋아했는데, 전 스포츠에는 재능이 전혀 없었죠. 그렇다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요. 시험을 치면 모든 과목에서 20점 만점에 9, 10, 11점이었답니다. 당시 전 그 숫자들이 주는 메시지가 명확하다고 생각했어요. “넌 보잘것없고 시시한 애야”라는 메시지였죠.


Q 그림에 대한 꿈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요?

어릴 때 부모님을 일을 나가고 주로 할머니와 집에 있었는데, 할머니도 집안일이나 텃밭일을 하느라 바쁘셨기 때문에 저와 놀아준 건 할머니가 키우던 개였어요. 동생들과는 여섯 살 터울 이상 나서 어릴 땐 늘 혼자였어요. 일하는 할머니 옆에서 늘 그림을 그렸죠. 유년기 내내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그걸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그저 뭐 하나 눈에 띄는 게 없던 아이가 유일하게 빛나던 순간이었달까요. 학창 시절에 유일하게 제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순간이 그림을 그릴 때였거든요. 남들이 절 주목하니 기분이 좋아서 더 많이 그림을 그렸고, 그러다보니 더 잘 그리게 되는 선순환이 있었어요.  


Q 그렇게 그림을 좋아했으면서 왜 이과 전공으로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치른 거죠?

제 그림에 전혀 만족을 못했으니까요. 프랑스 청소년들은 자기가 뭘 잘 하는지 잘 모르면 무난하게 이과를 선택한답니다. (웃음) 당시엔 제 능력 밖의 것들, 제가 가지지 못한 것만 보고 부러워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지루함을 금세 느끼는 사람이라 지금도 한 장의 그림에 이틀 이상 시간을 못 써요. 연필로 빠르게 그리는 게 제 스타일이죠. 그런데도 어릴 때 제 시선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완벽한 그림만을 향해 있었어요. 유화를 사용해 사진처럼 정교하게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동경했고, 그림 안에서 작가의 약점, 실수가 보이지 않아야 좋은 작품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정말 다행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기를 내팽개치지 않고 계속 했다는 점이에요. 제 그림이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유일한 기쁨이었으니까.


Q 어떤 계기로 파리에 있는 응용미술대학에 진학했나요.

고등학교 졸업 시험 불과 몇 개월 전에 ‘시험은 그저 시험. 시험 성적이 뭔가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했어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꼬마 때부터 쉬지 않고 그려왔으니 그림을 전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죠. “나 파리에 있는 미대에 가기로 결심했어!” 반 애들에게 고백하니 애들은 제가 장난치는 줄 알더군요. (웃음) 그려두었던 그림 중 괜찮아보이는 것을 골라 대학에 지원하게 된 것이랍니다.



Q 대학 때는 본인 작품에 대한 만족도나 자신감이 좀 높아졌나요?

파리에서 대학에 다닐 때도 성적이 나빴어요. 제 스타일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요. 어느 날 그 이유를 깨달았어요. 작업을 하기 전에 늘 ‘교수님들이 어떤 그림을 좋아할까?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그림을 그려왔던 것, 그게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죠. 죄송한 말이지만 교수님들 중에는 고착된 생각을 오래 품어온 고리타분한 분이 정말 많아요.

창의성을 방해하는 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와요.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는 깨달음을 그 무렵에 얻었어요. 파리 응용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장식예술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늘 스스로에게 질문했어요. “네가 독자라면 넌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아? 네가 소비자라면 이 포스터에 눈길을 줄 것 같아?” 작업의 목표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것, 내가 소장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바뀌었지요. 제게 “네 작업 중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가라. 그게 너다”라고 말씀해준 교수님도 그때 만났고요.


Q 자신의 결점과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지금도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자’고 결심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요. 그럴 때마다 전 타인의 부족함은 관대하게 이해하고 오히려 그 서투름에서 매력을 발견하면서 스스로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요. 사실 제가 다른 창작자들 작품에서 감동받는 지점은 기계같은 완벽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빈틈이거든요. 우리가 똑같지 않은 이유도 그 빈틈과 서투름에 있고요. 그걸 소중히 여겨야 해요. 만약 모두가 완벽하기만 하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지루할지 상상해보세요.



Q 부모님께서 남겨준 가장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신뢰죠. 시골 농사꾼 장남이 파리에 가서 미래가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예술 공부를 하겠다는데도 전혀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어쩌다보니 농부가 된 사람이 아니라 그 일에서 가치를 발견해 스스로 선택해 농부가 되신 분이에요. 우리도 자신처럼 스스로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을 하기를 바라셨고 그러리라고 믿어주셨어요.

덕분에 저는 그림책 작가, 동생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과 바이올린을 만드는 현악기장으로 성장했고요. 영역은 다르지만 셋 다 자기 일에 주인 의식을 가지고 길을 개척해가고 있어요. 아버지처럼요. 아버지는 말수가 무척 적은 분이었어요.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등산을 할 때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저를 믿고 있다는 것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두 아들을 키울 때도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해요. 나는 아이들이 보호를 필요로 할 때 나서면 된다, 그 외의 상황은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선택하게 가만히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며 양육하고 있습니다.


Q 작가님 책을 보면 장난과 허튼 짓, 소위 말하는 ‘뻘짓’ 하는 인물들이 배경 곳곳에 숨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도시의 인파를 빼곡하게 표현한 『곰의 노래』 3부작과 숙제를 못하고 지각을 한 아이가 그럴싸한 이유를 늘어놓는 『왜 숙제를 못했냐면요』 『왜 지각을 했냐면요』는 그런 요소요소를 구경하느라 시간이 한참 걸려요. ‘뻘짓’에 대한 이 긍정의 시선은 무슨 이유에서인가요?

어릴 때 대형 사고를 치진 않았지만 맨날 장난을 치느라 상처를 달고 살았어요. 아이들의 허튼 짓과 장난, 까불기는 세상을 배우는 방법이에요. 뭔가를 해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면서 세상을 배우는 거죠. 전 어릴 때 ‘이거 하면 혼날텐데’라고 알면서도 실험해보려고 허튼 짓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책에 장난치는 인물들을 자주 넣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그런 허튼 짓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예요. 책 속 인물도 이기주의자, 비겁자, 얼간이, 심술쟁이일 수 있다고, 이 세상엔 착하고 관대하고 완벽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답니다. 아이들 입장에선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 하나 뿐일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나쁘니까요. 그런 고립된 생각은 자기 안의 괴물을 끄집어 내죠.


Q 사라진 아기 곰을 찾아 헤매는 아빠 곰의 모험기 『곰의 노래』 3부작이 자전적 이야기라고 들었습니다.

첫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그렸던 한 컷의 그림이 시작이었습니다. 오페라 무대 위에 저와 아내, 갓난아이가 서 있고 객석은 제 친구들과 가족들이 가득 메우고 있는 그림이었어요.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웠던 시기였는데, 처음엔 겁도 많이 나고 작디 작은 귀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어요. 작가로서 생활에 치어 감수성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고요. 하지만 아빠가 되는 경험 덕분에 처음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을 용기를 냈고, 그 작품이 저에게 굉장한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곰의 노래』 속에서 아빠 곰은 숲속 동굴에서 겨울잠을 편안하게 자고 있다가 사라진 아이 곰을 찾으러 도시로 와 모험 끝에 종국에는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까지 하게 됩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을 훌쩍 해내는 것. 그게 부모가 되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Q 본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생각한 것을 그리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작업할 때 참고 사진도 보지 않는다고요. 이미지 기억력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자료 조사를 하면 제 상상이 그 자료가 허용한 틀 안에 있을까봐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열대숲부터 뉴욕의 마천루까지 직간접적으로 본 이미지가 많으니 모든 재료는 이미 제 안에 있다고 믿어요. 이건 근육 운동을 하듯 기를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쉼없이 생각나는 모든 장면, 표정, 순간, 풍경을 크로키 노트에 옮겨두는 습관을 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죠.


Q 어느 정도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뭔가를 창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재능은 ‘의지’라고 생각해요. 흥미와 관심,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욕망.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똑같은 사람 얼굴을 50번씩 그리는 반복을 견딜 수 있고, 스쳐가는 풍경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기를 쓰며 관찰할 수 있고, 사람들 반응이 신통치 않아도 계속하는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Q 백지의 캔버스, 원고지, 기획안 앞에만 서면 막막함을 느끼는 사람, 창의성이란 말 앞에서 주눅드는 독자들을 위해 마지막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20년 동안 70권의 책을 만들었지만 지금도 새로운 프로젝트 앞에 서면 늘 막막하고,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립니다. 시작할 땐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고 길을 되찾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게 결국 창작입니다. 처음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좌절, 고뇌, 다시 시작하기 등을 거쳐 마침내 해낼 때 느껴지는 희열. 그게 이 일의 재미이고 제가 계속 일하는 이유죠.

처음부터 머릿속에 모든 전략과 아이디어와 청사진이 펼쳐져서 손으로 그걸 옮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은 지루해요. 우리가 뇌를 단순 베껴쓰기 하는 기계는 아니잖아요. 막막하게 느껴지는 그 느낌 덕분에 미지의 것이 이해 가능한 것으로 바뀌어가는 재미, 알아가는 재미,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마주하며 놀라고 감탄하는 재미를 즐기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막막함을 당연한 것으로 마음 편히 받아들이세요.





벵자맹 쇼가 지은 책



1 뽀메로 시리즈

글 작가 라모나 바데스퀴와 13년째 협업하고 있는 시리즈 ‘뽀메로’. 몸집이 너무 작아 민들레 꽃 아래에 사는 코가 심하게 기다란 핑크 코끼리 이야기다. 작가가 유년기 때 가장 사랑했던 책이 핑크 코끼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넬라 보스니아(Nella Bosnia)의  『Rose Bonbone』였다. 뽀메로 시리즈는 초창기에는 어휘와 개념, 말놀이 등을 알려주는 컨셉추얼한 책이었지만 최근에는 뽀메로가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하며 성장하는 서사 구조를 띈 책으로 바뀌었다. 시리즈 중 10권을 파인앤굿 출판사가 한국어판으로 출간했다.


2 왜 지각을 했냐면요

전작 『왜 숙제를 못했냐면요』의 대단한 흥행으로 프랑스 최고의 그림책 글 작가 다비드 칼리와 또 한번 협업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지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기상천외한 이유를 설명한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아침밥을 먹어 치운 개미떼, 두더지 인간, 닌자와 외계인까지! 학교가는 길이 험난하게만 느껴지는 아이들의 마음과 그들의 기발한 상상력을 재미있게 담아낸 책. 그림책의 고전인 존 버닝햄의 『지각쟁이 존』에 대한 오마주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어판은 토토북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3 『곰의 노래』 3부작

아빠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사유하면서 작업한 자전적 작품. 작품 속에서 사라진 아기 곰을 허겁지겁 찾아다니는 아빠 곰은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2011년 첫번째 책  『곰의 노래』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뒤, 2012년 『아기 곰의 여행』을, 2014년에 『푸푸피두르스 Poupoupidours』를 연달아 발표했다. 세 작품 모두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빼곡한 디테일로 채워진 책. 오페라 극장, 서커스 극장, 열대 숲, 바닷속, 기차역 등 다채로운 공간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인파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이 인물들은 대부분이 실제 존재하는 작가의 지인이나 작가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다. 작가 본인은 물론 부인과 자녀들도 모든 책에 작게 숨어있다. 프랑스 서점 어디를 가도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는 최고 히트작. 한국어판은 여유당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4  『알몸으로 학교간날』

지각할까봐 정신없이 학교로 뛰고 보니 알몸으로 집을 나섰다는 걸 알게 된 피에르. 알몸에 빨간 장화만 신고 등교한 피에르 보며 반친구와 선생님은 ‘오늘은 피에르가 평소와 좀 다르네’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피에르가 쉬는 시간에 숲에서 자신과 똑같이 알몸으로 등교한 옆 반 여자애를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수업을 진정으로 즐기게 된다는 이야기. 한국 아이들에게도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책으로 아름다운사람들 출판사에서 2009년 출간했다.


5  『아듀, 쇼셰트』

쇼셰트(Chaussette, 양말이란 뜻)라는 이름의 토끼를 기르던 소년은 몸이 둔하고 느려터져서 쓸데없이 귀만 긴 쇼셰트가 싫어진다. 다른 아이들처럼 날쌘 애완동물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쇼셰트를 숲 속에 버리기로 하는데…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만 끌렸던 작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시선이 포근하게 녹아있는 책. 벵자뱅 쇼가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아 2010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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