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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Mar 28. 2016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자기 믿음의 법칙'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유리소녀> 작가의 창작 노트

이번 원고로 유럽 그림책 작가 인터뷰 연재가 마무리된다. 스스로와 약속한 열 번의 연재를 마치는 글.

마지막이라는 말이 주는 ‘센티’한 감상에 젖어 첫 인터뷰이였던 조엘 졸리베부터 마지막 인터뷰인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까지,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 총 거리를 계산해보았다.  

6708km.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숫자 앞에서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도대체 무슨 결론에 이르려고 이 긴 여행을 했던 걸까.  



유쾌하다, 성실하다, 착하다, 영리하다, 똑똑하다… 사람의 성향을 설명하는 여러 형용사 가운데 나는 ‘창의적이다’란 표현을 각별히 좋아했다. 자기만의 관점으로 상황과 문제를 해석하는 사람, 글이나 이미지, 오브제 등 창작물로 자기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을 비밀스레 동경했다. 기자가 된 뒤 그런 사람들을 인터뷰로 만나면 경외감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오랫동안 나는 창의성을 이렇게 생각해왔다. 나는 갖지 못했으나 누군가에게는 있는 것.


이 인터뷰 연재를 시작한 이유도 같았다. 언뜻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창의성을 훨훨 펼치는 듯 보이는 유럽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고 시작한 일. 그간 인터뷰를 하면서 작가들의 조언을 받아적을 때, 그건 글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를 위한 것이었다.

조엘 졸리베가 말한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는 태도’, 에르베 튈레가 말한 ‘깊은 심심함과 불확실성을 끌어안는 힘’, 세르주 블로크가 말한 ‘우선 질러보는 작은 용기’, 올리비에 탈레크가 말한 ‘공감으로 경계 뛰어넘기’, 사토미 이치카와가 말한 ‘자기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법’ 등 지금까지 모든 조언을 일상에 적용했다.


그렇게 내 안에 이미 있었으나 호명되지 못했던 창의성을 만나는 과정에서 점점 한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다. 창의성과 연관된 다른 자질이 있어도 이것 하나가 해결되지 않으면 늘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고. 그 마지막 큰 산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런 건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라고 한계짓는 나, 창조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나.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이 마지막 고민에 답을 줄 수 있는 작가였다.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경쟁 상황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온 많은 한국 독자들에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그림책은 절절한 깨달음 혹은 뜨끈한 위안으로 다가간다. 다른 훌륭한 창작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그림책에도 반복되는 서사 구조가 있다. 남들과 어딘가 다르거나 뭔가가 부족해 소외감을 느끼던 주인공이 자기가 속할 곳을 찾고, ‘자기 자리’로 가서 행복을 느낀다는 내용.

<너는 내 사랑이야 Mon amour>에서는 개도 돼지도 양도 아닌 이상한 얼굴의 한 동물이 ‘나는 누구일까’를 질문한다. <파리에 간 사자 Un Lion à Paris>에서는 초원을 떠나 대도시에 처음 와 본 사자가 이방인으로서의 갖는 두려움, 불안, 무관심을 모두 통과해내고 당페르-로슈로 광장의 대좌로 올라가 사자상이 된다.

<나는 원숭이다 Jo singe garçon>에서 스스로를 원숭이라고 철썩 같이 믿던 아이 ‘조’는 동물원에서 실제 생활을 해본 뒤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다. <정말 멋진 선물이야 Le merveilleux dodu velu petit>에서는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믿는 주인공 소녀 에디트가 엄마 생일 선물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여정 끝에 자연스럽게 자아존중감을 채운다.


자아존중감(l’estime de soi)은 시적이고 깊이 있고 부드러운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작품 세계로 입장하는 열쇠이자 한 명의 예술가로서 그녀의 생애를 갈무리하는 중요한 열쇳말이다. 

“저는 한번도 충분한 자기애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늘 스스로를 비평했고,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살았어요. 제 창의력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나 자신이었답니다. 부족하다고 외쳐대는 내면의 목소리에 지지 않기 위해 투쟁하듯 스스로를 믿어야 했습니다.”

작업대에 앉을 때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기 주술을 걸었던 이 내면의 분투는 고스란히 책으로 승화되었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I Cinque Malfatti>에서 그녀는 무결점과 완벽을 종용하는 목소리에 맞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자기 믿음’이라 말한다.  


지난 10개월 간 6708km를 오가며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지독한 완벽주의자의 나라에 사는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결국 이것이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그러니 부디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말고 나를, 당신을, 우리를 더 믿어주자. 시도하자. 공백을 깨뜨리자.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1973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을 사랑했던 소녀는 이미 8세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에서 그래픽 공부를 마치고1996년 프랑스 몽트뢰유 아동도서전에서 ‘미래의 인물’ 상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1997년 파리로 이사와 퐁피두 센터의 포스터 작가로 일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9년 <너무 바쁜 엄마>를 출간하면서 그림책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지금까지 29권의 그림책을 발표했다. 2006년 자전적 이야기 <파리에 간 사자>로 볼로냐 아동도서전 우수상과 독일, 대만에서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유럽 각국과 한국은 물론 일본, 브라질, 체코, 노르웨이 등 세계 각국에 번역 출간되는 이탈리아 최고의 그림책 작가다.   




Q 어른의 눈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사유한 <어린이>, <보보는 아기가 아니야>를 읽으며 감탄했습니다. 여전히 아이의 시선을 간직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유년기와 한번도 단절된 적이 없습니다. 요즘도 그림을 그리려고 책상에 앉아 색연필을 들 때마다 어릴 때 필통에서 색연필을 고를 때 느꼈던 감촉이 되살아납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옆에서 엄마가 양파를 다듬으며 냈던 통통통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집안을 뛰어다니던 여동생 발소리도 들려오고요. 고향 볼로냐의 햇빛과 성탄절에 눈 오던 풍경까지 생생하게 떠올라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진심으로 제 유년기에 접속하는 느낌이 들죠. 유년기 기억은 제 창작의 샘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청소년기 기억은 별로 없어요.


Q 신기하네요. 유년기만 그렇게 각인된 이유가 뭘까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여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시절의 즐거움과 긍정적인 생각이 주홍글씨처럼 영혼에 새겨져 있는 거죠. 유년기가 제 영혼 가장 바탕에 있는 낙관주의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Q 특히 중요했던 유년기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10세 무렵에 큰 배를 타고 20일 동안 터키 여행을 했던 모험이 생각나네요.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것들 앞에서 겁을 내는 대신 호기심을 발전시키는 법을 배웠어요. 여행 중엔 늘 불쾌하고 언짢은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낯설기 짝이 없는 현지 음식을 예로 들어보죠. 처음에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마음을 열고 이전까지 알던 세계에서 밖으로 발을 한 발 내디디면 그 음식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나중에는 맛있다고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하죠.

처음에는 싫다고 툴툴 대다가 고생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완전 다른 생각이 열리는, 이런 경험이 자기 확장이지요. 여행 덕에 ‘노력’ 다음에는 늘 ‘보상’이 있다는 것을 빨리 이해한 편입니다.


Q 8세 때 이미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그 뒤로 한번도 꿈이 바뀐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 다른 아이들과 잘 섞여 놀지 못했습니다. 늘 겉도는 느낌을 받았어요. 친구들을 지켜보는 관객일 때가 많았는데 이 거리감 덕분에 관찰을 할 수 있었죠. 그림에 대한 욕구도 생겼고요. 그릴 줄 안다는 건 볼 줄 안다는 뜻이거든요. 그 시절 제 안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림 그리는 게 네가 할 일이야. 이 길로 가렴. 이 일이라면 넌 행복할 거야.”

사실 그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어요. 스포츠나 춤 등 몸 쓰는 건 전부 젬병이었고, 공부도 싫어했고, 수학은 얼마나 못했는지 요즘도 손가락을 쓰지 않으면 셈을 못해요. 그림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저 스스로에게 ‘너 다른 건 못하지만 대신 그림은 그리잖아’라고 말해줄 수 있었으니까요.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다른 걸 조금 못한다고 해서 그게 콤플렉스가 되진 않는 것 같아요.



Q 작가님 책에는 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응원이 담겨 있습니다. 어릴 때, 스스로에게 만족을 잘 하는 아이였나요?

전혀요. 늘 ‘나는 왜 이렇게 남들과 다르지?’ 생각했고 비정상이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큰 위안을 얻었죠. 스스로 괴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예쁘거나 착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 흉한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걸 그 책에서 배웠어요.

어릴 때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좋아하는 그림에 있어서 자기 만족을 못 했다는 거예요. 늘 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내 실력이 부족한 건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자신을 채찍질했죠.


Q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엄격했나요?

아버지 영향이 컸어요. 아버지는 화가이자 건축가셨는데 심미안이 굉장히 날카로웠어요. 그림에 대해선 특히 쉽게 만족을 안하셨죠. 늘 더 노력해서 무언가를 더 개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이셨어요. 어릴 때 아버지가 내 그림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근두근 했어요. 지적을 받거나 아버지 반응이 별로면 울면서 제 그림을 찢어 버렸죠. “이런 쓰레기 같은 그림!” 이렇게 막 소리를 지르면서요. 이 고통이 저에게 투지를 심어주었어요. ‘그림으로 꿈을 이루고 말겠다’ 이를 악 물었죠.


Q 14세 때 그림 더미를 들고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가서 책을 출판해 줄 곳을 찾기도 하셨다고요.

완전히 미쳐 있었어요. (웃음) 나는 누가 뭐래도 그림책 작가가 될 사람이니까 당연히 이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도서전에서 만난 폴란드 일러스트레이터 요세프 빌콘(Józef Wilkon)이 제 그림을 봐주면서 “그림을 그릴 줄 아는구나! 하지만 다르게 볼 줄 알아야 한단다.” 조언해줬고, 체코 작가 스테판 자브렐(Stepan Zavrel)로부터 “내 수업에 한번 와보렴”이란 말도 들었어요.

또 제 인생의 영웅인 프랑스 그림책 작가 토미 웅거러(Tomi Ungerer)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고요. 근 20년 후인 2006년에 토미 웅거러가 제 책 <파리에 간 사자>를 보고 손수 편지를 보내주셔서 따로 찾아뵙기도 했답니다. 꿈을 이룬 마법 같은 순간이었죠.



Q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완벽주의 덕분에 계속 노력해 경지에 이르렀으니 좋은 점도 있지만, 그 열패감을 어떻게 견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네요.

지금도 작업에 쉽게 만족을 못해서 그리던 걸 찢어버리고 다시 그릴 때가 많아요. 여전히 스스로에게 약간 벅찬 과제를 줘서 발전하는 것,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느낌을 좋아하고요. 하지만 이 과정은 스스로 한계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혁명과 같아서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답니다. 노력하면 나중에 보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고통을 견디는 거예요. 그 보상은 다른 게 아니라 뿌듯함, 보람, 성취감 같은 저 개인의 즐거움이죠. 고통 끝의 성취감이 자존감을 강하게 만듭니다.

아버지가 지어놓은 비평 감옥 안에서 힘들어했던 청소년기와 시간이 준 선물 덕에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 지금을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는 단점을 대하는 태도예요. 예전엔 부족함을 어떻게 채울까에 혈안이 되었다면 지금은 단점이 관점에 따라선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한 가지 면에 미흡해도 다른 면에선 충분할 수 있다고, 우리 안에 이미 충분한 가능성과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책에서 전하고 싶어요.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않고 비로소 저 자신으로, 제 자리에서 온전히 행복한 사람이 된 지금 제 경험담을 담아서요.  


Q 창의력에 영향을 준 인물이 또 있었나요?

할머니가 창의력 활화산이었어요. 가정 주부였는데 늘상 손을 쉬지 않고 옷을 만들거나 악기를 연주하셨죠. 매해 성탄절마다 케이크를 손수 만드셨는데 늘 아버지가 가장 최근에 설계한 건축물을 빵과 쿠키로 재현하셨답니다. (웃음)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늘 새벽 4-5시까지 자지 않고 뭔가를 만드는 분이었어요.

할머니의 창작은 철저히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어요. 야망이나 목적의식도 없었고 또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해서요. 할머니를 보면서 제 안의 목소리가 또 한번 속삭였죠. ‘네가 닮고 싶은 사람이 저런 사람 아니니?’라고요.  



Q <파리에 간 사자><나는 원숭이다><유리 소녀> 등 ‘자리 자리’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합니다. 22세 때 프랑스로 이사와 이방인으로 그림책 업계에서 자리를 잡은 작가님의 실제 경험이 포개지는 대목입니다.

그때는 불어도 못 했고, 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주제 의식도 선명하지 않았고, 그림 테크닉도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해내고 말겠다’는 투지 뿐이었어요. 제가 젊을 땐 요즘만큼 취업 환경이 각박하지 않았어요.

파리에 온 지 1년 뒤에 작은 술집에서 그림을 전시할 기회를 얻었죠. 이 전시회에 대한 작은 리뷰 기사가 지역 문화지에 실렸고, 그걸 본 그래픽 잡지사 <Etape Graphique>에서 표지에 그림을 실을 기회를 줬어요. 그 표지가 또 하나의 문을 열어줘서 일러스트레이터 에이전시에서 연락을 해왔고요. 어느 날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보려고 퐁피두 센터에 갔다가 극장 포스터 작가 공모전을 알게 되어 지원했고, 그 콘테스트에서 뽑혀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퐁피두 센터 포스터 작가로 일했어요. 그 경력이 저를 제가 꿈꾸던 그림책 출판사 ‘Seuil Jeunesse’와 연결시켜 주었어요.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 꿈을 이뤄가는 것은 눈덩이를 굴리는 것과 같아요. 작은 단계들을 하나하나 끈기 있게 거치면 어느새 크게 불어나 있지요.


Q 창의성에 대한 작가님만의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행복에 대해 말하는 창작물을 짓고 싶다면 우선 자신이 행복했던 느낌을 떠올려 그걸 전달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창의성은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창의성이 최초로 태어나는 순간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 때입니다. 그 느낌과 생각, 충동, 자기 안의 목소리를 믿고 그리로 자신을 던지는 것, 저에겐 그게 창의성입니다.


Q 유년기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독서는 여행이에요. 자기 현실에서 적당히 떨어져서 다른 세계로 푹 빠져 헤엄치며 자기를 확장시키는 경험이죠. 특히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책은 완전히 새로운 지위와 의미를 가집니다. 책은 변치 않는 물건입니다. 우리가 손가락으로 움직여서 내용을 이동시킬 수도 없고, 페이지 순서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우리 변덕에 맞추어주지 않아요. 평론가 소피 반 더 린덴(Sophie Van der Linden)이 말한 것처럼 “책은 변치 않는 약속이며, 그 약속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지은 책



1 정말 멋진 선물이야!

5개 국어를 하는 아빠, 노래를 잘 하는 엄마, 스케이트를 잘 타는 언니에 비해 잘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고민인 에디트. 엄마가 생일날 ‘토실토실 보들보들한 것(dodu velu petit)’을 갖고 싶단 얘기를 듣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찾아 마을 곳곳을 헤맨다. 자존감을 채워가는 아이의 여정을 섬세하고 포근한 그림으로 표현했다. 한국어판은 엔이키즈에서 2015년 출간.


2 넌 내 사랑이야

단추, 헝겊, 삐뚤삐뚤한 바느질의 조합으로 생긴 털복숭이 주인공을 보면서 사람들은 고양이, 원숭이, 비둘기, 악어, 비버 등 자기 좋을대로 정체성을 규정지어 버린다. 정체성을 고민하느라 슬퍼진 주인공에게 토끼가 다가와 “나는 네 보들보들한 털이 좋아”라며 기댄다. “너는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니?” 묻자 토끼는 답한다. “그걸 왜 몰라? 넌 내 사랑이야” 세상에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란 작가의 통찰이 담긴 책. 한국어판은 별똥별 출판사에서 2011년 출간.


3 유리 소녀

지젤은 온 몸이 투명한 유리로 태어났다. 이 신기한 소녀를 보려고 세상 사람들이 몰려든다. 처음에는 ‘아름답다’며 칭송하던 대중들이 지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그녀가 조금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런 어두운 생각을 드러내다니 부끄럽지도 않니?”라며 단죄한다. 이 책에서 유리 소녀는 진실을 은유한다.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기 두려워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어판은 베틀북 출판사에서 2004년 출간.


4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한국에 출간된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책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작품. 어딘가 하나씩 모자란 친구들 5명이 사는 집에 어느 날 ‘완벽한 친구’가 찾아온다. 뭐든 쓸모 있는 일을 하라며 다그치는 완벽한 친구 앞에서 5명의 못난이들이 보여주는 커다란 자기 긍정은 통쾌하고 후련하다. 한국어판은 현북스에서 2014년 출간.


5 난 원숭이다

주인공 ‘조’가 아기였을 때 생긴 것도 하는 짓도 꼭 원숭이 같아서 엄마는 “우리 귀여운 원숭이!”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조는 자기가 원숭이라고 굳게 믿는다. 어느 정도 성장 후에는 집을 나가 아예 동물원 원숭이 우리로 들어가버린다. 이런 경험 끝에 자신은 조금 다른 아이일 뿐 원숭이는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남과 다르다’는 것을 문제로 받아들였던 작가의 유년기 경험담이 녹아있는 책이다. 한국어판은 2010년 베틀북 출판사에서 출간.


6 어린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어떤 것들을 의아해하는지 ‘아이의 속마음’을 알고 싶을 때 펼쳐보면 좋은 책.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작가의 촘촘한 사유, 섬세한 관찰력, 풍부한 표현력에 놀라게 되는 작품. 한국어판은 한솔수북에서 2008년 출간.


7 파리에 간 사자

초원 생활이 지루해진 사자는 꿈과 직업, 미래를 찾아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간다. 사람들이 혹여나 자신을 보고 놀랄까봐 아니면 반대로 자기를 공격할까봐 잔뜩 쫄아버린 사자. 하지만 냉담하게 시선 한번 주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풀이 죽는다. 작가 자신의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탁월하게 풀어낸 작품. 베아트리에 알레마냐는 이 책을 계기로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한국어판은 웅진씽크빅에서 2009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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