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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Apr 29. 2016

인터뷰라는 이름의 연애

고마운 독자분들께

안녕하세요. 에디터C최혜진입니다.


늘 완결된 글로 독자분들과 만나다 처음 '생목소리(?)'로 인사를 드리려니 많이 떨리네요. 정돈된 글을 쓰는 것도 좋겠지만, 오늘같은 날은 두서없고 엉성하더라도 독자분들께 직접 말을 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인터뷰 시리즈를 브런치에 연재하면서 저는 몇 번이나 이 생각을 했답니다. 브런치 독자분들이 글을 대하는 진정성이 정말 놀랍다, 라구요.

우주의 얕은 지식과 재미를 표방하는 짤막한 컨텐츠만 살아남을 것 같은 모바일 환경에서 브런치 독자들과 같은 독자를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작가의 글을 성의껏 읽어주는 독자, 글에 대한 건전한 토론을 제안하는 독자, 응원과 사랑의 마음을 후하게 보내주는 독자...  'SNS, 모바일 플랫폼 어디에도 이런 독자가 있는 곳은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정말 자주 합니다.


여러분이 읽어주신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다른 형태가 아닌 인터뷰 글로 '브런치북' 수상을 하게 되어서 무척 행복합니다. 인터뷰는 제가 아주 오랫동안 해온 일이기도 하고, 해도 해도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여전히 설레는 일이거든요.


2003년에 잡지 기자가 되어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인터뷰를 천 번 이상 했습니다. 이름을 대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아는 저명한 분의 인생사부터 동네 이웃의 소소한 일상까지,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글로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인터뷰가 연애와 닮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질문지를 만드려면 우선 그 사람에 대해 조사를 해야 합니다. 여러 날을 그 사람 생각만 합니다. '그때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한 건 아마 이런 마음에서였을 거야' 이렇게 감정이입도 자주 하면서요. 자연스럽게 몰랐던 하나의 우주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에 이미 인터뷰이의 철학이나 사유에 찌릿찌릿 감전이 되어 사랑에 빠진 채로 인터뷰 현장에 나갈 때도 많았죠. (제가 금사빠 기질이 있거든요.)


인터뷰를 할 때 일을 더 많이 하는 건 사실 입이나 귀가 아니라 눈입니다. 물론 인터뷰이가 하는 대답을 듣고 후속 질문을 생각하기 위해 귀는 활짝 열어두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눈이 가만히 쉬고 있으면 안됩니다.

'방금 이 말을 할 때 왜 저렇게 눈꼬리를 치켜떴을까?'

'저 표정은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걸까, 그만 하고 싶다는 걸까?'

이렇게 쉼없이 신호를 포착하고 해석하고 의미부여를 하거든요. 작가 은유는 책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인터뷰를 '이심전심 오래된 연인들의 연애가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을 온갖 상징과 기호로 읽어내는 시작되는 연인들의 연애.'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실제로 인터뷰 후에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사적인 친구 관계로 발전하는 일도 많고요.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연애하는 기쁨을 자주 누렸습니다. (네, 저는 기혼녀입니다.) 까만 눈의 한국인 기자가 구사하는 낯선 억양의 불어도 모두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자신의 우주를 활짝 열어보인 10명의 그림책 작가분들 덕분이었습니다.


독자분들께 어떻게 감사 인사를 전할까 고민하다 제 추억의 일부를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A컷 인터뷰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현장 모습이랄까요.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작가의 작업 모습을 담고 있는 포토그래퍼 신창용 실장님. 조도가 너무나 낮은 아틀리에였는데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사진은 더할나위 없이 뽀샤시 했다죠.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6시간을 내려가 만난 벵자맹 쇼 작가님 아틀리에에서. 열심히 일하는 포토그래퍼를 보면 흐뭇해서 도촬을 하고 싶더라구요.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포토그래퍼는 이치카와 사토미 작가님과 일어로 대화하고, 저는 작가님과 불어로, 저와 포토그래퍼는 한국어로 대화했던 뭔가 코스모폴리탄적인 하루!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시리즈는 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고 저렇게 신창용 포토그래퍼와 협업한 결과물입니다. '브런치북'에 참여한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인터뷰에 풍미를 더한다"고 평해주신 사진을 바로 저 분이 찍으셨답니다. :)


'벤또(도시락)'라는 이름의 이 냥이는 어떤 작가님의 냥이일까요?  바로 에르베 튈레 작가님!


키티 크라우더 작가님은 하루에 기차가 4번 밖에 서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사십니다. 메탈과 락 음악을 틀어놓고 운전하는 파워 드라이버 키티 작가님 차를 얻어타고 가다 찰칵.
폼잡고 기념사진 좀 찍어보려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작가님 때문에 이렇게...


클로드 퐁티 작가님과 인터뷰를 마치고 파리로 올라가는 길. 인터뷰의 여운이 너무 강해서 녹취를 풀다 찔끔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아이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모든 질문에 성의껏 답하신 퐁티 작가님.


클로드 퐁티 작가님과의 인터뷰는 특히 마음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섭외 단계 때는 일정이 너무 바빠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포함해 2시간만 내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미리 보내준 인터뷰 질문지를 보시곤 마음을 바꾸셨거든요. 책을 열심히 읽고 준비한 진심이 느껴진다며 제가 원하는만큼 알고 싶은 모든 걸 물어 보라고 격려해주셨답니다.

결국 인터뷰만 2시간 넘게 했고, 프랑스 언론에서는 거의 밝히지 않는 아프고 사적인 가족 이야기까지 들려주셨죠. 인터뷰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걸 완전히 잊어버린 저는 기차 시간이 지난 것도 몰랐답니다. 결국 예약해둔 기차표는 버리고 15만원짜리 새 표를 사서 브뤼셀로 돌아와야 했어요. 하지만 제 평생에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을 얻었습니다.  


인터뷰 사진에서 최고의 표정 연기를 펼치셨던 세르주 블로크 작가님.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유쾌해지는 멋진 분이셨어요


인터뷰 현장의 느낌을 독자분들께 조금이나마 전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몇 가지 추억을 꺼내놓았습니다.

사소하지만 즐거운 기분전환이 되셨길 바라며.. 제가 브런치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것도 꼭 기억해주세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소중히 여겨주셔서,

공감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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