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C 최혜진 Aug 01. 2016

현실과 여행 사이   

월급 받는 잡지쟁이로 살며 틈틈이 여행했다. 그 8여년 간의 기록을 갈무리해 첫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을 내고 난 뒤, 꽤 여러 번 반복해 들은 반응이 있다. “정말 부러워. 나도 언젠간 떠나야 하는데 말이야. 먹고사는 일에 발목이 잡혀서….” 

처음 몇 번은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대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몇몇 사람들의 흐려지는 말 끝 뒤에 숨었던 의중을 파악해서다. “여행은 정말 좋은 거잖아. 일상에 매어 있는 내 삶은 궁상맞고 초라한 것 같아서.” 여행은 낭만적이고, 일상은 지리멸렬하다는 전제.

떠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박탈감을 에둘러 표현하는 그 말들 앞에서 난 이렇게 주장하곤 했다. “아니에요! 전 여행이 일상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로요!”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그럼 여행에 대한 책은 왜 냈냐'는 의아한 눈빛이었다.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여행이 환상의 대상이며, 또 자주 현실의 도피처로 기능한다. 징글징글한 구속감과 버거운 생의 문제을 잠시 잊기 위해 입 안에 털어 넣는 쓴 소주처럼 말이다. 

예전에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페이스북에서 지인의 바캉스 사진을 볼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 ‘나 이렇게 즐기고 있어요!’라고 외쳐대는 친구의 휴가지 사진을 보면 반대급부로 자신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서일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과 휴가를 부지런히 공유(공유라 쓰고 과시라 읽는다)한다. 물론 여행지 사진에 여러 가지 이펙트를 걸어 포장하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SNS에 범람하는 이런 류의 사진은 폭탄 돌리기처럼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누군가에게 전달한다. 이 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촉박해진다. ‘아! 나도 떠나야 하는데!’  


여행이란 말 안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떠남이 뭉뚱그려져 있다. 안내자와 함께 하는 단체 관광도, 신혼여행도, 학교의 수학여행도 여행이라 부른다. 이 모든 차이를 대강 뭉쳐서 무조건 여행이 일상보다 우월한 것인 양, 고매한 것인 양 드높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특히 현실에 대한 실망감 혹은 박탈감을 조장하는 여행기를, 나는 반대한다.  

여행가의 마음보다는 생활인의 정신세계를 가진 나는 현실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대해 피 터지게 고민하려고 여행을 하는 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안 해봤던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빈번하다. 

예를 들어, 낯선 이에게 말을 걸길 주저하는 자신을 보면서 ‘난 왜 이 작은 시도조차 두려워할까’ 같은 류의 질문이 시작되면, '나라는 사람의 개성은 뭘까. 내 삶의 우선순위는 뭔가’ 등으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삶이 있었고, 난 그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발을 굴렀다. 

나에게 여행은 ‘특정 장소로의 이동’을 뜻하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관점을 넓혀주는 시간’으로 정의된다. 그리하여 관점을 새록새록하게 유지시켜주는 다른 행위-좋은 책이나 영화를 볼 때, 혹은 흥미로운 인물과 인터뷰를 할 때-에서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낀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행과 삶의 관계를 영화로 만든다면 벤 스틸러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와 비슷할 것 같다.  

폐간을 앞둔 <LIFE>지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는 월터는 마지막 호 잡지 표지 사진 필름을 잃어버린다. 그 한 컷을 찾기 위해 생전 처음 떠난 장거리 여행. 그 과정에서 특급 소심쟁이 월터는 ‘본의 아니게’ 고주망태 파일럿이 운전하는 헬기에 뛰어오르고, ‘본의 아니게’ 상어가 있는 바닷속을 헤엄치며, ‘본의 아니게’ 화산 폭발 현장에서 탈출한다. 

여행은 그렇게 월터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그 기막힌 여정 끝에 일터로 돌아온 월터를 기다리는 건 변하지 않은 냉정한 현실이다. 잡지는 폐간되고, 그는 직장을 잃는다. 언뜻 보기에 달라진 건 없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관객들은 느낀다. 여행의 경험이 월터의 내면을 심어놓은 단단한 심지와 자긍심을. 여행은 현실을 포장해주지도 바꿔주지도 못한다. 다만 현실을 대면하는 자세를 가르칠 뿐이다. 삶 속에서 여행은 이렇게 기능할 수 있고, 이렇게 기능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스 타고, 크로아티아 종단 여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