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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Aug 05. 2016

시스템적으로, 뭐

종합병원에서 느끼는 무능감에 대해  

4개월 만에 병원에 갔다. 예외적인 일이다.


보통은 일 년에 한 번 다니는 종합병원에 가서 흉부 엑스레이와 갑상선 초음파 촬영을 하고, 담당 교수를 만난다. 피검사 결과를 보면서 그는 내가 앞으로 갑상선 호르몬 약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지금 노란 약 한 알에 흰 약 반 알 먹죠? 수치를 좀 높일게요. 흰 약 반의반 알을 더 먹읍시다. 호르몬 수치가 약간 높으면 재발 억제 효과가 있어요."

최근 3년간 차츰차츰 높여갔던 호르몬 수치 때문인지 덩달아 혈압이 높아졌다. 1년 전 정기검진 때 그에게 물었다.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높으면 혈압에도 영향이 있나요? 요즘 혈압이 높아요."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혈압 하고는 아무 상관없어요."

올해 초, 한국에 귀국해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서 다시 물었다. "제가 벨기에에 있을 때 계속 혈압이 걱정스러울 만큼 높았어요. 100-150 정도 나왔으니까요. 병원에 문의하니까 갑상선 호르몬 처방해주는 의사와 상의하라고 했어요. 호르몬 때문에 혈압이 올라갈 수 있다고." 그가 답했다. "재발 억제를 위해 호르몬 수치를 높게 유지하니까 아무래도 혈압이 높아질 수 있죠. 약 복용량을 줄여봅시다."


그는 1년 전에 같은 질문에 본인 입으로 '상관없다'라고 짧게 답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8년째 그를 만나고 있는데, 그의 진료실 앞 외래 예약 현황표는 늘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고, 내가 1년에 한 번씩 진료실에 앉아 있다 나오는 시간은 3분도 되지 않았다. 기억 못 하는 게 놀랄 일도 아니다. 크게 상심하지도 않았다. 벨기에 의사 이야긴 그의 반응을 보기 위해 내가 지어낸 것이었다. 우스웠다. 벨기에 의사 정도는 들먹여줘야 진실을 말해주는 건가 싶어서 씁쓸하긴 했지만, 종합병원은 원래 이런 식이니까.  


그는 복용량을 줄여서 혈압이 낮아지는지 한번 지켜보자고 했다. 대신 중간에 한번 더 추적 관찰을 해야 한다고, 4개월 뒤에 다시 피검사를 하라고 했다.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설명 간호사는 4개월 뒤 내가 해야 하는 검사가 피검사뿐이 아니라는 이야길 했다. 매해 한 번씩 했던 흉부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까지 다시 하라고 말했다. 1년에 한 번씩 수십만 원의 검사비를 내는 것도 억울한데, 그 짓을 또 하라니 부아가 치밀었다. 불과 4개월 전에 한 초음파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꼭 재검사를 받아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수술 후 5년 간 매해 찍었던 CT도 내가 고집해서 2년에 한 번으로 검사 주기를 늦춘 경험이 있다. 이번에 초음파 검사는 가급적 받고 싶지 않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선생님께 여쭤볼게요." 설명 간호사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와서 딱딱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께서 하라고 하시네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권위의 세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온갖 학명과 영어 약자들로 이뤄진 지식의 장벽 앞에서 반복해 마주하는 감정은 무능감과 무력감이다. 의사의 처방은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전문 지식이 없는 자는 제 몸 안의 장기, 세포, 혈액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억울함이나 서러움 같은 건 집에 돌아가 혼자서 처리하는 편이 낫다. 그런 사사로운 감정까지 배려해 줄 공간이 종합병원에는 없다.


종합병원에 갈 때마다 거대하고 놀랍도록 효율적인 시스템을 경험한다. 검진 예약을 하면 예약일 일주일 전에 SMS 메시지가 날아온다. 24시간 전에도 한 번 더 문자 알림이 자동 발신된다.

예약 당일 병원 로비 회전문을 통과해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 익숙한 냄새와 소리가 와락 덮쳐 든다. 입원 병동의 살균처리된 식판에서 나던 축축한 멸균제 냄새와 "띵동" 소리를 깜빡대는 전광판의 숫자들. 수납 창구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451번 고객님이었다가, 수납 후에는 0060782번 환자가 된다. 

흔해 빠진 이름을 가진 탓에 수납 창구에서는 늘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손에 스티커를 붙이겠습니다." 이름, 환자 번호, 담당의 이름, 생년월일이 기재된 본인 확인용 스티커다. 일종의 환자 바코드. 나는 바코드를 붙인 물건이 되어 진단 레인 위를 이동한다.


먼저 엑스레이실로 가서 손등에 붙은 스티커를 보여준다. 곧 검사실 앞 커다란 TV 화면, 대기인 명단에 '최○진'이 추가된다. 도착한 순서대로 한 명씩 호명된다. 검사복으로 갈아입고 흉부 엑스레이를 찍은 뒤, 피검사실로 이동한다. 여기서도 번호표를 뽑는다. 내 차례가 되면 의사가 이렇게 묻는다. "본인 확인하겠습니다. 이름과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 나는 이름을 말하는 대신 손등에 붙인 스티커를 보여준다.

피검사실은 모든 진료과의 환자들이 몰리는 공간이라 늘 붐비지만 하얀 가운에 하얀 마스크를 쓰고 일렬로 앉아있는 대여섯 명의 의사는 하얀 일개미처럼 부지런히 누군가의 팔뚝에서 빨간 피를 뽑아 검체 용기를 채운다. 검체 용기가 박스 안을 가득 채우면 검사실 뒤편에 있는 작은 수화용 엘리베이터에 실어 어디론가 보낸다. 엘리베이터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하얀 여왕개미에게 먹을 것을 갖다 바치는 것처럼.


피검사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초음파 검사실로 가는 길에 나는 언제나, 늘, 예외 없이, 이런 실감을 느낀다. 병원 밖에서 발을 딛고 살았던 믿음의 땅, '재발되지 않았다'라는 확실성이 단단하게 지탱해주었던 지표면이 흐물흐물 해지는 느낌. 한 발 디딜 때마다 딱딱했던 땅이 '재발될지도 몰라'라는 불확실성의 늪으로 변하면서 균형이 흐트러지는 느낌.

2009년 이후로 매해 검진을 받았고 지금까지 이상소견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는 불안감이다.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일단 내 몸은 건강할 거라 믿었던 믿음이 배반당한 경험이 있으면 이렇게 된다. 초음파 검사를 하는 순간에 '다시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극에 달하는데 왜냐하면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예측은 우스워지고 믿음만 존재하는 찰나. 괜찮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는데, 그 믿음에 어떤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두 번째 갑상선 수술을 받은 이듬해, 그러니까 2010년의 일이였을 거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나서 마음이 너무 불안해져서 무표정으로 까맣고 하얀 초음파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검진의에게 말을 건 적이 있다. "선생님, 혹시 이상이 있나요? 제가 좀 걱정이 돼서요." 그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다. "담당 교수님께 결과 들으세요. 검사실에서는 설명해드리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시스템이다. 종합병원은 이런 원칙과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손등에 바코드를 붙인 환자는 시스템이 정해준 순서대로 정해진 행동을 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그의 거절이 꼭 '이상 있음'을 에둘러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주치의를 만나 검사 결과를 듣기 전까지 나는 흡사 재발 진단을 받은 사람처럼 마음을 앓았다. 하지만 일주일 뒤 주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깨끗하네요. 이상 없어요"였다.

이 일을 겪고 난 뒤, 나는 초음파 검사실에서 검진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쪽에서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환부'로서의 의미만 있다. 시스템적으로 일한다는 건 그런 거다.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초음파 검사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검사 장비가 있는 어두운 방 침대 위에 누웠다. 간호사는 내 목덜미 주변을 타월로 감싸면서 8년째 듣고 있는 똑같은 말을 했다. "검사 마치면 이 타월로 젤을 닦고 나오세요."

검진의는 중년 여성이었다. 내가 들어오고 검사 준비가 다 끝났는데도 뒤돌아보지 않고 모니터 세 개가 연결된 컴퓨터 앞에서 까맣고 하얀 검진 영상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곧 마이크를 꺼내 입 앞에 대고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귀를 쫑긋 세웠다. 들리긴 하지만 이해할 수는 없는 온갖 학명과 영어 약자가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그녀는 내 앞에 진료한 환자의 진단 내용을 음성 녹음하는 중이었다.

영상의학과 의사의 지식과 판단이 디지털 음성 파일로 변환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저 음성 파일은 병원 서버에 아마 오래 보존되겠지. 주치의가 진료 계획을 잡을 때 참고할 거고, 혹 분쟁이 일어나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증거로 쓰일지도 몰라.' 상상하면서.


그녀는 녹음을 마치고 내 진료 기록을 열어봤다. 그러더니 내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지금부터 최혜진님의 과거 초음파 사진들을 볼 거예요." 8년째 이 병원에서 십여 명의 영상의학과 의사를 만났지만, 초음파 검사 전에 과거에 찍어놓은 사진들을 살펴보는 의사는 처음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환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의사도 처음이었다.)


"2008년에는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어요?"


2008년에 찍힌 첫 번째 초음파 사진을 본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내 갑상선 오른쪽 중앙에 0.8cm짜리 나쁜 혹이 있었다는 걸. 당시에는 무조건 절제 수술을 했지만, 갑상선암 과잉 진료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어 지금은 작은 혹은 그냥 지켜보자는 흐름이 있다는 걸.

"2008년에는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어요?"라는 그녀의 질문이 '조기에 발견해 다행이다'는 좋은 뜻에서 한 것인지 한국 병원 특유의 갑상선 과잉진료 덫에 일찍 걸려버린 나에 대한 측은함에서 한 것인지 아리송했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조사에 따르면 10만 명당 갑상선암 환자는 일본 3명, 중국 1명, 북한 2.6명인 데 반해 한국은 35.4명이다.


"증상이 있는 건 아니었고요. 회사 건강검진에 갑상선 초음파 항목이 들어있어서 찍어봤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요."


대중화된 첨단 진단 기술로 증상이 없는 암을 굳이 찾아내고 수술을 권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때가 있었고, 나는 마침 그 시기에 갑상선 초음파까지 찍어주는 비싼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직원에게 제공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내 대답에 작게 웃어 보이며 검사를 시작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내 목덜미에 초음파 진단기를 지긋이 대고 문지르며 그녀가 질문했다.


"그럼 오늘은 휴가 내고 온 거예요?"

"아니요. 제가 계속 해외에 살다가 들어왔고, 이직을 하려고 지금 잠깐 쉬고 있어요."

"아이고, 한시가 아까운 시간에 병원에 오셨네요."

"네, 그러게요."


"검사 끝났어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타월로 목 주변을 닦으면서 입술이 들썩들썩했다. 왜 주치의가 1년에 한 번 찍던 초음파를 4개월 만에 또 찍으라고 한 건지, 뭔가 이상 소견이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진단 결과는 담당 교수만 설명하는 거라는 차가운 훈계는 또 듣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서 발을 내려 실내화를 신고 몸을 일으키는 나에게 그녀가 미소를 머금은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 없어요. 괜찮아요. 조심히 가요."


검사실 침대 위에 누운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에 떠는지 다 이해한다는 듯, 나에게 속삭여주었다. 시스템과 원칙 같은 것들에게는 비밀로 하자는 듯, 우리끼리 알고 있자는 듯.


오랫동안 병원이 무섭고 싫었다. 나도 모르게 병원에 가면 몸이 굳었다. 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고 점심을 먹다 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거에 수술을 했던 기억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녀가 속삭여준 "괜찮아요" 이 한 마디를 듣고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내가 마음을 가진 존재임을 확인받는 순간이 거의 없다. 중년의 영상의학과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그저 몸뚱이로 존재했다. 수술실 침대 위에 놓인 뼈와 살로 이뤄진 덩어리. 약물을 주입하고, 각종 진단 장비를 통과하고, 종양을 떼어내는 대상으로서만 존재했다. 시스템은 머뭇거림, 주저함, 애매함, 실수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을 가급적 없애기 위해 병원의 사람들을 견고하게 설계해 맞물려 돌아가는 부품처럼 만들어놓았다.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실수도 하며 불안에 떠는 마음이라는 것을 가진 나는,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감정이라는 것을 가진 나는,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마음과 감정을 어디에 어떻게 숨겨야 할지 몰라서 병원에만 가면 허둥댔다. "괜찮아요" 이 한마디에 나는, 몸뚱이나 환부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마음과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허가를 받은 것처럼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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