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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Apr 03. 2017

[그림책 처방]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제가 싫습니다

박현주 <나 때문에>


to 에디터C

잘 살다가도 이 생각이 한번 스치면 저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바로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말실수에 많이 예민해집니다. 의도치 않았는데 저의 말실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거나 민망해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스스로가 너무나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되는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실망스럽습니다.


말실수로 상대방과 사이가 멀어질까봐 두려운 게 아니고 ‘왜 나는 그렇게밖에 못하나’ 싶은 자책에 마음이 괴롭다는 게 정확한 설명일 겁니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들 “사람은 다 실수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오히려 저를 지치게 하더라고요.


from 별



to 별


별님이 '말실수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보거나 민망해지는 상황이 생긴다'고 판단하신 이유에 대해 혹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상대방이 직접 별님에게 상처받았다고 표현한 건지 아니면 별님께서 스스로 생각을 곱씹다가 내린 결론인지 궁금해요.  


from 에디터C


to 에디터C

                        

'그 사람이 피해 입었다'의 판단은 제 스스로 내렸습니다. 통제 밖의 일이 벌어져서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이 생길까봐 두렵습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을 책임질 수 없을 때 사람이 참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요.


from 별



자책을 만드는 검열관


상대방이 “너 때문에 피해 입었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책을 하게 된다는 별님의 메일을 받고 처음에 든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안주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런 안하무인인 사람보다야 훨씬 친해지고 싶은 사람 아닌가!”

물론 자책하는 마음이 과해서 별 일 아닌 일에도 주눅 들거나 스스로를 닥달하게 된다면 그 마음을 점검해 볼 필요는 있을 거예요.


메일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전해져온 감정은 긴장이었어요. 내가 실수하면 어쩌지,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쩌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마음이랄까요. 잠시라도 마음을 놓으면 내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와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초조함과 불편함이 전해져왔어요. 이런 긴장하는 마음을 한 겹 벗겨내보면 아마도 이런 전제가 그 안에 숨어있을 거예요.


나는 경솔하다.

나는 말실수를 잘한다.


하지만 메일을 주고받으며 밝혀졌듯 이건 객관적인 상황과는 별 상관없이 만들어진 자기 평가입니다. 실제로 분란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의 내적 판단으로 내린 선고이지요. 
  
아마도 이번 사건과 상관없이 기존에 별님이 가지고 있었던 자기 인식이 이미 저렇게 잡혀 있었고, 그걸 감추어야 하는 결점으로 여기고 있던 차에 그 언저리를 스치는 일이 벌어지니 화들짝 놀라서 자책이 시작된 것 같아요.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두렵고 궁극적으로 무력감을 느낀다는 설명에서는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었어요. 

별님을 괴롭히는 자책이 실제 '말실수'로 인한 자책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상정해놓은 결점을 제대로 숨기지 못한 본인의 무능력에 대한 자책 같다는 생각이요. 그게 결국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별님만 그런 게 아니고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는 비밀스러운 검열관이 있어요. 자신의 행동, 성격, 과거의 여러가지 면모 중에서 어떤 부분을 결점으로 여길 것인지 판단하는 검열관이죠. 사람마다 이 검열관의 기준은 달라요. 그래서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어낼 수 있는 일이 나에게는 질긴 죄책감으로 남을 수도 있는 거고요.


메일을 읽고난 뒤에 저는 자연스럽게 이런 후속 질문들이 생겨났는데, 별님은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왜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도 말실수를 했다고 여기는 거지?” “경솔한 말을 해서 스스로를 큰 어려움으로 몰고 간 적이 있었나?” “일상적인 대화에서조차 책임지지 못할 일이 벌어질까봐 두려워하는 이유는 뭐지?”



검열관을 검열하기


감당하기 힘든 불안, 감정, 욕구, 인식이 피어올랐을 때  그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위의 질문들처럼 차근차근 인과관계를 따져보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내면의 검열관도 마찬가지예요. ‘네가 참인지 아닌지 한번 따져보겠어!’라는 마음으로 검열하는 마음 그 자체를 시험대에 올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동안 의심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였던 검열관의 논리가 생각보다 허약하며, 그에게 복종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걸요.


쉽게 말해 ‘나는 경솔하고 말실수를 잘한다’는 생각 그 자체를 인과관계의 틀에 넣고 검증을 해보는 거죠. 정말로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나쁜 일이 벌어졌는지, 경솔함의 기준을 어떻게 매기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거예요.


정말 나 때문에?


별님의 메일을 받고 곧바로 생각난 그림책이 있어요. 박현주 작가가 쓰고 그린 <나 때문에>라는 작품입니다.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인과관계의 틀에 넣고 검증해 볼 때, 그 감정들의 정체가 어떻게 밝혀지는지 살펴보게 만드는 놀라운 책이죠.

표지에는 맑고 청순한 눈망울을 가진 고양이 얼굴이 있습니다. 그 위에 <나 때문에>라는 제목이 얹혀지니 고양이의 마음 안에 싹튼 자책감의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고양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책장을 펼치니 주차장 한쪽에 놓여진 고양이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바라보는 두 개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텍스트는 딱 한 줄 뿐입니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울어요."

두 개의 그림자는 바로 울고 있는 두 아이였습니다. 고양이는 왜 주차장에 있는 걸까요? 혹시 유기된 길고양이일까요? 아이들이 우연히 발견하고 불쌍해서 울고 있는 걸까요?

다음 장을 펼쳐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엄마에게 쫓겨났으니까요."

이제 독자는 전후관계를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고양이는 길고양이가 아니고 아이들이 키우던 고양이였고, 어떤 이유에서 엄마에게 쫓겨나 주차장에 놓여지게 되었다는 걸요. 그럼 엄마는 왜 고양이와 아이들을 쫓아낸 걸까요?

<나 때문에>의 매력은 인과관계를 역으로 배치한 서사 구조에 있습니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면서 바로 앞장에서 보여진 결과가 알고 보니 생각지 못한 원인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을 차츰차츰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이 운다 - 우는 이유는 엄마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다 - 쫓겨난 건 아빠가 발을 다쳤기 때문이다 - 발을 다친 건 고양이가 펄쩍 뛰어 올랐기 때문이다 - 펄쩍 뛰어 오른 이유는 엄마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싸웠기 때문이다 - 싸운 이유는 우리가 엄마 아빠를 자꾸 불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과관계의 사슬이 이어집니다. 결정적으로 아이들과 고양이가 엄마 아빠를 자꾸 부른 이유가 밝혀지는데요, 그건 바로..



아이들은 화분에 피어난 꽃망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부모님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거죠. 부모님도 분명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믿어서 부모님을 자꾸만 불렀던 겁니다. 이런 고양이와 두 아이를 향해 "너희 때문에!"라고 쏘아붙이며 불화의 책임을 묻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아이들이 '나 때문에'라는 자책감을 느끼는 게 합당한 일일까요? 


알랭 드 보통은 책 <불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상자를 하나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사람들의 인식은 모두 이 상자에 먼저 들어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만일 그것이 참이면 더 강한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만일 거짓이면, 웃음을 터뜨리거나 어깨를 으쓱하고 털어버리는 것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 철학자들은 이 상자를 '이성'이라고 불렀다.

원인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이성'이라는 상자 안에 넣어서 검증해야 하는 건 나를 향한 타인의 인식만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검증 상자 안에 넣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나의 어떤 면을 결점으로 인식하는지, 그 인식이 자연스러운지, 유독 한 부분에 대해서만 예민하게 두려움을 갖는 이유는 뭔지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인과관계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권하고 싶어요.

편지를 마치기 전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떤 한 결점에 대해 특별히 예민하다는 건 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강력한 자기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솔한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말실수하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강력한 믿음 때문에 역으로 그 부분에 예민해지는 거예요.

“사람은 다 실수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오히려 기운이 빠진다고 하셨죠? 아마 별님이 실수하는 자기 자신을 극구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지는 모르겠고, 다 됐고, 어쨌든 나는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뾰족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진 않나요?

우리는 모두 부끄러운 짓도 저지르고, 때때로 실수도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에요. 몰라서, 어리바리해서, 갑자기 못된 마음이 솟아서 스스로 납득하기 힘든 일을 저지르기도 하죠. 이때 수치심이라는 독소가 자신을 갉아먹지 않게 하려면 스스로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실수를 통해 개선되고 또 배울 수 있다고 믿어야 해요.


긴장을 조금 풀고,
실수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허락해보세요.

제가 별님에게 진심을 다해 전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이 한 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쓴 최혜진

10년간 피처에디터로 일하며 크고 작은 인터뷰로 각기 다른 결을 지닌 1천여 명의 사람을 만나 수만 개의 질문을 던졌다. 10년 차가 되던 해에 유럽으로 날아가 3년 동안 살며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명화가 내게 묻다><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썼고, 현재는 <볼드저널>의 콘텐츠디렉터로 일한다. 그림책이라는 놀라운 예술 장르에 매료된 자발적 마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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