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니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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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강박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책을 읽다 "아, 정말 멋진 글이다" 감동을 받으면 표지 앞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글로 바로 직행해 작가가 몇 살인지 알아본다. 만약 저자 소개에 출생 년도가 나와있지 않으면 구글링을 해서라도 대략 어느 정도 연배인지 조사한다. 책에 대한 선호와 상관없이 내 관심 분야인 에세이 분야에서 선전하는 신간들에 레이더망이 발동할 때도 있다.
그 책의 저자들을 직접 만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고 "저, 그... 전 빠른 1982년 생입니다만."이라며 서열 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은 더더욱 없는데 맞짱 뜨는 심정으로 나이를 알아보니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습관이라는 거다.
그렇게 알아본 저자의 나이가 나보다 많으면 일단 안심이다.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아유, 경험이 많으시니 글도 물론 잘 쓰시겠죠. 좋아하고 있습니다.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이런 상태가 된다.
반대의 경우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례로 소설 <A씨에 관하여>는 16세 소녀 작가 안현서가 원고지 1,200매 분량 장편소설 초고를 단 8일 만에 완성한 걸로 유명한데, 이렇게 월등히 어린 작가들을 만날 땐 오히려 마음이 겸허해진다. 경이롭다는 느낌을 가질 뿐이다.
문제는 또래다. 비슷한 나이에 3쇄 이상을 찍은 책의 저자라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호의적인 서평이 마구 달린 책의 저자를 발견하면, 심지어 그가 낸 책이 실용서도 아니고 순수 에세이 분야라면, 아랫배가 간질간질하다.
2
그 나이엔 공부만 해라.
이 나이가 되면 직장이 있어야 한다.
이 나이엔 결혼을 해야지.
늦어도 이 나이 전에는 출산해라.
이 나이에는 적어도 자기 집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
유럽에 살면서 이 한국식의 '나이대별 과업 리스트'가 얼마나 괴상한 것인지 깨달았다. 여기에서는 아무도 저런 말을 하지 않으니까. 내 안의 조급증과 노예 근성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나이'와 '성과'를 연결시켜 몇 살 땐 무엇을 이뤄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방식으로는 절대 살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글쓰기에 대해서만큼은 그게 잘 안된다. 다른 삶의 과업들-이를테면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킬 때, 상황이 허락할 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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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에 너무 늦은 나이라는 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안다. 40세까지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소설가가 된 박완서 할머니는 내가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품어온 희망의 상징이다. 신문 기자로 일하다 47세에 등단한 김훈, 70대에 첫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을 쓴 노먼 매클린, 50세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6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팔리는 책을 썼다는 시드니 셀던도 기억난다. 최고봉은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에 자가출판으로 첫 시집을 낸 시바타 도요 할머니다. 시바타 도요의 시집 <약해지지 마>는 일본에서 150만 부가 판매되었고, 그녀는 100번째 생일에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글을 쓰기 좋은 나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희망을 불어넣는 사례는 널리고 깔려 있다. 문제는 그런 '희망의 사례들'을 내면화시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특별한 재능을 이미 가지고 있었고, 그게 터져나온 거겠지'라면서 구분 짓는 마음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그만큼 재능이 없으니까. 이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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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과도하게 주제 파악이 잘 되어서 의기소침 해질 땐, 나보다 딱 열 살이 많은 언니이자 동경하는 작가인 임경선 작가의 홈페이지(http://catwoman.pe.kr/)에 간다.
그녀가 회사를 관두고 전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2005년, 그러니까 나와 같은 나이인 서른네 살에 쓴 글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소소한 하루 일과부터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불안해하는 마음,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이 직접 글을 실어줄 매체를 찾아다니면서 '역 연재 제안'을 해서 칼럼니스트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야기, 10개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고 면접까지 봐서 겨우 첫 책을 낸 이야기, 무명 신인 작가를 출판사가 얼마나 막 대했는지 거친 말투로 성토하는 글 등이 여전히 홈페이지에 남아 있다. 그 10년 전 글을 읽는 것만으로 힘이 난다.
동경하는 대상이 10년 전 내 또래 때는 그닥 내세울 게 없었다는 것. 그 시절 그녀의 글을 읽으면 (물론 특유의 매력은 살아있지만) 거칠기도 하고, 모두 다 잘 쓰여진 것도 아니라는 것. 대단히 특출 난 재능이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게 아니라, '계속하기로 마음 먹고, 계속한 것'이 그녀를 이끌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서다.
당장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상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된다. 의기소침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게 된다. 나보다 열 살 많은 사람의 10년 전 글을 읽는 데에는 이런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