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 실험실
책 만드는 일 첫 시작 무렵 만나, 서툴고 부족한 부분 채운다고 여기저기 배움을 청하는 자리에서 마주치고 만나고 하던 사이. 한동안은 소식을 통 모르고 지내다가 드니 나방님을 다시 마주친 것은 몇 년 전 와우북페티벌이었다.
그는 1인 출판사를 차려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고 나는 조금 침체된 상태로 허우적대며 일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10월 땡볕 아래에서 책만드는 일의 어려움을 각자 한토막씩 하소연을 한 뒤, 다시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남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한참 후에 책을 내고 싶어하는 분이 있어 나방님에게 소개해 드렸다. 나방님을 특별히 도와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친분이 두터워서도 아니었으며, 마침 그 순간 아주 우연하게도 그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게 번쩍 떠올랐을 뿐이다. 무엇보다 내 손에 오래 붙들고 있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훌쩍 던진 것. 간단히 전화번호 공유를 누르고, 그 일은 그렇게 내 손을 떠나갔다. 나도 잊어갔다.
몇 달 뒤 나방님은 그 책을 출시했다며 책도 줄 겸 한번 보자고 했다. 점심시간에 만나 모처럼 수다를 떨었다. 곳곳에 그의 정성이 밴 책이 고왔다. 매인 몸인지라, 좋은 일을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듣는둥 마는둥 하고 나는 바삐 사무실로 돌아왔다.
늦은 밤 집에 와 그가 만든 책을 꺼내드는데 뭐가 툭 하고 떨어졌다.
헉, 꽤 예쁜 봉투의 금일봉이었다. 당황했다. 견물생심을 논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었다. 소개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받아들기에도 그랬다. 늦은 시간이라, 다음날 일찍 자초지종을 들어보자 생각했다.
"나방님, 아니 이 봉투가 뭐에요? 깜짝 놀랐어요. 제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닌데요!"
"아니에요, 제가 꼭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설왕설래, 구구절절....실랑이가 한동안 계속됐다. 물욕이 많았던 나는 좀 쉬크하게, 당장 돌려주며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사이에!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대신, 그럼 그중 일부만 주..라고, 참 없어보이게 말하기도 했던 거 같다.
"근데요, 저는 사실 도와드린 게 없어요. 전화번호 그냥 전해준 것뿐이잖아요."
"그게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전해준 전화번호가 그냥 나온 거예요?
십몇년 열심히 일하고 쌓아온
신뢰와 시간이 만들어준 전화번호잖아요.
사람들이 이런 부탁을 그냥 아무한테나 하나요?"
내가 축적해온 시간 (축적이라 말하지만 사실 뭉개고 생각없이 지나왔을지 모를)의 가치를 누군가, 그렇게, 명료하게 인정해준 것은 그순간이 처음이었다. (금일봉 때문이 결코 아님!!!!)
하마터면 열심히 일할 뻔했다는 성토대회가 거세지던 무렵, 한 직장에 누룽지처럼 오래 다닌 게 민망한 일이 되어가던 무렵에, 저 선배처럼 되고 싶지 않았어요의 '저 선배'가 되어가고 있던 마당에, 한층 꺾여 있던 내 자존심에 물기가 도는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소개해달라는 영업의 일환이니 부담갖지 말라며 그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당시 그는 그렇게 호기롭게 영업을 할 만큼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였나.
찰싹찰싹 스스로 매질을 하고 깎아내리던 나의 시간들을, 아끼게 된 것이. 사람이 어째 그리 모지라냐, 스스로를 그리 여기냐 할지 몰라도 그런 시간이었다, 그때가. 자가발전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늘 탱글탱글 유지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닌 나에게 일대전환이 되어준 일이었다. 나의 시간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다. 회의감과 무력감의 거죽을 조금은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리고 너 그리 헛살지 않았어, 라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또 그러부터 몇년.
얼마전 드니 나방님과 저녁을 하며 그의 일대 활약기를 듣는데,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성과도 실패도 상존하고,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은 사업의 세계. 스스로 한번도 스타가 되어 주목받지 않았기에, 스스로 방법을 모색하던 그 시간들이 오히려 거친 사업의 세계에서는 무기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진정한 힘은, 박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 안에서 뚫고나온 힘만이 제대로 끝발을 세울 수 있다. 외부로 향하는 시선에는 한계가 있다. 좇음으로 끝날 위험이 있다. 비교와 찬탄과 허무와 실망이 사납게 요동치고 정작 중요한 내공이 쌓이지 않을 확률이 크다. 결국 시선은 안으로, 그렇게 내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실 모든 순간을 함부로 흘려보낼 수가 없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비록 타인의 시선에는 보잘것없는, 그렇고 그런 불명의 시간일지 몰라도 당사자는 치열하게 응시하고 벼리고 만들어내는 시간일 것이다.
어떤 시간을 지금, 만들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