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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운박사 Jun 25. 2023

나의 일을 나의 언어로 정의한다는 것

브라운박사의실험실

오늘은 길벗출판사에서 진행되는 최인아 선생님 강연을 주책 맞게스리 기어이 쫒아가 들었다. 강연 장소가 근처인 것도 있지만 (잠재적 경쟁사인) ’출판사’에서 하는 강연이니 괜히 호기심이 더 일어 꼭 가봐야겠다 싶었다.


이미 많이 들었던 내용임에도 나와 같은 업종에 있는 이들 속에서 함께 듣는다는 게 꽤 새로운 경험이었다. 또한 내가 강연의 주최자 입장이 되어 여러가지를 신경 쓰며 듣는 게 아니라, 순수한 청자로서 강연을 들을 수 있으니, 자연히 나 개인의 입장에서 내용를 들여다보게 되더라. 무엇보다 질문 자체가 우리 업에 대한 같은 고민에서 시작되니 더 와닿았달까. 콕콕 찌르고 마음에 담기고 그랬다.


특히 강연장에는 어리버리한 꼬맹이 편집자에게 커다란 산과 같았던, 나의 멘토님(나혼자 이렇게 정함)이 앉아 계셔서 더 기분이 새로웠다. 허겁지겁 도착해 두리번 거리는데 얼마전 이직하신 멘토님의 뒷모습이 순간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판권에 적힌 그분의 이름을 마음속에 넣어두고, 꼭 한번 만나고 싶다, 나도 이렇게 책울 잘 만드는 날이 올까, 경외감을 느꼈던 시간들. 좋은 인연 덕분에 찾아뵙고 물어보는 과정에서 나에게 ‘실용서’의 가치를, 내 안에 있던 실용의 호기심을 눈뜨게 해준 분이다.


그러고 무대를 보니 또 그곳에는 나의 30대와 40대에 멘토인 분이 (이또한 내 맘대로) 서계시니 감개무량했다.


책을 만들며 나는 참 많이 자랐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사람 구실 하게 된 바탕에 책을 만드는 일을 통해 만난 어른들, 선배들 그리고 지혜들이 큰 자양분이 되었다. 나의 일이 준 것들이 이리 크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나는 ‘책 마을’ 비닐하우스에서 약한 뿌리를 좀더 내리고, 부실한 가지를 살찌웠다.


오늘 특히 한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 출판 일에 대해 후배가 물어올 때 어떻게 답을 할지, 이 일을 계속해야할지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실은 틈만 나면 나 역시 빠지고 마는 질문이자 걱정이기도했다.


최인아 선생님의 대답.

“내가 서점을 한다고 했을 때 모두 말렸다. 그거 돈 안된다고, 50중반에 시작해 망하면 재기도 쉽지 않다고. 그러나 나는 서점을 하고 싶었기에 그것으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을 해내면서 어떻게든 되게 만들고자 했다. 그러려면 업을 내 관점에서 정의해보는 게 필요하다. 내가 출판을 좋아한다면 세상에서 흔히 사양산업이란 말로 비전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단 내 관점에서 출판을 정의해보라. 그러면 나에게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새로운 방식과 일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 정의에 따라 책을 만들 때 힘들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는 건 동시에, 감당할 부분이 있음을 의미한다.,”


속으로 은밀히 나는 내가 생각하는, 꿈꾸는 출판을 정의내려보았다. 그러자 슬쩍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문제는 비전의 있고없음이 아니었다. 사실 비전엔 여러가지 포함되어 있기에 깡그리 이걸 무시할 수는 없다 . 다만 그 비전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생각지 못한 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번쯤 내가 하고자 하는 (지향하는) 출판을 내 언어로 정의해보 적이 있던가. 나에게 출판은 살아가며 길이 막힌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도구인 것 같다. 전환과 해법이 내 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이들에게 가장 쉽게, 가장 다양하게 해법을 제안할 수 있는 도구. 특히 마음의 길에서 어딘가 턱하고 걸려 나아가지 못하는 (때로 나도 그러한) 이들에게. 이를 구현하는 방식은 꼭 정통적인 출판의 방식만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오래전 마음에 품었던 ‘실.용.정.신’.. 을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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