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 실험실
나의 첫 세계여행에서 지금도 가장 기억이 없는 도시는 바르셀로나다. 그곳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강도를 당했기 때문인데, 강도당한 기억과, 새우잠을 잤던 경찰서 등만 또렷이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희미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을 하고싶지 않다. 구엘공원인지, 뱀처럼 구불구불 생긴 공원에서 내가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자책과 미련 속에 멍하니 서있던 기억도 난다.
등에 맨 배낭을 남자 셋이서 붙잡고 어린 소년 하나가 앞가방을 잡아당겨 떼어내 도망을 갔는데, 헬프미라고 아무리 외쳐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남탓할 것도 없이, 밤 10시에 오페라역인지, 하여간 가이드북에서 몇번을 주의를 준, 엄청 붐비는 그곳을 온몸에 관광객이라고 써붙인 채 겁도 없이 돌아다녔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소년 강도가 훔쳐간 가방엔 돈도 들어있지 않고, 카메라도 들어있지 않고, 얇은 영어소설과 일기장이 전부였다. 당시엔 눈물로 써내려간 내 오랜 길 위의 기록을 잃어버린 게 너무 슬펐다. 마치 어느 시간이 툭 하고 뜯겨 나간 듯한, 조금 더 과장하면 친한 친구가 사라져버린 그런 정도의 상실감이 덮쳐왔다. 그 일기장만 돌려준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불킥 할 만한 내용이 그득한 그 일기장을 잃어버린게 별로 슬프지 않다.
사실 그 일기장이 말해주듯 나는 붕 떠 있는 상태였다. 한밤에 거리를 배회하는 맑눈광의 관광객, 강도들에게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먹잇감 그 자체였을 것이다. 가짜 영성이었다고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난 순례길에 이어 수도원까지, 거친 속세를 벗어나 두어 달을 지낸 상태였고, 본래도 뽕끼가 많던 나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벅차고, 온통 아름다워 보이는 지경이었다. 걸핏하면 눈물이 나왔다. 일기장엔 그런 고백이 한가득이었겠지.
그도 그럴 것이 감히 신의 가호라 해도 될 만큼 모든 게 순조로웠다. 너무도 공허하던 어느 날 운 좋게 수도원에 묵게 된 것도, 저 멀리 남부의 그라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와 북부의 아스토르가 역에서 밤새 노숙을 했을 때도, 아무 사고도 없고, 아무 장애도 없었으니까. 천지가 친절했고, 완벽했다. 수도원 방의 따듯한 온기와 좋은 냄새가 나던 양털 이불, 반짝반짝 닦여 있던 흰 접시, 그리고 저녁마다 울려퍼지던 그레고리안 성가까지...그분의 뜻대로, 이만하면, 충분한.
안전한 그곳에서, 나는 온전히 홀로 지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쉬었고, 두달여의 대장정도 토닥토닥 마무리를 해나갔다. 그런 holy한 시간 속에 싸여 무엇엔가 홀린듯 둥둥 떠 있던 나는 뒤텅수를 정통으로 한대 쳐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어쩌면 이마저도 그분의 뜻대로.
그런데 지금도 그렇다. 무언가가 너무 좋거나, 잘되면 꼭 그 다음엔 그렇지 않은 일이 생긴다. 세상 모르고 온몸을 들썩이며 깔깔깔 웃는데, 누가 탁 하고 어깨를 치고 가는 느낌이랄까. 어제의 내가 무색할 만큼. 이봐요, 나 지금 천국에 있어요!!! 하고 한껏 들떠있다가, 얼마 되지도 않아 아, 여기야말로 지옥이군요...하며 낙담을 거듭한다.
조금 연식이 쌓이며 그 낙차가 줄고, 좋은 일이 있다고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하고, 나쁜 일이 있다고 너무 낙담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쉽지는 않다.
하나의 순간에 천국과 지옥이 모두 있다. 한 명의 사람에게 천사와 악마가 모두 있다. 너무 좋기를, 너무 잘되기를, 너무 잘하기를 바라는 내 교만을 깨우는 순간들이 삶의 곳곳에 있는 것이다.
깨어있음이 거창한 말이 아니다. 오늘이 하지다. 해가 가장 긴날, 양기가 끝간데 없이 하늘로 치솟는 이날, 하지만 낮이 짧아지기 직전의 날이기도 한 날! 누군가 내 어깨를 탁, 하고 쳤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