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엄마의 취향
늦은 밤 여느 때와 같이 양치를 하다가 엄마의 나이에 대해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엄마의 나이’를 낯설게 인지했던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3-4학년생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의 나이가 35세 정도셨을테니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셨다. 그 당시 동네 아주머님들과 대화를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데 새삼 멀리서 쳐다보며, ‘아, 우리 엄마는 키가 작으시구나. 우리 엄마는 짧은 단발머리의 곱슬이구나.’하며, 처음 엄마라는 여성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본 기억이 남는다.
그로부터 약 4년 후,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빠가 갑작스럽게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에게는 40대가 되기도 전에 남편을 잃은 것이다. 나는 버틸 수 있었을까?) 곱슬머리 단발의 여자는 본인의 나이가 몇 살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스스로 물어볼 겨를 없이 치열하게 살아오셨을 것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취향은 곧 자식이 좋아하는 것들이었고, 엄마의 꿈은 욕심 많은 막내딸의 꿈으로 뒤바뀌어 버린 채 내 나이의 곱절을 살아오셨다. 그리고 지금, 그 여성은 검고 짙은 머리카락을 세기 어려운 황혼의 나이가 되셨다.
나는 좋아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많아 어릴 적부터 일기장이 늘 꿈으로 가득 찼고, 두 자식을 키우시느라 집안 사정이 부족했을 엄마에게 늘 바라며 징징거리던 딸이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미워하거나 또는 부러워하신 적은 없었을까. 새삼 그녀에 대한 질문이 많아진 밤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병원 검진차 한동안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와 며칠 머무르신 적이 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동네에 자주 가던 단골 찻집에 들르기로 했다. 낯이 익은 사장님께 엄마를 소개드리며, 나는 메뉴판을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주 마시던 TEA를 주문했다. 차 종류가 유독 많았던 탓에 한참을 넘겨도 고르지 못하시는 엄마에게 취향을 물었다. “엄마 차 머 마실래?” 그리고는 속삭이며 대답하셨다.
“여기는 말차 없어? 너네 거.”
평소 심장이 약하셔서 카페인이 조금이라도 든 차나 커피는 입에 대지도 못하셨기에 우리 제품들을 보내 드리면서도 주위 지인분들께 나눠 드리거나 하시라며 엄마는 마시지 말라고 늘 당부드렸다. 말차에도 카페인이 있다 보니, 늘 엄마에게는 어쩔 수 없이 추천하지 못하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집에 몇 개씩 구비해 두시고는 한 포씩 열심히 우유에 타드시며 자주 챙겨 드셨다고 한다. 말차 카페인에 적응이 되신 건지, 이제는 카페에서 음료 주문할 일이 있으면 메뉴 중에 말차라테는 없는지 물어보신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이 없던 엄마는 딸 사업을 위해 슈퍼말차라는 취향을 만드셨고, 나도 찾지 않던 메뉴를 오래도록 두리번거리셨다. 어쩌면 본인이라도 말차를 마셔서, 카페 사장님들이 슈퍼말차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엄마만의 세일즈(?)를 하시는 것 같았다.
환갑을 맞이하신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차는 비싼 외제차도 아닌, 슈퍼말차가 된 것이다. 다음에는 엄마도 마실 수 있는 논카페인 TEA를 만드리라 다짐했고, 다행히도 슈퍼보리를 권해드리고 있는 요즘이다.
Hyejin Sung
Co-founder & Creative Director, HIT THE TEA
HIT THE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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