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5일의 끄적인 일기장을 들추며,
여기는 싱가포르. 현지 바이어 미팅들과 오트사이드와의 협업으로 함께 참여한 푸드 엑스포 박람회도 볼 겸 근처 비즈니스 호텔에 와있다. 내일은 마지막 미팅 끝내고 인도네시아로 바로 넘어가는 빠듯한 일정으로 잡혀 있다. 회사나 일이 안정적이지 않고 불확실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준비하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엄청난 용기와 배짱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마치 언제 깨질지 모르는 드리워진 안갯속에 살얼음판 위를 건너가는 행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부가 조금 더 안정적일 때’, ‘조금 더 매출이 올랐을 때’ 즉 얼음판이 조금 더 단단해질 때 나아가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안정적인 적이 없었다. (아마도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염려하는 ‘안정적인 기준’은 너무도 이상적이어서, 책의 결말들과 같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하는 끝이 생략된 단편적인 모습일 것이다.
직원의 입장으로 조직 생활을 했을 때만 해도 나 또한 불확실한 시장에 도전하는 경영진들의 모습에 내실이 부족한 상태에서 왜 직원들의 불안을 고려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어렸을 때의 조직 생활 경험이었기 때문에 ‘나만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크게 관심조차도 없었지만, 시니어 관리자급에서는 경영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불만을 팀원들에게 나눴던 기억이 난다.
이제야 돌이켜 보니 수백 명, 수천 명의 직원들을 운영하는 대기업 대표님이 내린 결단이라면, 밤새 머리를 쥐어짜며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치열하게 내린 결정일 수밖에 없었을 것임을 이제는 일부 그들의 입장이 되어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처럼 언젠가 깨질지 모르는 얼음판(사업 또는 경영)을 건너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마음은 늘 불안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보니 쉬이 즐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오트사이드 행사에 싱가포르 현지인들과 일을 하며 크게 깨달은 점이 있었다. 오트사이드도 우리와 같이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였기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세일즈를 하기 위한 초입의 단계였다. 그렇다 보니 행사 부스 참여 경험이 많지 않아 시음이라거나 홍보물 키트 등 준비물품들이 미흡한 점이 있었다. 반면 나는 행사 오픈 시작부터 응대가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당황하며 이리저리 발을 동동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정작 행사 주최인 오트사이드 직원들은 어느 누구도 지금의 상황에 걱정하지 않았고, 외려 서로 여유 있는 농담을 건네며 본인들의 허술함을 어느 누구에게도 탓하지 않았다.
‘준비되어 있지 않음에도 웃으면서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는 이 여유와 자신감은 무엇일까?’ 내 눈에는 부족함 투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렇게 해도 굿!, 저렇게 해도 나이스!’를 연발하며 점점 더 구색이 갖춰지는 부스의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그저 시도해 봄에, 실패해 봄에 관대한 여유와 자세가 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비록 이 또한 일부만 바라본 모습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함께 일하는 시간 동안 불편한 감정 없이 행복했다. 나도 나와 함께 나아가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관대함의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동료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실수로 얼음판이 깨져 모두가 차가운 물속에 빠진다 해도 ‘빠진 김에 시원하게 물놀이나 하자’고 제안하며 즐길 수 있는 관록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번 출장에 내가 배운 것은 글로벌한 마인드는 결국 긍정 에너지라는 별거 아니지만 가장 갖기 어려운 자질의 차이임을 또 한 수 배우며, 얼음판이 깨졌을 때를 미리 대비하며 구명조끼를 구비할 것이 아니라 언제든 빠져도 즐거울 수 있도록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