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은 콧구멍도 하트
K에게
빠져들어서 봤어.
콩이랑 스컬 크롤러가 화면에서 나와서 내 앞에서 싸우는 것 같더라고.
3D로 본 게 아닌데도 말이야.
패카드(사무엘 L. 잭슨)는 폭풍을 뚫고 나가면서
이카루스의 날개 이야기를 한다.
밀랍으로 만들어진 날개가 녹을까 봐
이카루스의 아빠(다이달로스)는 태양 가까이 가지 말랬는데
기어이 태양 가까이 갔다가 바다로 추락해버린 이카루스.
헬기는 밀랍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녹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헬기들은 ‘전쟁하러 가는’ 이들의 오만 때문에 산산조각 나.
어쩌면 그게 밀랍인 거지.
헬기 창 앞에 붙어있는 미 대통령의 목은 대롱대롱 흔들리며 추락한다.
베트남전에서 철수하게 생기자
패카드는 ‘헛지랄한 거야’라며 망연자실. 허무해한다.
다른 병사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을 세우지만
패카드는 전쟁을 떠나서는 자기 존재를 느낄 수 없는 사람.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지. 포기했다는 거야.
폭풍을 뚫고 들어간 미지의 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정글에서
탐사팀은 지질 조사를 한답시고 폭탄을 떨어뜨리고
탐사팀이 아니라 폭격팀이 되어버리고 말아.
섬의 동물들이 죽는다.
처음엔 놀란 사슴들이 보이던가.
그리고 거대한 콩(KONG)이 일어서.
콩이 적인 줄 알았지만
콩 덕분에 스컬 크롤러들이 지하에서 못 나오고 있었던 거였지.
원주민들은 그래서 콩을 신으로 모셔.
더욱이 콩은 스컬 크롤러에게 부모를 잃은 아픈 경험이 있어.
이제 적은 스컬 크롤러.
전쟁에 패배했다는, 미국의 상처 입은 자존심과
‘지배하겠다는’ 전쟁 욕망이 뒤엉켜서
괴물이 된 걸로 보였어.
상처 입은 자존심이 콩 쪽이라면
전쟁 욕망은 스컬 크롤러 쪽이 아닐까.
콩은 콧구멍도 하트다.
스컬 크롤러는 못생겼어.
나 외모 지상주의 아니고
영화에서 겉모습을 그렇게 만든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
더구나 패카드(사무엘 L. 잭슨)와 콩이 닮아서
영화는 패카드가 자신과 싸운다는 생각도 하게 만들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콩)과
자기 안의 추악한 얼굴(스컬 크롤러).
어쨌든 콩과 스컬 크롤러가 싸우는 장면은
정말 어마어마해.
일단 크기가 커서 그런지 넋 놓고 보게 되더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하게 큰 동물들과 벌레들.
말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
웃지도 않아서 표정으론 그 속을 알 수가 없지.
베트남전에서 병사들이 겪은 공포와 두려움이 형상화됐어.
이 섬에 28년 동안 갇혀있었다는 말로우(존 C. 라일리)는
이 괴물들에 대해 잘 알지.
콩과 스컬 크롤러는 천적이라는 점.
새처럼 우는 거대한 개미.
밤이 되면 더 위험해진다는 것.
서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
말로우는 같이 불시착했던 일본 병사도 이 섬에 묻어줬지.
처음엔 적이었지만 이 섬에선 아군과 적군이 무의미했으니까.
<지옥의 묵시록>이 블록버스터의 옷을 입었다는 생각을 했어.
다른 점이라면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커츠 대령이 정글의 일부가 되어
스스로를 신격화하지만
<콩 : 스컬 아일랜드>에서 말로우는
원주민들과 평화롭게 인사를 나누고 섬에서 떠나 귀향한다는 것.
마지막에 말로우가 아내와 다 큰 아들을 만나지.
그리고 그렇게 원하던 핫도그와 맥주를 먹으면서 야구 중계를 봐.
그게 미국인들의 평화이자 행복이라는 듯이.
기억나는 장면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섬으로 들어갈 때
그 옆에는 카메라를 든 위버 기자가 있지.
영화 중엔 잡지 ‘LIFE’의 전쟁 기록 사진도 교차편집돼.
군인은 총을 쏘고 기자는 카메라로 이 현장을 쏘지.
왜 보통 카메라로 찍을 때 슛 shoot이라는 표현도 쓰잖아.
콘라드(톰 히들스턴)가 콩 부모의 뼈가 널린 땅에서
초록색 독가스가 자욱한 가운데 칼을 휘두르잖아.
콘라드만 나오는 이 장면이 뜬금없단 생각을 했는데 기억에는 남네.
그게 고엽제인 건가?
그런데 말이야.
왜 지금 괴수영화들이 개봉하는 걸까 궁금해졌어.
극장에서 나오는데 <신 고질라>도 개봉하더라고.
왜지?
트럼프 때문인가.
우리나라에도 그 괴물이 왔잖아.
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