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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혜진 Mar 06. 2017

핵소 고지

고지를 점령한다는 것과 신념을 지킨다는 것 

K에게


핵소 고지에서 부상병들을 구했던 도스(앤드류 가필드)가 

다리에 총을 맞고 들것에 실려 고지에서 내려지던 장면 있잖아.  

카메라 앵글이 도스의 아래로 내려가 위를 비추면서  

도스가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것처럼 보여.


이게 영화 <핵소 고지>의 시선이란 생각을 했어.   


미군 병사가 쓰러지고 그 옆으로 일본군의 얼굴도 쓰러져. 

양쪽 다 목숨 걸고 싸우긴 마찬가지지.

그냥 죽느냐.

신념을 가지고 죽느냐,의 차이일까?

일본 적장이 할복하고 그 부하가 한 번에 목을 베어.  

신념과 신념의 싸움. 


전투가 시작된 지 15분도 안 되어 죽는 병사들이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더라.

전쟁 중에 대부분의 생명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잖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머릿속에서 이 노래가 들렸어.   


모자를 던져 일본군의 위치를 알리고

수류탄을 손과 발로 쳐내고

총에 담요를 둘둘 말아 들 것을 만들고.

일본군도 지혈하고 살리는 도스.

총을 쏘지 않더라도 도스가 하는 일은 많았지. 


도스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의무병 헥터도 혈청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고 쇼크로 죽어.  

영화 후반부에 실존 인물의 인터뷰에도 나왔듯이

영웅은 도스뿐만이 아니야.  


도스가 첫 전투를 마치고 절벽에 혼자 남아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때 연기 속에서 의무병을 애타게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때 아래의 성경 구절이 떠올랐어.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마태복음 25장 40절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인지 난폭했던 도스가 

어릴 적 동생을 벽돌로 때리고 불안해 할 때 

아빠는 허리띠를 들고 때릴 듯이 다가오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말리고 ‘동생은 괜찮을 거야.’라고 안심을 시켜.


재밌는 건 벽돌과 허리띠가 다시 한 번 쓰이더라고.   

청년이 된 도스는 

마차에 깔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 벽돌로 마차를 고이고

허리띠로

다친 사람의 동맥을 지혈해.


벽돌과 허리띠.

같은 물건이 이렇게 다르게 쓰이다니.  

도스는 자원 입대해서 집총을 거부하지만

딱 한 번 총을 쏜 적이 있어. 


걸핏하면 엄마를 못살게 굴었던 아빠는 

그날 밤에도 총을 들고 부부싸움을 하고 있었어. 

자기를 때리는 건 참아도 엄마를 때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던 도스가

이젠 그만 좀 하라며 아빠와 대치하다가 허공에 총을 쏘게 돼. 

방아쇠에는 아빠와 자신의 손이 모두 걸쳐 있었던 것 같아. 


아빠에게 총을 겨누는 도스.

마음으로는 아빠를 쏘았다고 

나중에 전우에게 말했었지.  


그랬던 아빠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서 의무병에 복무하고 싶어하는 아들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함께 전투를 치렀던 상관을 찾아가 서신을 받아온다. 


가정에선 만신창이였지만

재판장에 서신을 전하는 아빠의 정신은 가장 또렷하고 멀쩡해 보였어. 

군복에 훈장도 두 개 달려있었지. 


그래도 미국에선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보였어. 

필요한 절차들을 다 거치더라고.


재판 중에 도스의 발언이 가슴을 친다.

‘신검에 통과하지 못한 마을 친구 둘은 자살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터에 나가서

사람을 살리겠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관련한 재판이 있었던 것 같은데...

판결이 어떻게 났었는지 찾아봐야겠어. 


그래도 입대하는 아들 둘의 결정을 막지 않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이란 생각.

개인의 신념과 의지를 존중해주는 가족과 사회랄까. 


영화에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지만

도스는 '비폭력'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고지를 점령해.  


나와 너는 어떤 신념을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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