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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혜진 Mar 17. 2017

디즈니 미녀와 야수

"빛으로 나와요!"

K에게


음악이 참 좋아. 우리가 기억하는 ‘뷰리 앤 더 비스트~’가 여러 번 변주되어서 나오거든. 마지막에는 웅장해진 원곡이 나오고 말이야. 음악이 계속 흘러나와서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었어. 영화관 직원이 자꾸 입구에서 서성여서 신경이 쓰였지만 말이야. 


엠마 왓슨은 이 시대의 ‘벨’로 딱이란 생각이 들더라. 영리하면서도 선해 보이는 얼굴이랄까? 야수랑 춤을 추는데 금박이 입혀진 노란색 드레스가 프리지아 꽃처럼 화사하더라고. 금박이 입혀지는 과정도 이번 <미녀와 야수>만의 마법 같은 스타일로 공중에서 금가루가 반짝이다가 금박 무늬가 돼서 치맛자락에 찍혀.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게 아닌 것 같은데 영상으로 보면 신기한 거 있지. 


촛대, 시계, 찻주전자, 찻잔, 옷장, 오르간 등 요정의 저주 때문에 물건이 되어버린 성의 일꾼들 말이야. 영화의 중반까지는 그 물건들의 움직임이 너무 많고 산만하다고 느껴지더라고. 사람의 몸짓을 따라가다가 물건의 빠른 움직임을 쫓아가려니까 내 눈이 당황한 건가 싶기도 했어. 3D를 감안해서 디자인한 움직임이라서 그런 걸까? 그런데 물건들의 움직임이 차분해지는 중후반에 이르니까 괜찮아지더라. 마지막에 화려한 캐스팅의 배우들이 등장해. 짧게 출연하지만 물건들과 서로 싱크로율이 높아서 그걸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어.  


뮤지컬 형식으로 인물을 소개하는데 눈이 휘둥그레. 왕자가 야수가 된 사연,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은 벨, 자만으로 가득 찬 가스통을 소개하지. 마을 사람들의 코러스가 아기자기하게 혹은 웅장하게 인물들과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성 안에 사는 물건들의 심정을 뮤지컬로 만든 씬은 정말 화려해. 성 안의 물건들이니 금이라서 번쩍번쩍하잖아. 야수와 자신들에게 걸린 저주가 풀리려면 벨과 비스트가 서로 사랑에 빠져야 하니까 벨을 잡아두려고 식사를 대접하고 쇼를 보여준달까? 테이블보 당기면서 음식 접시 뺏고 푸딩 건네는 건 애교. 배고프다. 이 장면은 3D나 4D에서 진가를 발휘할 듯. 아이들이 좋아하겠더라. 


저주가 풀린 왕자님보다 털과 뿔이 있는 야수가 더 매력 있지 않아? 

왕자님은 매끈하기만 하고 안 멋있던데?

야수 승.


야수가 벨의 아빠 모리스에게 장미 꺾었다고 도둑놈이라고 몰아서 서운했는데

가스통이 모리스를 늑대 밥 되라고 나무에 묶어놓질 않나, 정신병자로 몰지를 않나, 

그래서 나쁜 놈 이미지는 가스통이 다 가져가서 야수에게 서운한 마음이 사라져.

물론 야수가 벨을 사랑해서 위기에 처한 모리스에게 가보라고 하니까 스르르 마음이 녹았지.  


야수가 장미꽃에 민감한 이유는 

지금 장미 한 송이에 자신과 성 안의 식구들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이야. 

장미 꽃잎이 다 지기 전에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면 자신은 영원히 야수로, 성의 식구들은 영원히 엔틱 장식품으로 남게 되거든. 

그래서 벨의 아빠 모리스가 장미를 따자 민감해져서 도둑놈 운운한 거지. 


벨에게도 장미는 중요하지. 어릴 적 엄마와 이어져있는 추억의 물건이니까. 

아빠 모리스가 그랬지. 엄마는 용기 있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벨 너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디즈니는 장미꽃 한 송이로 미녀와 야수를 이렇게 연결하고 있어. 


넓은 세계로 가고 싶은 벨에게 야수의 서재는 정말 매력 덩어리. 

자신보다 지적으로 더 많이 알고 있는 남자를 처음 만난 거잖아. 식민 지배할 때 논리가 그거 아닌가?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안다. 내 세계로 드루와~’ 

야수와 벨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두고 웬 식민 지배 이야기냐고?

보다가 떠올랐어. 미녀와 야수 이야기의 먼~ 먼~ 원류가 되는 설화에는 그런 원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딸을 차지하려고 그 아빠를 납치하고 죽이고. 여자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고.

재밌게 영화 보고 나서 너무 과한가? 

여자를 식민 지배의 땅으로 비유해 보는 내 시선조차 이젠 낡은 걸까?


그럴 수 있어. 왜냐면 벨은 성에서 입었던 노란 드레스를 벗고 아빠를 구하러 가거든. 자신의 옷을 입고 야수에게 돌아오고 말이야. 엠마 왓슨을 캐스팅하면서 나름 당당한 여성으로 연출한 것 같은데? 아버지 대신 스스로 갇히는 장면도 그렇고 말이야.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랬던가? 


그렇지만 당당한 여성이란 게 더 나은 남자를 선택함으로써 넓은 세상으로 가는 것, 아버지 대신 스스로 감옥에 갇히는 것, 그것뿐인가? 왜 여성의 당당함은 늘 사랑 안에선 그 범위와 시야가 좁아지는 걸까. 이쯤에 이르자 야수도 가스통도 싫어지는군. 쩝. 


  빛으로 나와요! (Come into the light!)


어둠 속에 숨어 지내기만 한 야수에게 환한 데로 나와 얼굴을 보이라는 벨의 목소리. 

야수의 어둡고 거친 속성을 극복하고 빛으로 나와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

근데 왜 꼭 야수는 어둡고 거칠어야 해? 아닐 수도 있잖아. 

맞아. 그래서 요정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잖아.


르푸랑 가스통의 미묘한 동성애 분위기를 우스꽝스럽게 연출한 거, 나만 느낀 거 아니지? 

사실 이 둘은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져 있지. 거울 보며 프러포즈를 연습할 때도 자신의 모습에 도취돼 있잖아. 


디즈니 성이 나오는 오프닝.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더라.

잘 만든 판타지가 가지는 힘은 놀랍네. 

그리고 그 안엔 많은 것들이 숨어 있어. 


K! 

야수가 하는 말과 행동이 너랑 비슷해서 영화를 보다가 웃었어. 

벨이 아픈 야수를 돌보는데 삐져서 등을 돌리고 

이게 다 벨 때문이라고 투정 부리잖아.  

이제 그만 야수에서 왕자님으로 돌아와.

내 사랑이 부족한 거니.

내가 미녀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말할 거라면......

영원히 어둠 속에 있어라! 다시 저주를 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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